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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구링 Dec 13. 2022

왜 일본이야?

할머니들 돌보러 일본까지 간 이유

2016년부터 시작된 나의 취미생활은 수영을 배우는 것이다. 오래간만에 일찍 퇴근하고 수영 수업까지 시간이 남았던 터.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구청을 가기로 했다. 수영장 옆에 구청 1층 북카페 리모델링이 끝났다는 안내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높은 책장과 화려한 조명 대신 아늑한 조명이 나를 감쌌다. 바깥을 볼 수 있는 높은 테이블에 가방을 올려 자리를 잡았다. 지금부터 설레는 시간. 바로 책 고르는 시간이다.


그 당시 관심 있었던 분야인 일본 소설 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작가의 이름들과 책 제목을 지나쳐 내 눈길이 멈춘 곳.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사회복지를 전공한 나는 대학 다닐 때 교수님께 일본 노인복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일본의 개호보험(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험과 비슷하지만 일본이 먼저 시작되었다)에 대한 설명과 영상을 보여주셨던 것이 생각났다. 알록달록 깔끔한 인테리어의 공간에서 활동을 하고 계셨던 어르신들의 웃는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나는 그 책을 꺼내 들고 자리로 왔다. 책의 내용은 치매 어르신들이 음식점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적은 것이다. 치매어르신이기에 뒤돌아서면 잊어버려서 주문한 메뉴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화내지 않고 웃으며 잘 못 나온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오히려 음식이 잘못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다.


내가 생각했던 치매는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나쁜 병이었다. 치매 판정을 받았던 외할머니가 매일 큰 소리로 욕을 하며 큰이모를 도둑 취급하는 것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가슴 아픈 것은 잠깐이고 자식들은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 생각해낸 방법은 한 달마다 돌아가며 할머니 모시고 지내는 것.


좋은 해결 방안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함께 생활해보니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남편의 눈치, 자식들 눈치. 행여나 우리 엄마가 사위 앞에서 실수라도 할까, 자식들 앞에서 몹쓸 욕이라도 내뱉을까 조마조마하며 할머니를 지켜봤을 것이다.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머무는 차례가 되었다. 퇴근하고 저녁 수영까지 하는 내가 할머니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늦은 시간이었다. 그땐 이미 할머니가 씻고 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아기는 잠잘 때 천사라고 했던가. 점점 아기가 되어가는 외할머니도 잠잘 때가 제일 예쁘다고 엄마는 말했다. 엄마는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람 똥냄새가 그렇게 고약스러운지 처음 알았다고 했다. 아빠와 우리들한테 할머니의 고약한 냄새를 들킬까 매일 샤워를 시키고 대변을 볼 때마다 또 씻겼다고 했다.

“내가 우리 엄마를 사랑하지만 그 똥냄새는 다시 맡고 싶지 않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할머니의 똥냄새가 아니라 치매 어르신을 돌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마음 따뜻하고 착하고 여린 울 엄마도 똥냄새를 이야기하며 고개 돌리게 만든다. 또 사이좋은 남매 사이에 이유모를 서운함과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비난의 화살이 스쳐지나갔으리라 생각된다.


치매하면 나에겐 그런 이미지뿐인데 그런 어르신들이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근데 책을 읽다 보니 프로젝트가 나쁘지 않다. 오히려 가슴 따뜻하고 찡하면서 귀엽고 웃기기까지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접했던 치매 어르신이기에 그 책을 덮고 나서 내 마음속에 작은 불씨가 심어졌다.


‘일본은 치매 어르신을 대하는 관점부터가 다르구나. 노인분야를 배우려면 무조건 일본으로 가야 해!‘



최근에 다시 가 본 북카페.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잠자는 이불속 반지 공주

#하나라도 #없어지면

#그때부터 #시작되는 #도둑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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