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취업 두 달 차인 사회초년생의 일상
"친구의 부드럽고 어린 얼굴과 선이 명확해진 어른의 얼굴을 긴 시간에 걸쳐 알 수 있는 것은 행운인 것 같아 어쩐지 찔끔 눈물이 났다."
-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구민지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함께한, 저의 소중한 친구입니다. 집도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거리였어서, 술 한잘 할래? 하며 만나 자주 맥주 한잔을 하기도 했죠. 그런 동네친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느낄 때면 우리의 그 행운에 감사하게 됩니다.
늘 똑 부러지는 친구였던 그녀는 착실하게 원하는 길을 위해 걸어갔고, 결국 제 주변에서 가장 먼저 꿈꿨던 직장에 취업을 성공했습니다. 가끔 질투가 날 정도로 멋진 사람이에요. 멋지다고, 힘주어 말해주고 싶어요.
이제 우리의 집은 많이 멀어졌지만, 언젠가 또다시 어제 만난 것처럼 술잔을 기울일 날을 기다리며.
*인터뷰는 줌으로 진행했습니다.
미지 방가~ 너는 화질이 되게 좋다.
민지 너는 화질이 왜 이렇게 깨져.
미지 식사를 하고 계시군요?
민지 나 밥을 못 먹었어. 아까 집에 와서 몸이 안 좋아서 자고 일어났어.
미지 무슨 라면 먹고 있어?
민지 안성탕면!
미지 아 역시 안성탕면이지. 나는 오늘 삼겹살이랑 맥주를 먹고 왔어.
민지 진짜 맛있겠다. 삼겹살에는 소주인데.
미지 그래서 아주 배가 부른 상태지. 라면 되게 맛있게 먹는다.
민지 지금 짠맛은 느껴지거든? 근데 냄새가 아무것도 안 나서 맛이 안 나.
미지 거의 뭐 코로나 아니야?
민지 그러니까. 남자친구도 코로나 아니냐고 그랬거든. 감기로 그 정도까지 갈 수가 있냐고.
미지 너는 코로나 걸렸었나?
민지 나 한 번도 안 걸렸어.
미지 나도. 우리는 살아남았어.
민지 지금 코로나일지도?
미지 진짜 그럴지도 몰라.
아무튼, 이제 인터뷰를 진행해도 될까요? 그러면 내가 질문을 한 10개 11개 정도를 준비를 했는데.
민지 많이 준비했네.
미지 금방 금방 생각이 나더라고. 근데 뭔가 오히려 아는 사람이 질문 준비하기가 더 쉬워. 내일은 독서 모임했던 멤버를 인터뷰할 건데, 그렇게 잘 알지 못하니까 질문 준비하기가 어렵더라고.
민지 그럴 수 있겠네.
미지 왜 오히려 아는 사람한테 질문이 더 많지? 아이러니하구만.
그러면 요즘 너의 보통의 하루 일과는 어때?
민지 평일 하루에 일과? 평일에는 7시 40분 전에 일어나.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고 8시 10분에 집에서 나가. 나가서 마을버스 타고 지하철역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 진짜 사람이 많아. 진짜 너무 많아. 그래서 그거에 치이면서 가다 보면 회사에 도착해.
내가 입사 초반에는 8시 반까지 무조건 갔는데, 요즘은 조금 피곤할 때도 있어서 한 8시 40분, 50분 이렇게 갈 때도 있긴 해. 가서 하는 루틴이 있어. 일단 무조건 커피를 내려. 네스프레소 머신이 있어서 커피를 내리고 그다음에 닥터유 에너지 바를 먹어. 그게 아침 식사지? 그다음에 시간이 되면 타이머를 켜고 5분이나 10분 동안 책을 읽어. 그러면 한 8시 50분 55분 이렇게 되거든.
그럼 이제 업무 준비를 시작해. 일단 맨 처음에 하는 건 전 날의 판매량을 조회하는 거야. scm 들어가서 판매량 조회하고 입력하고 보고하고. 그다음엔 메일이랑 캘린더 확인하고 온라인 서점 베셀 확인하면 아침 루틴한 업무는 끝난 거야. 그러고 업무 보다 보면 11시 50분에서 12시에 점심을 먹으러 가. 점심은 거의 구내식당에서 먹어. 구내식당 먹으면 한 12시 반 정도 된단 말이야. 우리 팀에서 나 포함 세 명이랑 편집팀 몇 명이랑 밥을 먹고 나면 거의 95%의 확률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셔. 나는 한 번도 산 적 없어. 왜냐하면 난 막내이기 때문에.
미지 오.
민지 그래서 맨날 커피를 얻어 마셔. 점심시간 끝나고 돌아와서 다시 일을 하고 6시에서 6시 10분 사이에 나가는 것 같아. 퇴근하고는 보통 우리 편집자분 중에 자취하시는 분이 계셔서 같이 저녁을 먹는 편이고. 그다음에 집에 오면 한 7시 반 8시 되니까 다른 일정이 없는 날은 집에 와서 그냥 폰 좀 보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거의 한 10시쯤이 돼서 자야 해.
그리고 요즘 매주 수요일마다 마케팅 교육 들으러 마포 쪽에 가고 있는데 교육이 10시에 끝나서 집에 오면 11시가 돼. 그래서 그날은 좀 피곤한 날이고. 다른 일정 있는 날에는 일정 마치고 들어오면 바로 씻고 자고 그다음에 또 매일매일 다 똑같지.
미지 일정 있는 날이라는 게 뭔데? 약속?
민지 응.
미지 그래도 약속으로 만날 지인이 좀 있어?
민지 좀 있지? 일단 부산에서 같이 출판 스터디 했던 사람들도 있고 나 아는 언니도 있고 또 아는 언니도 있고 또 아는 언니랑 언니의 친구들도 있고.
미지 (웃음) 아는 동생은 없네.
민지 동생은 없어.
미지 하긴 동생은 아직 거의 대학생이겠다.
민지 그치? 가끔 하늘이 만나고. 한 달에 한두 번은 그래도 보는데 요즘 걔도 바빠서.
*하늘이는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삼총사!
미지 그러면 점심 저녁을 거의 직장 동료들이랑 같이 먹는 건가?
민지 맞아. 저녁은 그래도 조금 더 편하지. 두 명에서 먹으니까.
미지 그래? 그럼 점심시간에 그냥 계속 그 동료들이랑 같이 있다가 들어가는 거야?
민지 응. 진짜 하루에 그냥 절반 넘게 계속 같이 있지.
미지 뭔가 그럴 때 개인적인 시간은 안 갖고 싶어?
민지 개인적인 시간? 업무 보는 시간이 개인적인 시간이지 뭐.
미지 뭔가 세디 님도 그러셨고 주변에 취준생들이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에 대한 로망이 있더라고.
*세디 님은 기획단체0의 멤버입니다.
민지 어떤 면에서?
미지 산책도 하고 그 시간에 짬 내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책을 읽거나 자기계발하거나 그런 거. 현실적으로 어려운 건가?
민지 근데 우리는 그냥 어차피 구내식당에서 먹으니까 같이 먹는 거고 혼자서 먹는 분들도 많아. 특히 편집 쪽은 좀 개인적인 성향인 일이니까 좀 더 그런 것 같고. 그런 분들도 계시고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그리고 밥 먹고 한 번씩 커피 테이크 아웃해서 산책한다든지. 회사 뒤에 남산 한옥마을이 있거든. 그래서 거기에서 산책하고, 서울 천년 타임캡슐이라는 게 있다?
미지 그게 뭐야?
민지 90년대에 만든 타임캡슐인데 서울이 만들어진 지 천년인가? 그때 열거래.
미지 뭔가 소설의 소재가 될 것 같다.
근데 문득 궁금한 데, 너는 출근할 때 옷을 신경 쓰는 편이야? 직장인 출근룩.
민지 나는 신경을 엄청 써서 꾸민다기보다는 그래도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으려고 조금은 신경이라는 걸 쓰기는 하지. 그래도 입사 초반에는 맨날 화장하고 그렇게 갔는데 요즘은 일정 없는 날은 화장 하나도 안 하고 가고 그래. 우리 회사는 복장이 되게 자유로운 편이어서 내가 자주 입는 저런 바지도 그냥 입고 가.
미지 진짜? 생각보다 그렇게 안 엄격하구나.
민지 그냥 티셔츠에 바지 그런 거 입고 가도 아무도 뭐라 안 해.
미지 반바지 가능?
민지 나 반바지도 입고 갔었어. 핫팬츠는 내가 안 좋아해서 안 입는데 입으려면 입을 수 있긴 해.
미지 그렇구나.
그러면 이제 서울 간 지는 얼마나 됐지?
민지 내가 4월 11일에 입사했으니까 2달쯤 돼가네.
미지 뭔가 더 오래된 느낌인데 생각보다 얼마 안 됐네? 그러면 부산과 서울 살이의 다른 점은 어떤 게 있어?
민지 근데 그건 조금 다른 사람이랑 다를 수 있는 게, 내가 그냥 즐기러, 놀러 온 거면 또 다를 텐데, 일단 나는 생활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잖아. 생활의 스타일도 바뀌었고. 가족이랑 같이 살다가 혼자 살고 학교를 다니다가 직장을 다니고 그래서 정말 다르지. 180도 다르지.
그리고 서울에서 사는 게 좋은 건 부산에서는 sns나 인터넷보고 저기 가고 싶다 하면 서울이어서 못 갈 때가 많은데 서울은 그냥 바로 갈 수 있잖아. 만약에 어떤 브랜드 팝업 스토어가 열려. 근데 성수에서 한대. 그럼 부산에서는 못 가잖아. 서울에서는 그냥 우리 집에서 성수 20분이면 가니까. 그런 게 조금 더 뭐라 해야 되지? 문화적 거리감이 적은 느낌이야.
미지 좋겠다. 전시도 많이 하고.
민지 나는 전시는 별로 안 봐.
미지 얼마 전에 공연도 봤잖아. 누구였지?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민지 아! 곽진언!
미지 되게 표정이 밝아지네. (웃음)
민지 맞아. 그런 것도 부산에서는 거의 못 가는데 서울은 그냥 내가 돈과 시간에 여유만 있으면은 어디 가볼까 해서 갈 수 있잖아.
미지 맞아. 그럼 단점은 어떤 게 있어?
민지 사람이 너무 많아. 어딜 가든 사람이 너무 많아. 진짜 사람이 너무 많아. 지하철도 평일에도 붐비는데 주말에는 진짜 붐비고 사람이 없는 데가 거의 없어. 그나마 여기 동네 쪽으로 들어오면은 그래도 사람이 좀 한산하긴 한데 그래도 있긴 있지. 그런 좀 여유로운 분위기가 되는데 아닌 곳은 다 사람이 너무 많고 관광지도 사람이 너무 많고. 서울은 거의 다 관광지니까 항상 사람이 많지. 그래서 웨이팅 같은 것도 엄청 많아. 그래서 좀 사람들에 지쳐. 다니다 보면.
미지 놀러 다닐 때랑 사는 거랑은 뭔가 확실히 다른 게 있나?
민지 다르지? 놀러 오면 어쨌든 다시 내려가야 되니까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걸 누리고 싶어서 많이 돌아다니잖아. 가고 싶은 데도 많고. 근데 살게 되면 일단은 언제든 갈 수 있는 거잖아. 그런 시간적인 한정은 없으니까 조금 더 현실적인 조건을 따지면서 다니게 되지. 돈이 없어서 못 간다던지. 입사 초반은 돈 나갈 때가 많으니까 돈이 거의 없었어. 그래서 아직 막 많이 놀러 다니진 못했어. 그냥 가봤자 카페 이 정도 가고.
서울에 놀러 오면 어쨌든 쓸 예산을 들고 오니까 조금 마음껏 쓸 수 있는데 나는 지금 어쨌든 생활을 해야 되는 사람이니까 쓸 수 있는 게 한정적이라는 그런 차이가 있지.
미지 그리고 너가 타향살이나 자취를 완전 처음 해보잖아.
민지 완전 처음이지.
미지 그런 건 어때? 힘들거나 외롭지는 않은지? 내 이미지 속에 너는 혼자 자는 거 싫고 최대한 부모님이랑 같이 살고 싶다고 하는 그런 사람이었어서.
민지 맞지. 나는 가족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지금도 그렇고. 그래도 초반에는 좀 재미도 있었지. 한 한 달까지는 재미있었어. 나한테 내 집이랑 내 공간이라는 게 처음 생긴 거니까 이거를 좀 가꿔 나가고 싶다, 이런 생각도 들고. 어쨌든 그런 에너지들이 있었는데 그냥 갈수록 회사 생활에서 오는 피로도가 쌓이잖아.
최근에는 진짜 너무 좀 몸도 안 좋고. 몸이 안 좋으니까 기분도 안 좋아지고 에너지도 없어서 청소도 제대로 못했어. 내일은 청소 무조건 해야지. 지금 몇 번째 미루는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런,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지.
그리고 질문이 정확하게 뭐였지?
미지 타향살이나 자취하면서 뭐 힘들거나 외로운 건 없는지
민지 외로운 거 있지.
미지 있어? 어떨 때? 뭔가 그게 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든지?
민지 근데 초반에는 좀 외로웠거든. 올라온 지 완전 초반에는 그래서 막 맨날 전화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좀 적응된 건지 몰라도 어쨌든 평일에도 맨날 사람들이랑 같이 있고, 저녁에 집 오면 그냥 바로 자기 바쁘고 주말에도 약속이 거의 매주 있고 그러다 보니까 별로 외롭지 않은 것 같아. 그냥 심심하다, 이렇게 느낄 때는 남자친구라든지 엄마 아빠한테 전화하니까 괜찮아.
미지 엄마 아빠랑 전화하면 오래 해?
민지 한 30분?
미지 진짜? 무슨 얘기해? 나는 청주 살 때도 전화 거의 안 했는데 아빠랑은 예나 지금이나 통화는 거의 30초로 끝내.
*미지는 대학생활을 청주에서 했습니다.
민지 30초는 너무 했다. 아빠랑은 좀 덜 하는데 그래도 한 5분 10분 정도는 하지.
미지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할 게 있어?
민지 그냥 뭐 뭐 했나? 엄마 아빠 뭐 해? 오늘 뭐 했어? 나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다? 그럼 엄마 아빠도 무슨 일이 있었다?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미지 신기하구만. 우리 집이랑은 다르구만.
민지 6월 6일이 아빠 생신이었어.
미지 아 진짜? 어떻게 챙겨드렸어?
민지 나는 이번에 월급 타고 엄마 아빠한테 용돈 드렸거든.
미지 우와.
민지 동생도 입대하니까 5만 원 주고. 그게 좀 큰 지출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딱히 선물을 따로 하지는 않았고 그냥 휴대폰 결제로 케이크 기프티콘 보내드렸어. 그날은 그냥 엄마랑 부산에 있는 사람들끼리 밥 먹고 그다음 날에 케이크 초 불고 했었는데 내가 그날은 너무 피곤해서 집에 와서 바로 자서 전화를 못 받았어.
미지 화목한 가정이야. 내 주변에서 제일 화목한 가정이야. 경상도에서 그렇게 부모님들이랑 통화 오래 하는 집은 잘 없지 않나?
민지 그런가?
미지 일단 우리 집은 그래.
미지 약간 그런 걸 느낄 때는 없어? 서울에서 나는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이구나를 느낄 때?
민지 일단 말씨가 다르잖아.
미지 확실히 달라? 너는 안 고쳐졌어?
민지 나는 원래도 사투리가 막 그렇게 억양이 심한 편은 아니었거든? 근데 내가 편하게 말할 때는 조금 더 억양이 있는 편인데 지금 주로 대화하는 사람이 맨날 보는 회사 동료나 남자친구랑 엄마 아빠잖아. 편한 사람들이랑 대화를 많이 하잖아. 그러니까 오히려 부산 말이 더 심해지더라고. (웃음)
미지 근데 뭐 고치고 싶다고 생각해? 표준어 쓰고 싶다고?
민지 아니.
미지 그치. 굳이.
민지 아니 근데 부산에 살 때는 표준어를 쓰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 그건 그냥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던 것 같아.
미지 서울 사람들이 좀 다르다고 느끼는 건 없어? 난 내가 느끼기에는 음 그러니까 그때 너네 어머니도 그런 말 하셨잖아. 하늘이 서울 아가씨 다 됐다고. 뭔가 좀 확실히 꾸미는 데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고. 몰라 내 편견일지도 모르긴 하는데, 서울 사람들은 좀 세련되지는 것 같고 유행에 민감해지는 것 같고 그런 느낌이 좀 있어.
민지 근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왜냐면은 일단은 우리는 젊은 세대고 20대잖아. 그리고 서울은 부산보다 조금 더 개성이 강하잖아. 사람들이 옷차림도 그렇고. 그래서 내가 자유롭게 입고 나가도 아무도 이상하게 안 보잖아.
부산은 서면에 나가는 룩을 아파트 단지에서 입고 있으면 좀 이질감이 들잖아. 그런 것들. 그래서 조금 더 나한테 맞는 패션이나 그런 차림새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아. 그런 자유가 주는 자유가 있어.
미지 자유가 주는 자유?
민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그 자유가 나한테 주는 자유가 있어. 내가 부산에서 올라와서 느낀 바로는 그런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어느 경우든 다 특수한 게, 어쨌든 나는 돈을 벌기 시작했잖아. 부산에서 돈을 벌기 시작해도 그런 건 좀 있을걸?
미지 그런가?
이제 직장생활도 한 지 두 달쯤 됐겠네. 그러면 직장인이 되고 내가 스스로 뭔가 좀 달라졌다고 느끼는 게 있어? 얼마 전에 오게스트 사장님 인터뷰했을 때 사장님은 그러셨거든. 본인은 솔직히 20대, 더 가면 고등학교 때부터 해도 나는 별로 안 달라진 것 같다고. 그래서 나는 그대로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사회에서 어떤 자리에 굴러 박히는 느낌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거든.
*미지는 지금 기획단체0에서 아빠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너도 그런 느낌인지 아니면 뭔가 좀 직장인이라는 위치에 가서 내가 달라지는 느낌이 있는지?
민지 하나 있기는 해.
미지 어떤 거?
민지 딱 생각나는 거는 좀 타인에게 깐깐해진다는 거.
미지 그래?
민지 약간 공격적인 면이 학습이 되는 것 같아. 직장 생활을 하면. 서울 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것도 있고. 서울은 밖에 지하철 같은 데 돌아다닐 때 완전 무표정으로 다니거든. 사람들한테 시선 안 두고. 왜냐하면 이상한 사람이 하도 많으니까 괜히 시선 뒀다가 털리면 안 되잖아. 그런 것들도 항상 좀 조심하고 있고.
좀 말하기 어려운데. 이게 어떤 거냐면 내가 호구같이 보이면 안 되는 거잖아. 그래서 조금 그런 깐깐해지거나 좀 공격적인 면이 좀 생기는 것 같아. 아닌 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고 그런 것들. 내가 느끼기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유할 수만은 없으니까.
미지 그렇구나. 그렇게 바뀌는 게 좋은 것 같아, 어떤 것 같아?
민지 근데 너무 또 그러면 피곤하다고 생각하거든.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 같아서 긍정적인 것 같아. 나는 좀 그냥 매사에 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것 같아. 좋은 게 좋은 거지.
미지 그렇구나. 그래도 이제 돈도 벌고 월세도 너가 내지?
민지 한 두 번 냈겠다.
미지 그러면 좀 어른이 된 기분이 드나?
민지 아니야.
미지 그래? 좀 그런 느낌이 들 줄 알았는데.
민지 아니? 직장인이라는 자의식도 별로 없어. 두 달밖에 안 했는데 무슨.
미지 그런가?
민지 그리고 난 일단은 막내고 신입이잖아. 그런 걸 느낄 새가 없어. 난 그 기분이 뭔지 오히려 궁금해.
미지 어떤 기분?
민지 내가 직장인이라는 자의식이 있는 그런 기분이 뭔지.
미지 아직 그런 자의식이 없어?
민지 그냥 회사 다녀야 되니까 다니는 거지. 내가 직장인이니까 내가 내 돈 벌고 내가 내 돈으로 월세 내고 이런 생각들은 잘 안 해. 그냥 돈 아깝다 생각만 하고. (웃음)
미지 어떻게 보면은 자아는 변하지 않았네.
민지 온 지 두 달밖에 안 됐는데 뭐
미지 두 달 안에 엄청난 변화들이 있었잖아.
민지 근데 내가 요즘 생각했던 게, 내가 요즘 좀 상태가 좀 안 좋았었거든. 왜 그런가 생각했더니 일단은 너무 많은 변화들이 있었지. 그리고 내가 좀 초반에 사람도 많이 만나러 다녔고.
나는 원래 에너지가 좀 있는 편이거든. 그래서 이제까지 축적된 에너지와 기본 에너지로 버티면서 했는데 그게 고갈이 됐던 것 같아. 그래서 진짜 이번 주는 너무 힘들었어.
미지 너 그때 그런 얘기도 했었잖아. 직장인이 되니까 뭔가 확실히 내 생활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민지 근데 내 생활이라는 게 뭔지 정의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따지고 보면 직장에서의 시간 그것도 내 생활인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진짜 완전 적성에 안 맞는 직장에 들어가서 일하면 그렇게 내 생활 진짜 하나도 없고 이렇게 힘들기만 할 것 같은데 난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고 그 일이 재미있어. 그래서 그런 내 생활이 없어서 힘들다 이런 적은 없고, 대신 내 생활이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라면 그건 좀 적지.
근데 나는 맨날 말하듯이 가성비가 아주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남들이 5시간 쉬면 될 걸 나는 1시간 쉬어도 충분하거든. 나는 주말에 하루는 약속 안 잡고 그날에 청소하고 카페에 가서 책 읽고 그게 다거든. 그때의 충만함이면 나는 충분해.
미지 밸런스를 잘 맞추네.
민지 사람이 가성비가 좋아야 돼. 사람에 가성비라는 말을 하는 게 좀 그렇긴 한데 비유하자면.
미지 맞아. 근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타고나는 것 같기도 해. 사람마다 필요한 수면량도 다르다고들 하잖아.
민지 그렇지. 타고난 거지. 어떻게 보면 나는 꽤 사회적인 사람으로 타고난 것 같아.
미지 그런 거 좋겠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나도 지금 일을 하고 있는데, 절대 혼자 하는 일은 없더라고.
민지 맞아. 혼자 하는 건 없어.
미지 그래서 뚝딱뚝딱거리면서 사람을 만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