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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만년간 인류는 육식위주의 최상위포식자였다.


지구는 약 백만 년 전까지는 약 4만 년을 주기로, 그 이후부터는 약 10만 년을 주기(아마도 지구 공전주기가 원인일 것)로 온난한 기후와 한랭한 기후가 반복되었고 점차 온도가 내려갔다. 그리고 기원전 약 1만3천 년경부터 기원전 약 8천 년경에는 온도차가 섭씨 5도 정도가 나는 온난기후와 한랭기후가 약 2년간 나타나고 사라지는 반복현상의 증거가 발견되었다. 5도의 차이는 사실 생명체에게는 엄청난 변화였을 것이다.

간빙기(Interglacial)는 빙하기에 빙기와 구분하는 전반적인 따뜻한 평균 기온을 보이는 시기이다.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시기는 홀로세 간빙기로 기원전 약 9천5백 년경부터 지속되고 있다. 간빙기 동안 툰드라 지대는 극지방으로 후퇴했고 툰드라 지역은 숲으로 바뀌었다. 간빙기가 발생한 원인에 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지구와 소행성 충돌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그러한 의견 중 하나이다. 기원전 약 1만 년경 소행성이 지구로 돌진해 공중 폭발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전 세계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견됐다는 발표가 2012년에 있었다. 이로 인하여 지표면이 녹고 포유류와 인간이 대량 살상되었고 마지막 빙하기인 `신 드라이어스기(Younger Drias)’기를 유발되었다는 추정이다. 2007년도에 소행성이나 혜성의 대충돌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처음 제기했던 과학자들은 이후 멕시코에서 소행성 충돌의 증거를 발견했다. 그리고 캐나다와 미국, 러시아, 시리아, 유럽 등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냈으며 모두 기원전 약 1만 년경의 암석층이었다. 당시 지구에서는 소빙하기가 시작돼 대형 포유동물들이 멸종했는데 소행성 충돌이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2013년 이 가설은 반박되었다. 미국과 유럽의 15개 대학 과학자들은 그러한 충돌을 뒷받침할만한 크기의 구덩이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더러 충돌과 관련된 어떤 물질도 이 시기 퇴적층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혜성 충돌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발견한 것들은 오염되었으며 자연과학의 어떤 물리학 모델로도 그 가설을 입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소행성이나 혜성 충돌 가설은 이제 좀비 상태에 이르렀다. 연구의 결함이 밝혀져 사멸했다 싶으면 어느 새 되살아나 여전히 엉성한 이론을 또 다시 내세운다. 앞으로 또 이런 주장을 하려는 학자들은 발표 전에 보다 꼼꼼히 증거를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는 기원 전 약 1만 년에 있었던 대빙하기가 끝날 무렵 상당히 빠른 속도로 더워지기 시작했지만, 천년 가까이 지속된 신(新) 드라이어스기라는 추운 겨울이 갑자기 찾아왔었다. 천년 동안의 맹공격이 끝난 후에는 온도가 다시 올라갔다. 20년 동안에 7도나 올라갔다. 그리 굉장한 변화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스칸디나비아의 기후가 20년 만에 지중해의 기후로 바뀌어버린 것과 같은 엄청난 변화였다. 지역적으로는 더욱 심한 변화가 있었던 것도 있었다. 그린란드의 얼음 시추공에 따르면, 그곳의 온도는 10년 사이에 15도나 바뀌어서 강수양상과 식물의 성장조건이 극적으로 변했다. 인구가 많지 않았던 지구를 뒤흔들어놓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오늘날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결과는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더욱 두려운 사실은 어떤 자연현상 때문에 지구의 온도가 그렇게 급속하게 바뀌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그 원인에 대한 논란은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다양한 방법에 의하여 확인된다. 2012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리처드 여키스 교수팀은 이스라엘 서부에서 출토된 양날 도끼 40점의 용도를 분석해 당시 기후를 파악했다고 발표했다. 이 도끼로 큰 나무를 베고 숲을 평지로 만든 뒤 목축지로 활용했음을 근거로 기원전 약 6∼4천 년경에는 습한 기후였다고 추정했다. 기원전 약 4천 년경부터 건조하게 바뀌었다. 호수, 산, 바다의 퇴적물을 분석하면 과거의 기후를 알 수 있다.

기원전 9천5백 년경부터는 간빙기로 대체로 따뜻해졌고, 인간 역사는 따뜻해진 간빙기와 함께 개화하였다.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북아메리카, 북유럽과 스칸디나비아 및 동부 시베리아 전체를 덮고 있던 빙하가 물러났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는 숲이 대부분 사라지고 열대 숲이 조성되었다. 이렇게 마지막 빙하기의 중석기시대(기원전 10,000년경에 시작)는 과도기로서, 빙하가 소멸하면서 해면을 상승시키고 이에 따라 자연환경이 변화되어 점차 유목생활에서 촌락생활로 바뀌게 되었다. 빙하가 물러가면서 생긴 삼림지대에서 동물을 뒤쫓고 구석기시대의 창과 칼을 계속하여 쓰던 유목생활의 사냥꾼들은 점차 감소했으며 대신에 정착부족이 늘어났다. 결국은 농업과 사축사육이 시작하여 사냥과 채집에 의존한 생활은 점차 축소되기 시작했다.


농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인류의 조상은 육식과 채식을 모두 하는 잡식으로 살아남아 진화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가설이다. 또한 인류의 조상은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환경에서 맹수와 동물을 쫒고 쫒기는 생존경쟁 환경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해왔다. 그러나 2021년 텔아비브 대학 연구진이 인류 조상의 식단을 다룬 다양한 학문 분야의 논문 약 400편을 10년 가까이 종합적으로 분석해 얻은 결과는 이와는 다르다. 인류의 조상은 약 200만 년 간 육식을 한 최상위 포식자였다는 주장이다. 대형 동물이 멸종하고 사냥할 동물이 줄어들어 가축을 기르고 작물을 재배할 수밖에 없게 될 때까지 최상위 포식자로 육식을 했다. 현대인의 몸에 남아있는 유전자와 신진대사, 생리, 체격 등에 초점을 맞춰 총 25개의 증거를 분석하였다. 이 중 특히 잡식동물이나 다른 포식동물에 비해 강한 위산이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인류의 조상은 대형 동물을 사냥해 며칠 또는 몇 주에 걸쳐 먹다보니 박테리아가 많이 번식하였을 것이고 박테리아를 퇴치하려고 강한 위산이 필요한 결과이다. 지방 세포의 구조도 포식동물과 마찬가지로 수는 많고 크기는 작아 잡식 동물과는 다르다. 게놈에서도 당분 중심 식단에 적합한 침팬지와 달리 지방 중심 식단이 가능한 유전자를 가졌다. 선사시대 유적에서 발굴된 뼈에 대한 안정 동위원소 분석과 사냥 행태 등도 지방을 많이 가진 큰 동물을 주로 사냥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형 동물의 멸종을 연구해온 많은 학자가 멸종의 주요 원인으로 인간의 사냥이 작용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인류조상의 진화 과정 대부분에서 사냥 자체가 인간 활동의 중심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고학적 증거를 보면 식물을 채집하고 가공하는 도구 등이 나중에 출현했다. 이것도 인류 역사에서 대형 동물이 중심 식단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전자 변화와 식물처리 도구가 출현한 것을 기초로 아프리카에서는 약 8만5천 년 전,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약 4만 년 전에 주변 환경에 따라 편차를 두고 식물 섭취가 점진적으로 늘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10.1002/ajpa.24247


또한 빙하가 물러나고 해면이 높아지면서 시베리아와 알라스카, 일본과 중국, 영국과 유럽, 호주, 파푸아뉴기니와 타스마니아를 연결했던 육지도 끊어졌다. 또한 빙하기에 아시아의 남부반도였던 인도네시아는 다도해와 군도로 변하였다. 인도네시아와 타스마니아와 호주의 간격도 넓혀졌다. 이로 인해 인간의 역사는 기원전 2천 년경부터 아프리카·유라시아,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태평양군도로 나누어졌다. 또한 기원전 약 8천 년~기원전 3천 년 전의 시기에는 습도가 높아지면서 사하라 사막이 호수와 숲으로 이루어진 지역으로 만들어졌다. 인간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각각의 환경에 맞게 적응을 하였고 인간사회는 다양화되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문명이 일어난 것은 지구 40여 억 년의 역사에서 마지막 1만 년의 온난화의 결과이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자연변화에 의하여 폭발한 인간개체의 증가와 문명은 인간의 오만을 낳았다. 그들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며 ‘신’이 되려고까지 하고 있다. 약 4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 즉 인간이 ‘대’ 전이를 통하여 ‘창조’되었고, 약 1만 년 전 지구가 온난해지면서 인간 개체 수는 1만 년 동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증가했고 언젠가는 1백억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 안에 우리가 있다. 우리 인간은 우주라는 커다란 시공간의 산물이다.



사하라 사막은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지구 자전축 기울기 변화에 따라 녹색 사하라에서 사하라 사막으로, 또 사하라 사막에서 녹색 사하라로 변신을 거듭해왔다. 마지막 빙하시대가 끝나가던 기원전 9천년에서 기원전 3천년 사이 사하라 사막은 강우량이 늘어나면서 곳곳에 호수가 생겨났고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북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는 야생 소, 하마, 영양, 코끼리 등 많은 동물들이 살았다. 과학자들은 이 시기를 아프리카의 습기(African Humid Period)라고 부르며 아열대성 기후로 숲이 울창한 시기였다. 그러나 기원전 4천년 경부터 기후변화로 생물이 거의 살지 못하는 죽음의 지대로 변했다. 과학자들은 그 원인에 대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습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 변화가 사하라를 사막으로 변화시켰다고 본다. 기원전 6000년경부터 지구 자전축 기울기가 24.1 도에서 23.5도로 줄어들면서 여름에 북반구 지역이 태양과 더 가까워졌고, 이로 인해 기원전 4천년 경부터 사막화 현상이 발생했다. 이로 인한 기후변화는 지구 적도 부근에 사하라 사막뿐만 아니라 아라비아 사막, 인도의 타르 사막 등으로 이어지는 사막 띠를 형성했다. 그리고 사막 곳곳에 과거 낙원이었던 흔적들을 남겨 놓았다. 2만 3000년 마다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가 반복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건조한 공기가 적도 북쪽과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사막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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