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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가능한 진화의 방향과 속도


코끼리는 물을 구하기 위해 땅을 파거나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나무껍질을 벗길 때 상아를 이용한다. 수컷이 암컷을 놓고 싸움을 벌일 때도 큰 상아를 가지면 유리하다. 따라서 큰 상아가 있는 개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상아를 가진 코끼리가 수십 년 간 밀렵꾼들의 표적이 되면서 코끼리들이 상아가 없는 종으로 진화되고 있다.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의 경우 과거에는 상아 없는 코끼리가 전체의 4% 미만이었지만 암컷 코끼리의 3분의 1 정도가 상아 없이 태어나고 상아를 가지고 있어도 매우 작았다. 1970년대 말부터 16년 동안의 내전으로 코끼리의 90%가 밀렵으로 사라진 데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1992년 종전 후 태어난 암컷 코끼리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밀렵꾼이 큰 상아를 가진 코끼리를 밀렵하다 보니 상아가 없거나 작았던 코끼리가 밀렵에서 살아남아 짝짓기를 하여 그 새끼들이 유전자를 물려받아 상아가 없는 코끼리가 점점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의 밀렵으로 기존의 자연 선택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 셈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도 코끼리 국립공원도 2000년대 초반부터 암컷 코끼리 가운데 98% 이상이 상아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이 자연선택의 주체가 된 셈이다. 인간에 의한 자연선택은 가축화, 선택적 식물재배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인간이 진화의 방향과 속도에 큰 영향을 주는 셈이다.



진화는 또한 속도도 예측이 안 된다. 일부 생물은 출현 당시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어떤 생물은 진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 대장균 같은 박테리아의 경우 항생제에 노출되는 등의 환경 변화에 대응해 불과 몇 년 만에 진화하는 사례가 발견된다. 똑같은 박테리아가 실험실에서 배양될 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DNA에 차이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미생물은 유전체 크기를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진화해 대사 효율을 높이고 개체수를 효율적으로 늘려가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공상과학 소설에 등장할 박테리아(Candidatus Desulforudis audaxviator)도 발견된다. 오랜 세월 거의 진화를 하지 미생물이다.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미생물의 진화 속도와 비교해볼 때 매우 놀랍다. 이 미생물은 200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금광의 지하 2.8㎞ 지점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이 미생물은 지구 표면에서 격리되어 광물의 자연 방사성 붕괴로 인한 화학반응으로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 이들은 햇빛이나 다른 유기체에 의존하지 않고 완전히 독립된 생태계에서 바위 내부의 물로 가득 찬 구멍에서 산다. 그 물은 매우 오래되었고 지표면의 물에 의해 희석되지 않았다. 이는 박테리아가 수백만 년간 지구 표면에서 격리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들의 독특한 생물학적 특성과 고립성으로 이들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파악했다. 시베리아와 캘리포니아, 그리고 남아공의 지하 깊숙한 다른 광산에서 이 미생물들을 추가로 발견했다. 각각의 환경은 화학적으로 매우 다르므로 개체들 사이에 많은 차이점이 나타났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연구했던 고립된 섬에서 사는 핀치 새와 같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여러 섬에 고립적으로 흩어져 서식하는 핀치는 부리의 크기와 형태가 각기 다르다. 하지만 이들 미생물들을 분석한 결과 이들 모두는 분리 이후 최소한의 진화를 해서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하다. 약 1억7500만 년 전 초 대륙 판게아가 해체될 때 이 미생물의 위치가 분리된 이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실상 당시의 살아있는 화석인 셈이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396-021-00965-3#cit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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