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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종’의 역사이자 빅 히스토리의 한 문단


내가 과거 전체를 조망하려는 것은 세계지도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어떤 지리학자도 도로지도로만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역사가들이 과거 전체에 대한 이해가 없이 특정 국가나 농업문명의 역사를 가르치려고 한다.


데이비드 크리스티안(David Christian)『Maps of Time: An Introduction to Big History』에서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없던 과거를 다루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서술은 인간만의 역사이고 우주의 역사에서 너무도 짧은 기간의 역사이다. 우주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와 생명의 역사도 있다. 그러나 지구의 역사 45억 년을 1년으로 압축해서 보면 역사를 인간을 중심으로 기술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지를 알 수 있다. 지구 역사의 대부분은 생명이 없는 황량한 시기였다. 11월 초에 육지에 식물이 나타났고, 12월 초에 동물, 12월 중순 공룡이 나타났다. 인간은 12월 31일 밤 11시 35분쯤에야 모습이 보였다. 밤 11시 55분이 돼서야 인류 문명이 시작됐고, 산업혁명은 자정이 되기 약 1.8초 전에 일어났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11시 55분 이전을 무시한 기존의 역사서술은 너무나도 지엽적인 것이다. 


20세기 말 ‘빅 히스토리’라는 새로운 분야가 나타났다. 이 용어는 호주 맥쿼리 대학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David Christian) 교수가 처음 사용했다. 1989년 최초로 ‘빅 히스토리’ 강좌를 개설한 이래 미국과 호주를 중심으로 중·고교, 대학 강의에서 채택되기 시작했다. 빌 게이츠는 빅 히스토리 강의를 듣고 “젊은 시절 내가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말하며 크리스천 교수와 2011년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1980년대 태동한 빅 히스토리(Big History)는 138억 년 전 빅뱅(Big Bang), 45억 년 전 태양계와 지구의 형성, 생명의 탄생, 인간의 등장과 문명의 발생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빅 히스토리는 우주물리학, 생물학, 역사학 등을 통해 빅뱅으로부터 현재까지 가장 큰 규모에서의 역사이자 ‘기원 이야기(Origin Story)’이다.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시작된 우주의 진화, 진화론으로 설명되는 생명과 인간의 기원은 역사의 서술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6000년 전 창조된 인간으로부터 역사가 시작된 것이 아니고 138억 년 전 우주가 탄생하고 인간은 진화의 말미인 수십만 년 전 탄생했다는 주장은 세계관을 바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우주’를 만들었다. 지금까지의 인간 역사 기술은 주로 민족, 인종과 국가에 초점을 맞췄지만 빅 히스토리는 인간을 하나의 ‘종’으로 기술한다. 빅 히스토리는 인간의 역사를 민족이나 국가로 나누어 보는 것이기보다는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의 역사를 본다. 따라서 그것은 인류 전체의 공동체 서사로서 기능한다. 


“빅 히스토리(Big History)는 우주, 지구, 생명, 인류 역사를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다.”(국제 빅 히스토리 협회) “빅 히스토리는 과학적 지식에 근거해서 우주 전체의 역사를 살펴보는 현대의 ‘기원 이야기(Origin Story)’이다.”(David Christian) 빅 히스토리는 우주, 생명과 인간의 역사를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우주, 생명 그리고 인간 전체의 역사를 살펴보는 ‘기원 이야기(Origin Story)’이자 달력이다. 그래서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와 생명 그리고 인간 이전의 역사까지 포함하는 역사를 거대 사 또는 빅 히스토리(big history)라고 부른다. 빅 히스토리는 인간과 우주의 끊임없는 대화라 할 수 있다.


역사의 대상이 거대역사(Big History)로 확장되면서 우주물리학, 생물학, 지리학 등 다양한 학문이 역사를 연구하고 설명한다. 빅 히스토리는 통섭이다. 인문학, 사회과학 그리고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통섭적인 접근으로 세계를 통합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그래서 빅 히스토리는 구체적인 엄밀히 검증하는 학문의 성격보다는 기원에 대한 종합적 서사의 성격이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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