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생활을 하고 자기 영역이 분명한 종일수록 동족 살해의 비율이 높다. 즉 무리를 이루며 살다보니 내부에서 서열경쟁을 하다 죽을 수도 있고 때로는 무리끼리 영역이나 암컷을 두고 집단싸움을 벌이다 죽기도 한다. 동족 살해를 하거나 당한 것은 대부분 수컷이다. 포유류와 영장류의 동족 살해비율이 높은 것도 이들이 사회와 세력권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사회성이 있고 세력권을 형성하는 포유류일수록 집단 안이나 집단 사이에 짝짓기, 먹이, 영역 등을 두고 경쟁이 심하다. 1024종의 포유류 가운데 동족 살해의 습성이 있는 종은 약 40%이다. 포유류의 동족 살해비율은 평균 0.3%정도로, 높지는 않지만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2016년 동족 간에 서로 죽이는 잔혹성의 기원을 계통분류학의 방법을 써서 규명한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포유류와 영장류는 서로 죽이는 살인 또는 살육행위 비율이 매우 높다. 포유류 가운데서도 인간의 폭력성이 특히 높으며 인간이 속한 영장류의 폭력성과 비슷한 수준이다. 인간의 폭력성은 진화의 산물이다. 그 결과로 유추한 포유류 공통조상의 폭력성, 즉 동족에게 살해된 비율은 0.3%로 나타난 반면 영장류 공통조상은 2.3%였고 유인원의 공통조상은 1.8%였다. 사람은 2%로 포유류의 6배이며 영장류와 유인원의 범위 내에 들었다. 특이한 것은 영장류에서 유인원으로 가면서 폭력성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상대적으로 인간의 폭력성은 적게 감소되었다. 이 결과는 동족 살해가 영장류 계통에 깊이 뿌리내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에게 나타나는 일정 수준의 동족 살해비율은 인류가 특별히 폭력적인 포유류 분류계통에 속해 있었던 데서 기원하는 것으로 사람의 폭력성은 일정 부분 본성이라는 것이다. 수렵채취를 하던 소규모 집단과 반쯤 정주생활을 하던 수렵채취인 부족은 영장류 일반과 비슷한 살해비율을 보였지만 더 규모가 크고 위계적인 부족의 살해비율은 훨씬 높다. 인류의 동족 살해비율은 국가가 등장해 폭력의 합법적 사용을 독점하면서 급격히 떨어진다. 문화는 계통 유전학이 인류에게 물려준 치명적 폭력성을 통제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 족에 속하는 인간과 침팬지 그리고 보노보는 집단생활을 하지만, 집단 간 상호작용 방식은 크게 다르다. 침팬지는 다른 집단과 적대적으로 지내며 서로 공격을 주고받는 것도 드물지 않다. 인간도 집단생활을 하고 다른 집단과 협력관계를 유지하지만 집단 내 그리고 집단 간의 치명적인 폭력과 살인, 집단 간의 전쟁과 대학살을 자행한다. 특히 인간은 반과학적인 ‘인종’ 개념, 극단적 이념과 미신적인 종교관 등으로 편을 가르고 대규모 살상을 저지르는 지구상 유일한 종이다. ‘신의 형상’이자 만물의 영장 또는 이성의 존재라는 인간은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무자비한 살육으로 그 잔혹성을 보여주고 있다.
보노보(Pan paniscus)는 사람 족이다. 사람 족에는 사람아족과 침팬지아족이 있고 보노보는 후자에 속한다. 사람 족에 속한 인간과 침팬지는 동족 살해비율이 높은 종이다. 살인율도 거의 비슷하다. 반면 보노보는 자기 집단뿐만 아니라 다른 집단과도 협력관계를 유지한다. 보노보들 사이에서는 인간이나 침팬지와는 달리 다툼이 치명적 공격으로 이어지는 것은 관찰되지 않는다. 보노보는 다른 집단의 개체들에게 놀라운 관용을 보여줬다. 자신과 혈연관계나 이해관계도 없는 다른 집단 개체와 협력하는 행동이 나타난다.
https://doi.org/10.1126/science.adg0844
프란스 드발(Frans De Waal)의『내 안의 유인원』(2005년 번역출간)은 우리 인간의 유인원적인 모습을 쓰고 있다. 인간과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침팬지는 폭력적이고 권력을 추구하고 수컷 중심의 공동체를 이룬다. 침팬지는 원숭이를 잡아 두개골을 부수고 산 채로 잡아먹는 것이 포착되었고, 동족인 경쟁자의를 포위한 뒤 잔인하게 때려죽이는 모습도 관찰되었다. 세계대전과 나치의 만행을 겪은 당시 학자들은 침팬지에서 인간의 본성을 보았다. 반면 같은 유인원인 보노보는 폭력성이 적고 암컷 중심, 협력과 조화가 특징이다. 자연 선택은 무자비하고 잔인한 생물만이 아니라 협력과 유대, 그리고 이타성의 생명도 낳았다. 인간은 침팬지와 보노보의 중간 쯤 되는 특성을 지닌다. 인간의 폭력성은 침팬지를 넘어 수백만 수천만의 동족을 죽이는 전쟁을 하지만 일부 ‘성인’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인류애를 보여준다. 우리 인간 안에는 ‘유인원’ 같은 본성과 보노보 같은 본성이 공존한다. 인간의 폭력성을 담은 유전자를 조작하여 보노보로 만들 수는 없다. 그것이 진화의 결과이던 창조의 결과이던 폭력을 막는 유일한 장치는 사회시스템이다. 인간은 문화나 법률과 제도나 사회적 규범에 의하여 강제로 규제될 수밖에 없다. 보노보는 유전적으로 자율적으로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자유의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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