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출간한 [미래형 인재 자녀교육]을 업데이트 한 글입니다.
우리나라 청소년은 대학을 들어가서도 후유증에 시달린다.
“사교육에 치여 내가 누구인가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 모두가 똑같은 앵무새로 키워지도록 강요받는 느낌이었다.”
1백 여명의 서울 소재 명문대에 2009~2015년에 입학한 대학생들에 대한 조사 결과이다. 이들 대학생들 중 스스로 학원 수강 여부 등을 결정한 경우는 15.7%에 그쳤고, 나머지는 모두 부모의 계획과 주도 아래 사교육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가 주도하는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상당수가 부모를 원망하였고 사교육 경험을 떠올리기도 싫은 상처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언제나 너무 지겨웠고 화가 났으며 내신, 수능, 토플, 논술, 제2외국어 등을 준비하던 대학 입시 기간이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설령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입시에 지쳐 무기력하게 사는 사람도 꽤 많다.
“정말 열심히 해서 일류대에 붙었어요. 꿈에 그리던 대학에 입학했는데 이제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싫어요. 움직이기조차 싫고 그냥 누워서 쉬고 싶어요.” “저는 특목고에 다니고 성적도 좋아요. 빨리 ‘입시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저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꿈이 아닙니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여행하고 노는 것이 꿈이죠. 부모님은 제 마음을 모르죠. 설령 안다고 해도 바뀌는 게 없을 거예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2011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인기를 끌었었다. 그러나 ‘아프면 고통이다.’ 고난이 삶의 미래를 밝혀준다는 것은 ‘좋은’ 고난인 경우에만 해당된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어릴 때 고통을 겪으면 성인이 돼서도 고통이 이어진다. 인간과 가까운 고릴라도 어렸을 때 부모를 잃거나, 불안정한 집단에서 사는 등 ‘나쁜’ 역경을 겪으면 커서도 역경이 이어진다. 고릴라가 6세 이전에 나쁜 고통을 겪으면 건강이 나빠지고 수명도 짧으며 새끼를 적게 낳는다. 6세 이후에 경험한 역경도 삶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어려서 겪은 나쁜 역경은 성인이 돼서 삶을 힘들게 하는 일이 오히려 많다. 고릴라의 수명이 40~50년이므로 6세는 인간으로는 11살 정도이다. 고릴라의 사례가 인간과는 다르지만 어느 정도 상관관계는 있을 것이다. 10세 전후로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학원이라는 상자에 갇혀 지내는 것은 나쁜 역경이다.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고혈압과 당뇨 그리고 암 발생이 높은 것도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것도 그 원인은 달리 말하기가 어렵다.
2019년에는 정말 비극적인 기사가 나왔다. 의대 인턴을 마친 아들이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당신의 아들로 산 세월은 지옥이었다. 이제 당신하고 인연을 더 이상 이어나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나를 찾지 말아 달라.’라고 말하고 사라졌다는 기사이다.
2011년에는 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고3 학생이 엄마를 살해한 끔직한 사건이었다. 그 학생의 어머니는 집 거실에 ‘서울대학교’라고 쓴 큰 종이를 붙여 놓았다. 아들의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밥을 안 주거나 잠을 못 자게 했다. 이 학생은 “어머니가 계속 꿈에 나타나 무서워 자살해 버릴까 생각했다.”라고 울먹이며 범행을 자백했다.
자녀들만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것이 아니라 부모들도 함께 힘들었다. 어떤 엄마는 “대학에 떨어졌다는 통지를 받고서 먹었다 하면 체했고 속이 메슥거렸다. 아이를 위로해줘야 하는데 고함부터 지른다. ‘그래. 네가 공부 열심히 안 하고 딴 짓할 때 알아봤어!’”라며 힘들어했다. 우리나라에서 부모가 자녀의 교육에 돈과 시간을 투자할수록 자녀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신앙’ 같은 믿음이 있다. 바로 루소가 말한 야만인이다. 18세기 과학이 아직 미성숙했던 시기였지만 그는 통찰력 있는 말을 한 것이다. 현대 과학과 교육학은 정말로 야만인임을 증명하였다. 하지만 입시와 대학은 있지만 교육은 부재한 사회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교육열이 높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제대로 말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입시열풍이 높다. 교육열은 없다!’ 주변사람이나 학원에서 말하면 믿고 과학자와 교육학자들이 말하면 안 믿는다.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다. 아이를 낳자마자 부모들은 이성을 잃고 야만인이 되는 것이다. 반지성적 반과학적 ‘썩은 한강’이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다.
수험생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한 대학 입시 준비 과정에서 극심한 불안과 긴장에 시달리며 신체적 고통을 느꼈다고 호소한다. 소화불량은 물론 두통과 허리 통증, 탈모나 이명 현상도 겪는다. 아이에게 참을 수 없는 화와 짜증이 일어나 폭언·폭력을 하는 어머니도 있었다. “추가 합격자 발표 때까지 기다리는 순간순간이 거의 지옥이었다.” “아무 것도 못하고 병원에 가서 정신적인 치료를 받기도 했다.” 자녀의 대학입학에 대한 책임을 어머니에게 돌리는 분위가 탓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