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도 공감을 하고 개보다 지능이 높아
2023년 말 「사이언스」는 가축의 인지능력을 보여주는 기사를 실었다. 우리가 먹는 가축이 아무 생각이 없는 우둔한 동물이라는 생각을 뒤집는 연구 결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돼지는 공감신호를 보내며 염소는 개와 비견될 수준의 사회적 지능을 갖고 있다. 또 젖소는 배변 훈련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인지 능력을 가졌다.
돼지는 포유류 중 가장 ‘하등’한 동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돼지같이 살쪘다고 하여 비하의 대상이 되는 돼지는 먹고 잠만 자는 동물이 아니다. 돼지는 일정한 양만 먹고 그 이상은 먹지 않는다. 돼지는 좁은 곳에 키워서 그렇지 넓은 곳에 키우면 잠자리와 배변 장소를 가릴 줄 안다. 또한 ‘돼지’ 같이 살이 찌지도 않고 근육도 발달한다. 돼지의 지능은 80내외로 60 정도의 개보다 높다. 인간으로 보면 3~4세 보통 아이와 비슷하다. 돼지도 교육시키면 반려견과 비슷한 동작을 할 수 있다. 인간만 사용한다고 생각했던 도구를 돼지도 사용한다. 동물원에 사는 돼지가 나무껍질로 땅을 파서 그 흙으로 자기 집을 만드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러한 돼지의 행동을 다른 돼지도 보고 배워서 따라했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사람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 IQ가 180의 천재라고 추정된다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 한 말이다. 그가 천재인지는 모르겠지만 돼지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 돼지는 개보다 머리가 좋고, 침팬지나 돌고래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다. 장기 기억도 하고, 복잡한 사회생활을 하며, 공감능력도 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돼지를 반려동물로 키운다. 사람들은 인간과 같이 살며 공감능력을 보이는 개를 먹는 것을 혐오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돼지를 눈에 보이지 않게 축사에 가두어 놓고 키우면서 먹을 때는 별 생각 없이 맛있게 먹는다. 혐오는 늘 무지에서 나온다.
포유류 중에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은 개와 고양이이다. 인간 사회에서 키우는 동물은 대게 식용으로 키우지만 개와 고양이만은 반려동물로 키운다. 농사를 지으며 유목민이 아니었던 우리나라는 단백질이 부족하여 개를 식용으로 사용해왔지만 이젠 점차 줄어들고 있다. 개와 고양이는 ‘돼지보다도’ 못한 지능을 가지고 있다. 돼지를 식용으로 키우다보니 얼마나 영리한 동물인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돼지보다 못하다고 하면 어리둥절하게 생각된다. 개나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개가 고양이보다 똑똑하다. 개는 주인을 보고 꼬리치고 재롱도 피우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하다. 인간과 개가 서로 반응할 때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은 사람의 옥시토신과 유사하다고 한다. 개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뇌 발달도 함께 맞추어 이루어졌을 것이다. 개가 고양이보다 더 머리가 좋은 것은 뇌가 다르기 때문이다. 개는 고양이에 비해 두 배 더 많은 뉴런을 갖고 있다. 뉴런은 뇌의 신경세포로서 많을수록 보통 지능이 좋다. 평균적으로 개는 5억 개, 고양이 2억5000만 개다. 참고로 인간은 약 160억 개, 오랑우탄과 고릴라가 약 80~90억 개, 침팬지는 약 60~70억 개이고 영장류가 아닌 동물 중 가장 똑똑한 동물은 56억 개의 뉴런을 갖고 있는 코끼리이다. 개는 너구리, 사자와 비슷한 지능을 갖고 있으며, 고양이는 앙증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곰과 비슷한 지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고양이는 주인을 제대로 알아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새끼 고양이를 키워보면 숨바꼭질하고 재롱 피우는 모습이 너무 앙증스럽다. 이렇게 예쁜 고양이들을 인간이 선호하여 키우고 새끼를 낳으면서 ‘자연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숨바꼭질은 꽤 지능이 좋은 고양이 같은 동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쥐 같이 지능이 낮은 동물도 숨바꼭질 놀이를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생쥐에게 숨바꼭질을 가르쳤더니 고양이 같이 따라 하였다. 생명체는 기계와는 달리 고정된 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종마다 한계는 있겠지만 상당히 개발할 여지가 있다. 인간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 시키면 되는 기계처럼 인간은 그렇게 강제로 할 수는 없다. 자발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흥미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것이 생명체가 가지는 특성이다. 포유류는 ‘교육’도 시킬 수 있다. 개를 위한 학교도 있다. 반려 견을 교육시킬 때 체벌을 가하면 스트레스로 인해 배변이 불규칙적으로 바뀌어 오히려 더 큰 문제행동을 야기한다. 그래서 바람직한 행동을 할 땐 좋아하는 간식을 주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할 때 간식을 주지 않고 나가버리는 방식을 쓴다. 필자는 이러한 간단한 사실을 개를 오래 동안 키우고서야 알았다. 특히 개도 타율적이지 않으며 칭찬에 춤을 추고 잘못을 하면 잘못을 지적하지만 말고 어떤 것이 바람직한 건지 말해주고 칭찬해주면 스스로 배운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더욱 그럴 것이다. 개와 고양이도 후천적인 환경과 훈련에 따라 지능이 달라질 수도 있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더 똑똑한 강아지, 고양이가 될 수도 있다. 자녀에게 교육적으로 좋은 부모인지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극단은 실패한다는 점이다. 사람도 칭찬만 받고 자란 학생 중 상당수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오냐오냐’하며 자란 아이는 아무 것도 혼자서 못하는 ‘아기 어른이 되어 버린다. 지나치게 가혹한 엄격함도 지나치게 ‘오냐오냐’도 아이를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한다. 그 안에 답이 있겠지만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