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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쩌다 고민 많은 존재가 되었을까

모든 생명은 오직 생존과 번식을 위하여 산다. 인간도 피해갈 수 없는 생명의 장이다. 먹고 살기 위하여 일하고 자식을 키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동물과 인간에게 공통적이다. 생존 본능도 마찬가지이다. 사자 같이 무서운 동물과 마주치면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도 살기 위하여 도망친다. ‘토끼다’라는 단어는 살기 위하여 도망치는 생존본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잽싸게 뛰어 도망치는 걸 ‘토끼다’라고 말한다. 토끼는 위험을 느끼면 겁을 먹고 재빠르게 도망친다. 토끼는 귀가 커서 미세한 소리도 놓치지 않고 듣고 천적을 피해 재빨리 도망친다. 전쟁터에 나간 인간도 적군의 총탄에 죽지 않기 위하여 도망가고 숨는다. 이런 행동은 단세포 동물에서 기원하였다. 단세포 생물(Stentor roeseli)도 살기 위하여 피한다.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단세포 생물에게 플라스틱 구슬을 쏘았더니 맞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는 것이 관찰되었다. 머리도 뇌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단세포 생물인데도 피하는 행동을 하였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 실험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100년 이상동안 논란이 계속되었다. 무려 103년이 지난 2019년에야 사실임이 밝혀졌다. 생존 위험을 해결하는 단세포 동물의 행동은 곧 ‘생존’ 지능이 있음을 의미한다. 아프리카에서 사슴이 사자의 공격을 피하고 인간이 전쟁터에서 적군의 총격을 피해 숨는 행동이 세포 하나로 이루어진 단세포 생물 때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의 지적인 능력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는 걸까. 한 가지 분명하게 차원이 다른 점이 있다. 인간의 놀라운 지적 능력이 단세포 생명에 이미 그 씨앗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다른 생명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특별한 점이 있다. 종군 기자라는 직업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종군 기자는 스스로 전쟁터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고 전쟁의 실상을 보도하는 직업이다. 죽음을 무릎 쓰고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사진을 찍는다. 대표적인 종군 기자는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이다. 그가 1936년 스페인 내전 때 찍은「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이라는 사진이『라이프』지에서 올해의 표지로 선정되었다. 참호를 뛰어 나온 병사가 기관총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은 저작권 때문에 이 책에 올리지 못했다. 영어 제목(‘Spanish Loyalist at the Instant of Death’)으로 검색하면 볼 수 있다. 그는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상륙정을 타고 병사들 틈에 섞였다. “박격포 한 발이 떨어졌다. 그 파편에 병사 한 명이 죽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로 찍었다. 전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포탄 한 발이 또 터졌다. 나는 전혀 겁먹지 않고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 댔다.” 하지만 공포에 휩싸인 카파는 핏빛 해안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 정신으로 포착해 낸 전쟁의 실상과 그 이면의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다. 비록 먹고살기 위하여 직업으로서 선택한 것이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실존적인 고민을 하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분명하다. 인간은 세계와 우주를 탐구하고 문명을 이루었으며 삶을 고민하는 존재이다. 어떻게 죽음을 피하지 않고 이렇게 ‘실존적’ 삶을 살 수 있을까.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앞으로 쓰게 될 책의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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