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2년 출간한 <미래형 인재 자녀교육> 책을 업데이트 한 것입니다.
지금부터 천 년 전 프리드리히 2세(Frederick II, 1122~1190)는 ‘신의 언어’를 찾아내려고 시도했다. 그는 부모가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신의 언어가 자연 발생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십 명의 아이들을 처음부터 완벽한 정적 속에서 키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으며 모두 어린 나이에 죽었다.
그 후 거의 800년이 지난 19세기 말경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25% 이상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목숨을 잃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항생제도 없었고 백신도 없었다. 물을 소독한다는 생각도 우유를 살균해야 한다는 개념도 없어 전염병이 아이들의 목숨을 빼앗아 가기 충분했다. 태어난 아이들의 생존율을 높여 준 것은 과학이었다. 질병과 미생물의 관계를 밝혀낸 루이 파스퇴르, 종두법을 발견한 에드워드 제너,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 같은 과학자 덕분에 세상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병원체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병원체에 감염된 환자는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지 못 하도록 격리시켰다. 그래서 20세기 초에는 소독된 물건으로 둘러싸인 병실은 의학의 이상이 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을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질병의 전염을 우려하여 갓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로부터도 격리되었다. 보호 시설에서도 아이들은 혼자 지냈다. 미숙아들도 격리시켜 배고플 때 젖병만 물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종종 고열이 날 때 갖가지 약을 처방했지만, 어떤 약을 써도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부모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가자 열은 씻은 듯 내렸다. 또 아이가 엄마와 함께 있는 경우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확률이 크게 줄었다. 물론 아이들을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고 생존율을 높여 준 것은 과학이었지만 부모의 사랑이 아이들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곧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도 거의 보살펴 주는 손길 없이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의 30%가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정신적인 장애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지 못했다. 그 당시 아기가 운다고 어루만지고 안아 주고 응석을 받아주는 모성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것이 엄청난 오류임이 드러났다. 양차대전을 겪으면서 유럽의 병원과 고아원에는 많은 영유아가 수용되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병원에 있는 아이들과 전쟁으로 부모와 격리된 아이들에게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아이들은 잘 움직이지 않아 조용했고, 밥도 잘 먹지 않았고 잘 웃지도 않았다. 그 당시 고아원에서는 신체적인 접촉을 하고 정신적인 자극을 줄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20세기 중반이 되도록 인간은 이렇게도 무지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 원숭이 실험으로 그 원인이 밝혀졌다. 원숭이 우리 안에 깔아놓은 하얀 천의 기저귀에 원숭이 새끼들이 필사적으로 달라붙어 있는 것이 관찰되었다. 원숭이들이 단지 뭔가 붙들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부드러운 감촉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원숭이를 대상으로 철사나 나뭇조각처럼 단단한 물건과 두툼한 헝겊 뭉치를 놓고 어떻게 하는지 관찰했다. 하나는 철사로 된 몸통에 우유 통이 달려 있고, 다른 하나는 부드러운 담요로 몸통을 덮었다. 그러자 새끼 원숭이는 우유를 먹기 위해 철사 ‘어미’에게 갔다. 하지만 우유를 먹고 나자 재빨리 담요로 덮인 ‘대리 어미’에게로 갔다. 그리고 온 종일 부드러운 천으로 덮인 ‘어미’에게만 붙어있었다. 새끼 원숭이는 먹을 것을 주는 ‘철사 어미’와 아무런 관계도 형성하지 않았다. 이것을 ‘접촉 위안(contact comfort)’이라고 부른다. 아기가 엄마를 찾는 것은 단지 젖을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부모를 통해 감정을 느끼고 안정감을 얻는 것이다.
엄마가 막 태어난 아기를 안으면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아기도 금방 울음을 그치고 편안해진다. 너무나도 흔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른다. 여러 연구를 종합해보면 포옹, 다독거림, 악수, 마사지 같은 신체 접촉은 우울함과 불안, 통증을 줄인다. 아픈 사람은 더 그렇다. 잠깐만이라도 좋으며 자주 하면 더 좋다. 몸보다 얼굴이나 머리를 만졌을 때, 한 방향으로 만지는 것이 무작위로 만지는 것보다 더 좋았다. 심지어 로봇이나 담요를 만져도 도움이 된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사실이다.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거친’ 사랑이 아니라 더 많은 포옹이 필요하다. 오랜 세월 부모들은 잘못된 육아법을 알았다. 아이를 너무 많이 안아주면 집착이 생긴다거나 우는 아기는 스스로 달래도록 놔둬야 한다는 ‘엄격한’ 방식이 좋다고 안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나이 들어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낀다. 부모가 지나치게 엄격하면 아이의 정신 건강을 해치고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스타트 포 라이프(Start for Loife)’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잘못된 통념을 없애고 아이를 안아주도록 장려한다. 우리나라 같이 ‘엄격함’을 강조했던 전통적인 교육방식에도 필요한 제도이다.
https://doi.org/10.1038/s41562-024-018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