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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낯선 나라이다


근대 유럽에서는 오래된 조개껍질과 같은 해양 동물의 화석이 산꼭대기에서 발견되는 이유가 세계적인 홍수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성서』에 나오는 홍수신화이다. 종교와 신앙은 과학의 진보에 늘 걸림돌이 되었다. 때로는 과학을 발전시키는 촉매가 되기도 했다. 한 때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나라’라고 생각하던 것은 이제 우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늘나라에는 지구의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뉴턴이 부서 버렸다.


히말라야에 가면 종종 조개 등 해양생물이 발견된다. 해양지질도 많다. 이것도 홍수신화를 연상시켰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이 모든 것은 뒤집어졌다. 영국의 지질학자 아서 홈스는 1944년에 처음으로 대륙이동설을 밝혀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본인 자신도 의심했고, 오랫동안 비판을 받았다. 당시 많은 미국 과학자들은 대륙들이 영원히 지금의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석유회사에서 일하는 지질학자들은 석유를 찾아내려면 정확하게 판 구조론에 나오는 운동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석유회사의 지질학자들은 돈에만 관심이 있었고 학술적인 논문을 쓰는 일에는 흥미가 없었다. 결국 1964년에 이르러서야 우여곡절 끝에 인정되었다. 종교적 믿음뿐만 아니라 돈에 대한 숭배도 과학을 발전시키는 촉매역할을 했다.


오늘날 판 구조론(plate tectonics)으로 알려졌다. 지구표면은, 크기를 정의하는 방법에 따라서 8~12개의 대형 판과 20개 정도의 작은 판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런 판들이 모두 서로 다른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오늘날 인공위성의 관측에 의하면 대서양은 매년 3cm씩 넓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아메리카가 유라시아 대륙과 점차적으로 떨어져나갔고, 대서양이 약 1억 5천만 년 전에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아프리카도 갈라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2018년 케냐의 지반이 갈라졌고, 폭우와 지진으로 인해 땅이 갈라진 틈은 더욱 벌어지고 있다. 땅이 갈라진 지역은 동아프리카지구대에 있다. 동아프리카지구대는 아라비아반도 남부와 아프리카 소말리아 사이에 있는 바다인 아덴만에서 케냐·탄자니아 등을 거쳐 남아프리카 짐바브웨까지 이어지는 3000㎞의 계곡 지형이다. 이곳은 지표면 두께가 얇은 불안정한 지형으로 과거부터 화산·지진 활동이 활발했다. 이러한 균열은 새 대륙 형성의 시작 단계인 셈이다. 틈이 지속적으로 벌어질 경우 그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오게 되고, 결국 동아프리카지구대 동쪽에 있는 에티오피아·소말리아·케냐·탄자니아·모잠비크 땅의 일부가 섬처럼 떨어져 나가 아프리카 대륙이 쪼개진다는 것이다. 과학계는 아프리카가 실제로 분리되려면 최소 수백만~수천만 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 수천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분리된 마다가스카르 섬과 같이 될 것이다.


그린란드와 북아메리카도 오랜 균열과 해저 확장을 통해 나누어졌다. 그린란드와 캐나다 사이에서 지각 변동으로 균열이 시작된 것은 1억 1800만 년 전, 해저 확장이 시작된 것은 6100만 년 전, 대륙이 완전히 분리된 것은 33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지각 판의 균열이 일어나고 소대륙이 형성 중이다. 캐나다와 그린란드 사이에서 6000만 년 전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대륙(microcontinent, 길이 402km)이 발견되었다. 소대륙은 대륙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해저의 대지이다. 해저 확장으로 대륙에서 완전히 분리돼 해양지각에 둘러싸여 해양판과 함께 움직인다. 이 소대륙은 다른 소대륙에 비해 비교적 두껍다(19~24km)다. 그린란드 지도를 보면 유럽의 북쪽으로 나타나지만 사실 북미대륙과 가깝다. 그래서 북미대륙에 살던 아시아 사람들이 먼저 건너가서 살았다.

https://doi.org/10.1016/j.gr.2024.05.001

판구조론은 역사에도 흔적을 남겼다. 지중해 연안 미노스문명(Minoan civilization, 기원전 3650년경~기원전 1170년경)은 화산 폭발과 해일(tsunami)로 한순간에 무너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원인은 바로 아프리카 대륙 지각 판이 유럽을 향해 북쪽으로 이동해서 생긴 지질현상 때문이었다. 2004년 남아시아에 닥친 대재앙도 같은 원인이다. 또한 지중해 동부지역에 널리 전해오는 홍수 전설도 판구조론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노아의 홍수가 그것이다.


지구와 생명 그리고 인간은 너무나도 복잡한 역사를 가졌다. 수십 억 년의 역사이니 당연하다. 현재의 대륙과 과거의 대륙 사이의 관계는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으로 밝혀졌다. 카자흐스탄은 한 때 노르웨이와 뉴잉글랜드에 붙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매사추세츠 해변의 자갈과 가장 가까운 것은 오늘날의 아프리카에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과거 대륙의 분포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교과서에는 과거의 대륙들을 확실한 것처럼 그려놓고, 로라시아, 곤드와나, 로디니아, 판게아와 같은 이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결론을 근거로 한 것이다. 또한 지표면의 구조들 중에는 판구조론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만큼 역사를 아니 ‘big history’를 재구성하는 것은 어렵다.


인간과 역사의 진실은 켜켜이 깔린 무지와 은폐의 장막에 가리어져 있다. 하나의 작은 진실을 밝히려 해도 수개월이나 수년이 걸리고, 때론 수십 년이 지나도 실상이 드러나지 않는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다고 해도 과거사의 실상을 밝히려면 결국 힘겨운 진실 탐구의 과정을 거쳐 가야만 한다. 데이비드 로웬털(David Lawenthal, 1923~2018)의 1985년 책 제목처럼 “과거는 낯선 나라이다(The Past is a Foreign Country).”(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조선일보, 2023.11.20., 202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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