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따란 초원에서 사자가 사슴을 사냥하는 것을 보면 사자와 사슴을 번갈아 보며 둘의 관계를 행위의 주체와 객체로 파악한다. 사자가 사냥을 하고 사슴이 사냥의 대상으로 쫒기는 것이다. 생후 6개월쯤 된 영아가 이 광경을 보면 배경의 초원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유인원도 사람처럼 행위의 주체와 객체를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유인원은 영아처럼 배경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이렇게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것은 언어 진화의 기반 중 하나이다. 두뇌가 사건을 인지하는 방식이 언어 발전 이전에 진화했다는 것이다. 또한 사건을 볼 때 주체와 객체로 분류하는 방식이 인간과 유인원의 공동 조상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시사한다. 인간과 유인원 이전부터 언어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https://journals.plos.org/plosbiology/article?id=10.1371/journal.pbio.3002857
마이오세(Miocene) 중·후기(1600만~530만 년 전)에 기후 변화로 인해 아프리카에는 숲 대신 대초원이 생겼다. 마이오세는 지질학적으로 신생대 신(新)제3기에 속하는 시기로 포유류가 빠르게 진화하면서 번성했으며 초원에 적응한 초식동물의 발달이 두드러진 때로 알려져 있다. 인류의 먼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호미니드(hominid)도 이때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와 살게 됐다. 이런 지형적 변화가 호미니드의 언어 발달에 큰 전환기가 된다. 부드러운 구강 조직이 화석으로 남는 건 어렵기 때문에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탁 트인 평원이 초기 인류의 언어 발달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유인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 모음 소리는 125m가 넘으면 잘 들리지 않았지만 자음 기반 소리는 250m를 넘는 경우에도 선명하게 들린다. 탁 트인 땅에서는 모음만으로 내는 소리보다 자음이 섞인 소리가 훨씬 멀리까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현대 인류 언어에서 자음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거주 환경의 변화가 의사소통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이번 연구로 알 수 있다.
언어는 자음과 모음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사용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장류는 거의 모음으로 울음소리를 낸다. 반면 유인원은 자음과 유사한 소리를 낸다. 자음을 쓴다는 것은 좀 더 진화한 언어일 것이다. 유인원은 어떻게 자음을 쓰게 되었을까?
한 가지 가설을 보자. 숲속 나무에서 사는 오랑우탄은 땅에서 사는 고릴라와 침팬지, 보노보 보다 더 많은 자음 소리를 낸다. 땅에서 사는 고릴라나 침팬지는 두 팔로 도구를 사용한다. 그러나 나무에서 사는 오랑우탄은 팔다리 중 일부를 나무에서 균형을 잡는 데 써야 한다. 견과류를 빼먹기 위하여 오랑우탄은 입술이나 혀, 턱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오랑우탄은 입술만으로 오렌지 껍질을 벗길 수 있다. 동물원에서 막대기를 주면 오랑우탄은 입으로 문다. 이러한 행동이 입술과 혀, 턱뼈를 움직여 내는 자음(무성음)을 탄생시키는 기반이 됐다는 추정이다. 초기 인류 역시 나무에서 내려오기 전, 열악해진 수목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런 기술을 터득해 자음 발성을 낼 수 있게 됐을 것이다. 인류의 조상이 침팬지와 분리된 이후에도 나무에서 생활한 기간이 생각보다 더 길었다는 걸 시사한다. 가능한 설명이지만 아직은 가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