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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빙하기로 서로마 붕괴(훈족과 흉노족의 관계)


유라시아 대륙의 스텝지대 유목민들은 뚜껑을 꽉 닫지 않은 병 안에서 떠다니는 무수한 미립자에 비유할 수 있다. 어느 한 부분에 가해진 압력은 순식간에 전체로 파급된다. 모든 유목민 집단은 자신들이 독점하던 목초지에서 추방되면 아예 사라지거나, 무력으로 인근 집단의 목초지를 재빨리 빼앗았다. 그래서 목초지 관할권에 어떤 중대한 혼란이 생기면, 그 여파가 몇 개월 만에 초원의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파급되었다. 한 집단이 인근 집단을 밀어내는 반복적인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쫓겨 난 최약체 집단은 사멸하거나, 스텝지대의 북쪽과 서쪽에 위치한 살기 힘든 삼림지대로 도망치거나, 문명세계의 방위선을 뚫고 남하하여 농경민의 지배자가 되었다.


스텝지대의 유목민과 문명세계의 질긴 인연은 서기 1000년 이전 수세기 동안의 현저한 특징이었다. 이후 500년 동안에는 그것이 일련의 침입과 정복을 낳았고, 투르크와 몽골이 중국, 서아시아, 인도, 동유럽을 지배하게 되었다. 문명세계의 희생자와 피정복자들의 반응은 각각 달랐다. 서기 200~600년에 문명세계의 북방은 2개의 뚜렷한 세력에 의해 지배되었다. 인도문명이 아시아로 전파되는 동안, 북방에서는 스텝지대의 야만족과 유라시아의 문명사회 사이의 경계선 전역에서 전사들의 거친 함성과 창칼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국과 유럽에서는 문명세계의 방어선은 밀려드는 야만족의 습격에 번번이 뚫렸다. 중국은 침입자들을 흡수하여 약 350년의 분열과 무질서 끝에 다시 제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서기 589년). 이에 반해 로마제국은 서기 378~511년의 기간에 야만족의 대대적인 침략을 당한 뒤 다시는 부흥하지 못했다.


4세기 후반 훈족이 등장해 게르만족의 하나인 동고트족을 밀어내자, 동고트족이 서진하면서 연쇄 반응으로 게르만족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특히 5세기 훈족의 왕 아틸라는 ‘신의 채찍’이라고 불리며, 몽골의 칭기즈칸 이전에 유럽 전체를 공포에 떨게 했다. 결국 서로마 제국이 붕괴했다. 훈족은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100년경 멸망할 때까지 중국 북부와 서부 국경을 위협했던 유목민 집단인 ‘흉노’에서 유래됐다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고고학적 증거는 불분명했다. 흉노와 훈족의 무덤 양식은 달랐고, 흉노가 역사에서 사라진 기원후 100년부터 4세기에 훈족이 유럽에 나타나기까지는 300년 정도의 공백이 존재하여 논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유목민의 이동과 침략은 기후변화와 큰 관련이 있다. 기원 전후(기원전 300~기원후 300) 농경 국가가 확대되면서 경작지는 늘고 숲은 줄고 관개가 확대됨에 따라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방출되어 온난한 기후를 만들었다. 로마제국과 한 제국 등이 이룬 문명은 교류를 촉진하여 유목민의 이동, 질병의 창궐 등으로 인구가 크게 감소하고 경작지가 줄고 숲이 늘면서 한랭기가 시작되었다. 중세 초기의 소 빙기에는 흉노 혹은 훈족과 게르만족 등이 침입하고 천연두 같은 전염병이 돌아 수천만 명이 죽었고, 로마 제국과 한 제국이 멸망했다.


기원전 8세기경부터 이란을 중심으로 동유럽과 러시아 남부를 지배한 스키타이인은 신석기 시대 유럽의 농민과 시베리아 남쪽의 수렵채집인, 청동기 시대 말기의 목축 인이 섞여 탄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이후 아시아에서 온 유목민 흉노족과 섞였고, 기원전 2~3세기쯤 유럽으로 이동하였다. 결국 기원후 4~5세기경에는 훈족을 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훈족과 중국 흉노족이 같은 종족인지 논쟁이 있어왔는데, ‘적어도’ 유전적으로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유라시아 대초원에 살았던 인도유럽어를 사용했던 인류가 점점 아시아계의 인류로 바뀌어 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하지만 고대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훈족은 흉노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훈족이 발흥할 때 동부유럽 카르파티아(Carpathia) 분지에 아시아 초원 출신의 대규모 공동체는 없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동방 형 매장지에서는 소수이지만 아시아 지역의 유전적 특징을 갖고 있다. 훈족 중 일부에 흉노족이 포함돼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훈족 전체에 유전적 영향은 미친 것은 아니다. 훈족은 중부 유럽에서 기원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부 아시아 계통도 섞여 있었으며, 이들의 혼혈들도 많아 다양했던 것으로 보인다.

https://doi.org/10.1073/pnas.241848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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