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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를 먹던 아이, 글을 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2001년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동화 같은 영화이다. 어른의 눈과 아이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은 다르지만 여전히 난 소년시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삶은 어린 시절로부터 이어진다. 그것을 과거 또는 추억이라고 부른다. 어린 시절 살던 공간은 고향이라고 부른다. 어린 시절 고 박완서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울로 상경해 공부했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서울로 나 홀로 이모 집으로 ‘유학’을 왔다. 박완서 작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의 작품『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였다. 내가 살던 곳에도 싱아가 산에 많았다.


난 비쩍 마르고 눈만 큰 소년이었다. 첩첩산중 산골짜기에서 아름다운 산과 강을 친구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했고, 몸이 너무 허약했으며, 예민하고, 호기심과 질문이 많았다. 질문이 많으면 학교생활이 힘들다. 힘들었다.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며 과학영화가 나오면 극장에 가서 보고 과학책을 주로 읽었다. 내가 태어나고 죽어갈 우주를 들여다보면서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책을 사랑했고 연구를 꿈꿨지만 학교에서 고통을 겪으며 힘들었다. 군대 훈련소에서도, 히말라야 베이스캠프에서도, 병으로 1년간 누어있던 방에서도, 바쁜 사회생활 속에서도 늘 과학과 책과 함께 있었다. 그 소년은 너무 늦게 책을 쓰고 있다. 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박경리의「바느질」이라는 시에 정말로 공감했다.


바느질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짜투리 시간

특히 잠이 안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도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게 아니었을까


박경리


시인과는 달리 역마살이 강한 여행가이다. 하지만 시인의 시구에 마음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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