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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 남자 채집 여자 성역할분리는 오해

사냥꾼 남자 채집 여자 성역할분리는 오해


남성위주의 부계사회가 형성된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원숭이 등 영장류 집단 내에서는 일반적으로 힘이 수컷에게 편향됐다는 것이 오랜 통념이다. 남성이 사냥하고 여성은 채집했다는 ‘성 역할 분리’라는 고정관념에 바탕을 둔 생각이었다. 알락꼬리여우원숭이나 보노보 등 암컷이 우위인 종은 예외로 여겨졌다. 선사시대 수렵채집 사회 때부터 남성은 위험하고 힘이 필요한 사냥을 하고, 여성은 열매를 따고 식물 뿌리를 캐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일을 했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지금도 남자는 여자보다 힘이 세고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을 많이 한다. 기존 연구도 수컷과 암컷이 서로 다른 자원을 두고 경쟁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같은 성별 사이의 다툼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학계에서는 성 역할 분리 이론을 부정되어 왔다.


선사시대에 사냥은 남자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 확인되었다. 기원전 7천 년경 페루의 고산지대(‘Wilamaya Patjxa’) 유적에서 대형동물 사냥장비와 여성이 함께 있는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 여성의 뼈에서는 고기를 먹은 흔적을 나타내는 독특한 동위원소도 발견돼 사냥꾼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이다. 여자도 일상적으로 사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약 13만 년 전~8천 년 전 미주 지역 전체의 무덤 발굴기록을 분석한 결과, 대형동물 사냥장비가 함께 출토된 27건 중 11건이 여성이었다. 통계상 여성 사냥꾼이 30~5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대형동물 사냥에 여성 참여가 사소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하다. 이를 통해 '사냥꾼은 남자'라는 오래된 가설은 상당부분 뒤집어졌다. 남자만 사냥을 한 것이 아니라 상당부분 남녀가 공동으로 한 것이다.


2025년 121종을 대상으로 한 더 결정적인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장류 집단 대다수에서 권력의 성별 편향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121종 253개 개체군을 관찰한 결과 성별 갈등은 매우 흔하게 나타났다. 21세기 한국 청년층에서 나타나는 남녀갈등과 같다. 공격적인 행동의 약 절반이 수컷과 암컷 사이에서 발생했다. 수컷은 대체로 힘으로 암컷은 수컷 선택으로 우위를 점했다. 수컷과 암컷의 우열은 명확하지 않고 양상이 매우 다양했다. 데이터가 충분한 84종을 분석한 결과 약 16.5%만 수컷의 90%가 명확한 우위를 차지했다. 약 10.5%에서는 암컷이 90% 이상 승률을 나타내며 우위가 명확했다. 나머지 약 73% 집단에서는 성별 우위가 중간 정도거나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컷이 우위인 경우는 주로 일부일처제로 수컷과 몸집이 비슷하거나 주로 나무에서 사냥하는 종에서 관찰됐다. 무리를 이루기보다는 단독 생활이나 짝을 지어 사는 경우 암컷의 권력 우위가 흔했다. 수컷이 우세한 경우는 보통 수컷이 암컷보다 몸집이 크거나 공격할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였다. 지상에서 생활하거나 큰 무리를 이루는 경우, 일부다처제인 경우가 포함됐다. 인간은 일부일처제로 가족중심을 이루므로 여자가 힘을 가질 수 있는 구조를 가진다.

https://www.pnas.org/doi/10.1073/pnas.2500405122


2025년 연구에 의하면 기원전 7000년경 신석기시대 유적인 터키 아나톨리아 차탈회윅(Chatalhoyuk)이 모계사회였음이 밝혀졌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시유적으로 면적은 13.2헥타르에 달한다. 인구는 대략 수천 명에서 최대 1만 명까지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7100년경 만들어진 후 1000년 이상 사람이 거주했다. 1960년대 초 많은 여성 조각상이 발견되자 고고학자들은 모계사회에서 '모신' 숭배가 행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했다.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 연구는 DNA 증거를 통해 차탈회윅이 여성 중심의 사회 조직이었다는 것이 확인된 가장 오래된 사례다. 신석기 사회가 여전히 모계 중심적으로 조직되었다는 것이 확인된 최초의 체계적 증거이다. 차탈회윅은 신석기시대 유럽에서 나타나는 부계 중심의 패턴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곳은 도시였으므로 일부일처 가족중심 사회였을 것으로 보인다.


남녀차별, 성차별, 갈등은 생물학적 배경을 가진다. 인간이 스스로 ‘인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생물학적 본능을 극복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함께 사는 것이 인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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