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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사회와 입양

‘생물학적’ 사회와 입양


2020년 입양된 지 10개월 만에 사망한 고 정인양(사망 당시 16개월)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당시 발표된 부검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사인은 췌장 절단으로 인한 출혈이었다. 췌장 절단 외에도 장기 손상과 광범위한 출혈이 있었다. 다른 골절상 7곳과 피하출혈 흔적도 발견됐다. 당시 검사를 했던 의사는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높은 곳에서 추락하지 않는 이상 췌장이 절단될 수 없다고 말했다. 병원에 왔을 때 사실상 사망 상태였다. 정인이 양모가 “우리 애 죽으면 어떡해요”라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의료진은 ‘진짜 악마인가’ 생각했다. 2022년 법원은 양부에게 징역 5년, 양모에게 징역 35년을 확정했다.


이런 행동은 ‘동물’의 세계에 흔한 일이다. 동물이 새로운 짝을 만나면 이전에 낳은 새끼들을 대부분 죽여 버린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바뀔 때도 이전 우두머리의 새끼들은 죽임을 당한다.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다른 수컷 유전자를 가진 새끼를 없애는 것이다. 실제로 사자와 고릴라를 비롯해 대부분의 동물에서 새끼를 죽이는 모습이 관찰된다. 부성애를 발휘해 새끼를 입양하는 경우도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동물이 입양하는 사례를 발견하지는 못했었다.


2024년 동물에게서도 입양의 사례가 발견되었다. 30년 가까이 관찰한 끝에 앵무새가 ‘남’의 새끼를 자기 새끼처럼 돌보는 모습을 확인했다. 신세계앵무새(학명 neotropical parrot)는 수컷이 암컷보다 2배가량 많다. 수컷들 사이에 짝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치열하고 죽는 수컷도 나온다. 짝을 잃은 암컷 앵무새는 여러 마리의 수컷에게 구애를 받고 새로운 짝을 맞이한다. ‘재혼한’ 앵무새의 절반이상이 폭력적으로 새로운 짝을 차지했지만 이전에 낳은 새끼는 자기 새끼처럼 돌봤다. 이런 행위는 결국은 자신의 자손을 번성하는 데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긴 하다. 새로 맞이한 암컷과의 유대감을 강화하기 위해 그들의 새끼를 돌봐주는 것이다. 실제로 새끼를 죽인 앵무새보다 입양해 돌봐준 앵무새가 더 빨리 번식하고 더 많은 새끼를 낳는다. 동물의 입양은 번식목적에 이루어지는 생물학적인 것이다.


한국 사회는 폐쇄성이 강하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문화가 약하다. 다양성과 다원주의는 얘기할 수 없다. 게다가 ‘생물학적인’ 사회성이 강하다. ‘생물학적으로’ 치열한 생존경쟁, ‘생물학적으로’ 피를 나눈 가족끼리만 ‘이기적 사랑’을 공유하는 풍조가 강하다. 소수자에 대한 보호는 취약하다. ‘장애인’, 성소수자, 편모슬하 아이에 대한 시선은 차갑다. 자신의 ‘피’ 즉 유전자가 없는 아이 그리고 사회가 용인하는 ‘법적인’ 결혼 이외의 아이는 수용되지 않아 해외로 ‘수출’되어 왔다. 물론 그 중에는 너무도 가난한 가족의 비극도 숨어있다. ‘아이의 행복’을 위하여 입양시킨다.


1985년 영화「길소뜸」은 80년대 ‘이산가족 찾기’를 배경으로 가족의 비극을 담은 작품이다. 이에 대하여 국문학자 허민석은 비판적인 논문을 썼다. 수십 년 만에 이산가족을 만나는 장면은 감격적이지만 일시적이며 세월이 가져온 간극을 메울 수 없다는 걸 이야기한다. 방송이 가져온 우리 사회의 결속은 역설적으로 사회가 얼마나 취약하고 허구적인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영화에는 입양해 키우는 딸이 나온다. 가까운 친척 아이를 입양하는 것은 꽤 많다. 하지만 ‘남의 자식’의 입양은 극히 드물다. 그만큼 생물학적인 사회이다. 입양된 남매의 로맨스도 나온다. 영화에서 엄마는 잃어버렸던 아들을 확인했지만 거부한다. 잃어버리고 수십 년 만에 만난 생물학적 자녀의 간극은 이렇게 컸다. 나의 아버지와 장인도 북에서 월남한 분이다. 분단 후 70년 동안 단 한 번도 부모를 보지 못하여 세상을 떠났다. 한반도에서 단일 민족이라고 우기며 사는 남북의 결속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실감이 나고도 남는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는 반통일적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대이니 더 허구적이다. 당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금지곡이었다. 오래된 흑백영화만큼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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