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종내 폭력배이자 학살자인 인간
산업혁명 이전 인류는 절대빈곤 즉 ‘맬서스 함정’에 빠져 있었기에 인구증가를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산업혁명 시기 토마스 맬서스(1766~1834)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에 인류는 멸망한다.’라고 주장했다. 농업사회는 결국 ‘맬서스 함정’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인구 증가로 생존의 위기를 겪게 되면 주변의 농업사회나 수렵·채집 사회의 자원(토지와 식량)에 관심을 기울일 것인데 이는 결코 무리한 상상이 아니다.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인간은 최초로 잉여식량과 함께 빼앗거나 지킬 가치가 있는 부를 산출해냈기 때문이다. 신석기 농업혁명과 더불어 발생한 잉여는 서로 뺏고 뺏기는 ‘전쟁’으로 이어졌다.
고대 농업사회에선 전체 사망자의 10~20%가 인간에 의한 폭력으로 인한 것이었다고 추정되니 당시 인류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전쟁과 테러의 공포를 느끼지만 고대사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기원전 7천~기원전 2천경 신석기시대에는 부족들 사이에 최대 20~30명 수준의 소규모 분쟁이 대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농업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인류는 잉여에 대한 소유권, 권력과 국가가 생기면서 폭력의 규모가 커져갔다. 인간에 의한 폭력이나 ‘작은’ 전쟁은 구석기시대에도 흔한 일이었지만 농업으로 경제적 잉여가 발생하기 시작한 신석기시대 후기부터는 폭력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소유뿐만 아니라 종교, 인종, 이념의 차이로 대량학살도 발생했다. 종교로 인한 학살은 역사 내내 지속되었다.
유럽에서 전쟁이라고 할 만한 충돌은 기원전 2천~기원전 800년경인 청동기시대에 처음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신석기시대에 부족 간 최소 수백 명이 수개월 이상 살상을 벌인 대규모 전쟁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1천 년 이상 이른 기원전 3천 년경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대규모 매장지가 발견됐다. 이 매장지와 다른 유적지에서 발견된 화살촉과 두개골 부상 등 폭력 증거들은 당시 이 지역 공동체들 사이에 상시적이고 조직적인 충돌이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유럽에서 대규모 전쟁 행위가 알려진 것보다 1천 년 이상 이른 후기 신석기 시대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사로잡은 포로들은 잔혹하게 학대했다. 2025년 연구에 의하면 기원전 4천300년~4천150년경 프랑스 북동부의 신석기 인들이 전쟁포로를 심하게 학대한 증거를 발견했다. 적군 포로는 팔이 잘리고 두개골 골절 같은 외상을 당했다. 이들 희생자들은 지역 주민에게 살해된 침략자인 것으로 보인다.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dv3162
게다가 시신을 훼손하는 일도 일어났다. 기원전 약 4000년~기원전 1000년경 유럽에 살았던 사람들은 매장된 사람의 유골을 다시 파내 사용했다. 사망 직후 유골로부터 골수 등을 추출하려고 시도했고, 뼈 등을 도구로 쓰기 위해 변형시킨 것이 관찰됐다. 인골을 음식이나 도구의 재료로 활용하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인간은 잔혹하다. 역사 내내 잔혹한 전쟁이 지속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잔혹하게 학살당했다. 지금도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국가들이 약소국가들을 잔혹하게 유린하고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주장은 만물의 학살자라는 의미일 수 있다. 한 종이 포식자가 없어지고 먹이의 제한이 없어지면 개체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자연을 파괴하여 스스로 파멸한다는 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제3의 침팬지』책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