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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최초의 기억과 가소성


인간의 뇌는 어떤 경험을 하는지, 무엇을 배우는지에 따라 변한다. 뇌가 바뀌면 인간도 바뀐다. 이것이 뇌 가소성이다. 뇌가 바뀌면 생각도 바뀌고, 행동도 달라진다. 그렇다면 인간은 스스로 머릿속을 재 프로그램해서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는 셈이다. 인간의 뇌는 매일 변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새로운 생각할 때마다 머릿속에는 신경이 새롭게 연결되고 강화된다. 그러면서 물리적 구조도 새롭게 짜여 진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무제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가진 유전자의 제한을 받는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생각과 무제한으로 길러질 수 있다는 이분법이 아니라 이 둘은 불가분하게 연결된 것이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유전자가 뇌가 환경에 적응하면서 발달되는 방식과 복잡하게 얽히며 인간이 만들어진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중간존재이다.


인간의 뇌가 얼마나 유동적인지는 최초의 기억에 대한 연구를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다면 최초의 기억은 뇌 안에서 확정된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최초의 기억은 몇 살 때일까? 프로이트는 유년기 기억을 상실하는 것은 부모 등에 대한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작동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대 심리학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구성할 수 있는 인지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심리학계에서는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생애 최초의 기억을 평균 3~5살 사이로 본다. 평균 4.2살이라는 연구도 있고, 3.24살이라는 연구도 있다. 2021년에는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은 3.5살이 아닌 2.5살 때라는 연구가 나왔다.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09658211.2021.1918174



생애 최초의 기억은 특정 시점의 메모리가 아니라 일종의 기억 덩어리가 뇌에 축적되고, 거기에서 편집하여 생각해내는 것이다. 2.5살 때의 기억은 떠올리는 과정에서 3살 이후의 일로 잘못 생각해낸다는 주장이다. 사람들은 최초 기억을 계속 떠올리게 하면 더 오래된 기억에 다가간다. 반복할수록 사람들은 더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다. 저장된 정보들을 계속 정리하여 떠올리는 것이다. 부모에게 확인한 결과 최초 기억은 자신들이 생각한 시기보다 더 이른 시기에 일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 속의 어린 시절 일이 일어났던 때가 계속해서 달라진다. 이번 연구는 어디까지나 평균치를 조사한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의 생애 초기 기억 연령은 개인마다 큰 차이가 있다.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인이 초기 기억 연령에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뇌에 저장된 정보는 컴퓨터 메모리에 저장된 것처럼 확실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은 뇌 속 정보를 수집하고 편집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확실하지 않을 수 있고 주관적이기도 하다. 그만큼 유연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뇌의 유연성과 가소성은 뉴런의 연결망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커넥톰(connectome)은 2005년 처음 사용한 용어로 뉴런의 전체 연결망 지도이다. 특정한 동물의 신경계 전체를 회로도로 그린 것이다. 태아 단계에서 인간과 침팬지는 모두 뇌가 성장하지만 출생 후에는 침팬지의 뇌 성장은 멈추고 인간 뇌는 빠르게 성장하며 시냅스 수도 크게 증가한다. 인간과 영장류의 큰 차이점이다. 사람의 뇌에는 뉴런이 천억 개 정도 있고 뉴런 하나당 수천 개의 시냅스가 있어서 다른 뉴런들과 연결된다. 인간 뇌의 커넥톰은 수백 조 개의 연결망으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이렇게 인간의 뇌는 네트워크 시스템이다. 커넥톰은 후천적인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 강한 경험은 굵은 시냅스를 만들고 반대의 경우엔 연결이 끊어지기도 한다. 뇌의 활동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커넥톰은 달라진다. 지능이 좋은 사람에게 머리 회전이 빠르다고 한다. 이는 커넥톰의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머리 좋은 사람은 뉴런 사이의 시냅스가 최적으로 배치돼 효율적으로 정보처리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뇌 가소성은 뇌 과학의 커넥톰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의 유전정보를 지닌 게놈을 해독해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고 유전자 배열을 분석하는 것이다. 생명현상을 결정짓기 때문에 흔히 생명의 설계도로 비유된다. 유전자 지도가 생물학적으로 이미 결정된 형질을 뜻한다면 커넥톰(Connectome)은 후천적인 뇌신경계 연결지도이다. 커넥톰도 게놈처럼 같은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 유전자와는 달리 고정적이지 않고 뇌의 활동 여부에 따라 신경의 연결 상태가 바뀐다. 생각이 바뀌면 신경세포의 연결(커넥톰)이 바뀌고, 자신의 자아와 인생도 바뀐다. 인간은 유전자의 운명과 커넥톰의 자유의지의 합계라고 말할 수도 있다.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유전자의 힘을 극복할 수 있는 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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