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5년 경 키케로는 “개는 네 발을 가진 인간의 친구이며 오직 인간을 위해 탄생한 자연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틀린 말이다. 개가 인간을 위해 탄생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개를 인간을 위해 ‘개량’하였고, 개는 인간을 자신을 위한 존재로 ‘개량’하였다. 공생이라는 의미이다. 개는 인간과 공생하는 동물이며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11년 숙명여대 문과대를 수석 졸업한 김경민 씨는 졸업식에 개와 함께 단상에 올랐다. “만일 맹인견이 없었다면 수석 영광은 없었을 거예요.” 안내 견을 만난 것은 2007년이다.
개의 조상(proto dog)은 인간이 남긴 쓰레기 더미를 뒤졌고, 고양이는 인간 주변에 모여든 쥐를 쫓으며 인간 곁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대가 거듭되면서 인간을 덜 두려워하는 개체들이 더 잘 살아남고 그 특성을 자손에게 물려주며, 결국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성향이 형성됐을 것이다.
반려동물은 야생동물에 비하여 아주 온순하고 순종적이다. 이것은 행동뿐 아니라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얼굴과 머리가 작고, 귀가 처지고, 털에 예쁜 반점이 있다. 찰스 다윈은 이를 ‘길들여짐 증후군’이라 불렀지만, 그 이유는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2014년 진화생물학자들이 ‘신경 능선 세포(neural crest cells)’라는 배아 발달 단계의 세포 집단에 주목하면서 생리학적 원인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 세포들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으면 얼굴 구조, 귀의 연골, 털의 색소, 공포 반응 등 다양한 특성이 동시에 변화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21세기 야생 너구리에게서도 나타난다. 도심 곳곳에 종종 출현하는 ‘도시’ 너구리는 인간 환경에 적응하며 신체적 변화가 나타난다. 일종의 ‘자연적’ 길들여짐(domestication) 과정의 초기 단계이다. 인간이 직접 동물을 잡아 기르는 것보다, 동물이 먼저 인간 주변 환경에 익숙해지는 것이 길들여짐의 출발점이다. 미국에서 수집된 약 2만 장의 너구리 사진을 분석한 결과 도시 너구리는 농촌 너구리보다 주둥이가 평균 3.5% 짧았다. 인간 가까이 사는 여우나 들쥐에서도 관찰된다. 이들이 점점 덜 겁을 내고, 나아가 신체적으로도 길들여짐의 징후를 보인다. 인간이 의도치 않게 야생동물의 진화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https://frontiersinzoology.biomedcentral.com/articles/10.1186/s12983-025-00583-1
내가 사는 과천의 양재 천 상류는 ‘자연스럽게’ 정비되면서 다양한 야생생물이 살고 있다. 다양한 민물고기가 이동해왔고 수많은 종이 서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커다란 잉어, 두루미나 야생오리도 서식하고 있다. 처음에는 지나가기만 하면 도망가던 두루미와 야생오리가 이젠 사람이 가까이 가도 경계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야생오리가 살짝 경계하면서 바로 내 옆을 지나간다. ‘자연적’ 길들여짐(domestication) 과정의 초기 단계이다. 과거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는 생각조차 못할 일이다. ‘그 때’는 보기만 하면 잡아먹던 시절이다. 수많은 잉어와 물고기가 살지만 사람들은 관심 없다. 어린 시절 물고고기를 잡으며 놀던 때와는 아주 다르다. 먹고살만한 세상이 된 것이다. 물고기 잡던 추억은 없어진지 오래다. 자연보다는 전자기기가 놀이가 되었다.
………………………………………………………………………
https://brunch.co.kr/@62c9b87afb494b0
(제가 쓰는 글에 관심 있는 분들과 함께 대화나 토론의 ‘방’을 만들려고 합니다. 관심 있는 분은
ksk0508@gmail.com
연락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