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세계는 ‘계(system)’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도 ‘계’이다. 개체들이 교류하고 개체들 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세계이다. ‘종’ 간에도 영향을 주고받는다. 특히 인간이 생명계에 주는 영향은 강력하다. 자연계라면 오랜 세월이 걸릴 진화를 인간 때문에 단기간에 일어나는 일이 많다.
1970~1990년대 모잠비크 내전 동안 전쟁비용 조달을 위해 상아무역이 성행했다. 이로 인하여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공원(Gorongosa National Park)의 코끼리가 2500여 마리에서 2000년대 초반 200여 마리로 급감했다. 또한 상아를 얻기 위한 밀렵이 성행하면서 코끼리 암컷들이 엄니 없는 형태로 바뀌었다. 상아 있는 코끼리들이 밀렵으로 죽자 상아 없는 코끼리가 새끼를 낳아 종의 평균적인 특징이 바뀐 것이다. 이것도 진화이다. 내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상아 없이 태어난 암컷은 18~19%를 차지했으나 내전 이후 30% 이상으로 증가했다. 코끼리는 엄니로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땅을 파서 물을 찾는다. 엄니가 없는 코끼리는 밀렵꾼을 피할 수는 있지만 살아남기가 힘들다. 상아 없는 코끼리는 상아가 있는 코끼리와 다른 식물을 먹어 살아남는다.
1996년~2019년 사이 발트 해 대구의 몸길이가 절반으로 줄었다. 인간이 큰 대구를 지속적으로 포획하여 작은 대구가 더 많아진 것이다. 1996년에는 대구 성체의 중앙값 몸길이가 40cm 무게 1356g이었다. 2019년에는 20cm, 272g으로 줄었다. 큰 체형을 유발하는 유전자 변이가 시간이 갈수록 감소한 것이다. 현행 어업은 일정 크기 이상의 물고기만 잡도록 제한하고 있다. 어미가 번식하도록 유도하여 보호하자는 취지이다. 이로 인하여 대구가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크게’ 진화한 것이다.
곰도 단기간에 진화했다. 인간 때문에. 마을 근처에서 사는 이탈리아 아펜니노 불곰(학명 Ursus arctos marsicanus)은 이탈리아 중부에서 농업이 퍼지면서 산림 개간이 늘고 인구가 증가하여 고립되었다. 2000~3000년 전 다른 유럽 불곰에서 갈라져, 로마 시대 이후 완전히 고립된 상태를 유지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0년 이상 유전자 변화로 몸집이 작아지고 덜 공격적으로 변했다. 다른 유럽 불곰보다 유전자 다양성이 감소하고 근친교배 비율이 높았다. 이들의 진화 과정에서 공격성이 감소하는 유전자 변이가 나타났다. 덕분에 인간과 갈등이 줄어 고립된 상태나마 생존할 수 있었다.
https://academic.oup.com/mbe/article/42/12/msaf292/8355027
그린란드에 사는 북극곰(Ursus maritimus)도 유전자가 바뀌었다. 기온이 올라 해빙이 적은 그린란드 남동부에 고립된 북극곰 집단은 해빙 의존도가 다른 곳보다 낮다. 해빙이 사라지면서 물개 사냥이 힘들게 되자 지방 처리와 연관된 유전자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북극곰의 유전자 변화는 지난 200년 사이에 일어났다. 북극곰들이 점차 육식 대신 식물성 식단에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급격한 유전자 변이는 ‘도약 유전자(jumping gene)’ 덕분에 가능했다. 점핑유전자는 DNA에서 위치를 단기간에 쉽게 바꾸는 유전자다.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186/s13100-025-00387-4
인간이 자연의 진화에 개입하는 사례는 많다. 최근에 가장 큰 사건은 코비드19이다. 자연을 파괴하여 인간에게 가까이 온 바이러스가 ‘진화’하여 인간을 감염시켰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죽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인간의 유전자 풀도 진화하였다. 코비드19에 약한 인간이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 단 3년 만에 인간도 진화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백신을 개발하자 바이러스도 다시 변이를 일으켜 진화했다. 이것이 생명 ‘계’의 모습이다. 하지만 여전히 생명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누가’ 말했듯이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쓸데없는’ 일(‘자신’의 생존번식)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