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에 치여 내가 누구인가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 모두가 똑같은 앵무새로 키워지도록 강요받는 느낌이었다.” 1백여 명의 서울 소재 명문대에 2009~2015년에 입학한 대학생들에 대한 조사 결과이다. 이들 대학생들 중 스스로 학원 수강 여부 등을 결정한 경우는 15.7%에 그쳤고, 나머지는 모두 부모의 계획과 주도 아래 사교육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고통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옛날’ 아이들은 용돈도 두둑이 받고 즐겁게 놀던 날 중의 ‘하나’였었다. 지금은 일 년에 단 하루 놀 수 있는 날이 된 것 같다. 어린이날이 끝나면 다시 학원에 가야한다. 우리나라 아이들 중 상당수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도 학교가기를 싫어한다. 반면 핀란드의 유소년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공부를 증오하게 만들고 있다. 학교가 싫으면 반항을 하거나 학교수업에 대해 무관심해진다. 학원은 말할 것도 없다. 중학교 쯤 다니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라. “학교 가고 싶어?” “아니요!” 일부 아이들은 끝에 “ㅆ…” 같은 욕도 한다.
부모가 주도하는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상당수가 부모를 원망하였다. 사교육 경험을 떠올리기도 싫은 상처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그들은 언제나 너무 지겨웠고 화가 난다고 한다. 내신, 수능, 토플, 논술, 제2외국어 등을 준비하던 대학입시 기간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저는 특목고에 다니고 성적도 좋아요. 빨리 ‘입시 지옥’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저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꿈이 아닙니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여행하고 노는 것이 꿈이죠. 부모님은 제 마음을 모르죠. 설령 안다고 해도 바뀌는 게 없을 거예요.”
부모들도 함께 힘들었다. 수험생 어머니들은 대학 입시 준비과정에서 극심한 불안과 긴장에 시달리며 신체적 고통을 느꼈다고 호소한다. 소화불량은 물론 두통과 허리통증, 탈모나 이명 현상도 겪는다. 아이에게 참을 수 없는 화와 짜증이 일어나 폭언·폭력을 하는 부모도 있다. 어떤 엄마는 “대학에 떨어졌다는 통지를 받고서 먹었다 하면 체했고 속이 메슥거렸다. 아이를 위로해줘야 하는데 고함부터 지른다. ‘그래. 네가 공부 열심히 안 하고 딴 짓할 때 알아봤어!’”라며 힘들어했다. “추가 합격자 발표 때까지 기다리는 순간순간이 거의 지옥이었다.” “아무 것도 못하고 병원에 가서 정신적인 치료를 받기도 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부 중 한 사람 또는 부부 모두가 자녀 입시공부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부부 모두가 그러면 자녀들은 정말로 힘들다. 부부 중 한 사람만 그런 경우 가정 내 갈등이 심하다.
설령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입시에 지쳐 무기력하게 사는 사람도 꽤 많다. “정말 열심히 해서 일류대에 붙었어요. 꿈에 그리던 대학에 입학했는데 이제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싫어요. 움직이기조차 싫고 그냥 누워서 쉬고 싶어요.” 2000년대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쓸데없는 것’을 찾는다는 뉴스를 보았다. 파도치는 장면 같은 ‘의미 없는’ 영상을 찾아서 본다. 자기 스스로 ‘무민 세대’라고 자조한다. 없을 무(無)와 의미를 뜻하는 (mean)을 합친 말이다. 입시와 일에 시달리면서 지친 청년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맛 집을 찾지도 여행을 다니지도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모닥불이 타오르는 영상을 보면서 멍 때리기로 소일한다. 설령 입시에 성공했다고 해도 그들은 의욕을 잃었다. 이렇게 자녀를 키우고 싶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