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단상



기독교의 인간은 신의 모상으로부터 창조되었지만 원죄로 인하여 죽음을 겪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의 조상은 수백만 년 전에 유인원과 분리된 종이다. 우리 같은 현생 인류는 수만~수십만 년 전에 나타났으며, 당시에는 문자도 없었고 신 또는 유일신이라는 관념도 없었다. 진화과정에서 생존번식을 위하여 살아야했으니 원죄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인간은 신의 모상으로부터 창조되기는커녕 본능에 따라 먹고 먹히는 살벌한 생존경쟁 속에서 동물처럼 폭력과 범죄 속에서 살았다. 인간이 그것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와 문명이 생기면서 법률과 강제수단으로 그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붓다는 “태어남이 있으니 죽음이 있다. 태초 이후로 태어나서 죽지 않은 생명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교는 아담의 ‘원죄’로 인간은 죽는다고 믿는다. 영원히 사라지는 것인지, 윤회하는 것인지, ‘저세상’으로 가는 것인지 누구도 모른다. ‘믿음’만 있을 뿐이다. 죽음 이후의 ‘삶’을 말하는 것은 종교밖에 없다. 그것 하나로 종교는 인간에게 엄청난 ‘힘’이다. 물리학자는 죽음은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엔트로피의 증가로 인한 것이다. 붓다의 말과 엔트로피는 사실이고, 그리스도교의 주장은 신앙이다. 사실이던 법칙이던 신앙이던 인간은 죽는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고 변하여 왔지만 죽음 자체는 불변의 사실이다.


어떤 인간도 죽음의 순간에는 똑같다. 꽃이 피었다가 지듯이 인간도 태어나고 죽는다. 무심한 묘지들처럼, ‘나’는 언젠가 우주의 기본원소로 분해되어 우주를 떠돌 것이다. 동남아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사람 이야기를 영화『히어 애프터(Here after)』에는 “죽으면 그냥 불이 꺼지는 거지.”라는 대사가 나온다. 생명의 불꽃이 꺼진다. 죽음은 원래 있었던 자궁으로의 귀환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궁(womb)은 무덤(tomb)과, 수의는 포대기와 그렇게 닮아있다.


“우리는 시간을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흘러가는’ 강물이라 생각한다. 죽음은 강가에 우리를 내려놓는 것이다. 나의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한 의미란 없다. 나의 삶은 어떻게 되는가? 소멸할 뿐이다. 무엇 때문에 나는 존재하는가? 그냥 존재하며 왠지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 나는 소멸하고 이런 의문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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