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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경제생활과 불평등 이슈: 평등이라는 환상


오늘날 신분제는 대부분 사라졌고 우리나라『헌법』도 이점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헌법 제11조 제1항).”


신분과 관련된 용어는 계급, 위계, 계층, 서열, 지위 등 다양하다. 세습되는 신분도 있지만 경제적 수준이나 지적 수준에 따라 사실상의 계층이 존재하기도 한다. 기업 같은 조직에서는 서열이라는 말을 쓰며 인간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사다리’ 모양의 구조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 사회엔 공식적인 신분제도란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기업에서는 사장부터 말단 사원, 군대는 사령관부터 이등병, 관료는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 등 위계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갑’질이란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것도 그런 모습의 하나이다. 물론 이러한 현대 사회의 지위는 체계적으로 ‘경영’하기 위한 기능상의 분화로 인간의 법 앞에 모두 평등하다지만 실질적으로 ‘믿음’에 불과하다.


공식적으로는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1990년대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 신자유주의 경제체계와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소득 불균형이 극심하게 나타났다. 2011년 미국과 유럽 등을 중심으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이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2000년대 들어 지난 20년 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의 비율은 절반으로 줄었다(2018).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Ⅱ 연구보고서>(2015)에 의하면, 직업과 계층의 고착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즉 학력과 계층, 직업의 대물림이 점점 더 굳어져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갑’ 질의 나라, 금 수저 천국, 신 지주사회, 위험사회, 사다리사회, ‘헬’ 조선 등의 단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세대 간 계층이동성이 낮아지고 기회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사회는 ‘장벽’ 사회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계층상승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2013년 75%대에서 계속 올라 2017년에는 85% 가까이 올랐다. 2015년경부터 청년들 사이에서 ‘헬 조선’, ‘금 수저’ 같은 신조어가 유행한 것은 이러한 장벽에 대한 풍자였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좌절감은 아주 크다. ‘흙 수저’라고 자조하는 청년들의 한숨은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것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3포 세대’, ‘공시 족’, 극심한 저 출산, 주식 단타매매·선물거래·암호화폐 등에 대한 세계 최고의 투기 성향 등이 나타났다. 이로 인하여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어 ‘갑’ 질, 과잉경쟁, 집단이기주의, 기득권 카르텔이 나타나고 혁신보다는 진입장벽으로 초과이윤을 누리는 등 불공정과 비효율로 인한 저성장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권추구 집단이 발호하는 현상은 엘리트 계층이 지속적인 개혁을 통하여 이를 차단해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엘리트계층이 기득권 카르텔을 형성하여 이권추구에 앞장서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와 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역사 내내 인간관심사의 첫 번째였다.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사 중 1위는 빈곤과 불평등 문제이다. 코로나19가 터진 후 거의 1년 반 동안 1위를 차지했지만 이제는 3위이다. 반면 21세기 인류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기후변화는 10위이다. 28개국을 대상으로 매달 실시하는 ‘세계의 걱정거리’(What Worries World) 2021년 10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3%가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을 자기 나라의 가장 큰 걱정거리로 꼽았다. 이어 실업과 일자리가 30%, 코로나19는 29%로 부패와 함께 공동 3위를 차지했다. 기후변화는 범죄 및 폭력, 의료, 교육, 세금, 인플레이션 걱정에 이어 10위를 차지했다. 한국인들은 실업과 일자리를 48%로 가장 큰 걱정거리로 꼽았다. 이어 코로나19 45%, 부패 42%, 빈곤·불평등 27%, 세금 20%가 5대 걱정거리를 차지했다.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높은 나라는 콜롬비아 90%, 페루 83%, 아르헨티나 82%, 브라질 80%로 가장 높았다. 한국은 61%로 세계 평균치와 비슷했다.

https://www.ipsos.com/en-th/what-worries-world-october-2021


현실세계에서 ‘뿌리 깊은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르크스(Karl Marx)는 “생산에 필요한 자산과 자원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사실 자연세계에서 인간은 어느 누구도 ‘우주’를 소유할 수 없다. 우주란 그 안의 모든 것들이다. 인도에서는 “소유는 내가 우주로부터 독립된 존재란 착각에서 오는 착시”라고 말해진다. 하지만 인간은 늘 소유를 하면서 살고 있다. 20세기 들어 경제평등을 위해 공산주의 사회주의, 수정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가 출현했다. 조세정책과 복지정책 같은 소득재분배정책 등을 실시하여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경제적 불평등은 없어지지 않는다.


불평등뿐만 아니라 사실상 노예제도는 여전히 세계에 존재한다. 2013년 성 착취와 강제 결혼과 노동 등에 시달리는 현대판 노예가 전 세계적으로 약 3000만 명에 달한다. 과거 노예제와 비슷한 개인 소유 노예나 빚 때문에 육신을 담보로 제공하는 현대판 노예는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아프리카 모리타니의 노예지수가 가장 높다. 노예지수는 인구 중 노예가 차지하는 비율을 지수화한 것이다. 모리타니는 인구 380만 명 중 약 4%(15만1000명)가 노예 상태에 있다. 2위는 중남미 최빈국 아이티였고 이어 파키스탄, 인도, 네팔, 몰도바, 베냉, 코트디부아르, 잠비아, 가봉 순이었다. 노예 수만을 고려한 세계 10대 노예 국가 중에서는 인도 1390만 명이다. 그 다음으로는 중국 290만 명, 파키스탄 210만 명, 나이지리아 70만 1000명, 에티오피아 65만1000명, 러시아 51만6000명, 태국 47만3000명, 콩고민주공화국 46만2000명, 미얀마 38만4000명, 방글라데시 34만3000명 순이었다. 한국은 전체 인구 5,000만 명 중 1만451명이 노예 상태로 노예 지수는 162개 나라 중 137위이었다. 북한은 이번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한국일보, 2013.10.17.).


우리는 민주주의를 최고 정치적 가치로 간주한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는 다수결의 원리, 소수자의 보호, 경제적 평등 같은 다양한 이슈와 관련이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형식적인 주권자인 국민은 권력자들의 놀이 공으로 전락했다. 권력자들은 여론을 자기 입맛대로 이끌었고, 달콤한 약속과 선물을 미끼로 대중의 환심과 직위를 얻는데 급급하다. 세상이 바뀌고 평등이 보편적이 되었지만 현실에서 신분은 여전히 존재하여 고급관료, 판사와 검사, 대기업 기업주는 사회에서 분명히 ‘힘’이 다르고 사는 것도 과거 왕이나 귀족과 다름이 없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일생 동안 과거 시험을 준비하고 시험마다 수만~수십만이 지원하여 신분상승을 하고 싶었다. 현대 한국도 대학은 학문이 아니라 신분상승의 수단이 되었고 교수는 교육, 의사는 의료, 법관은 정의라기보다는 승리한 사람이 가지는 전리품이 같은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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