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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Dec 28. 2021

프랑스혁명은 태양과 화산이 일으켰다?

열대지방의 따뜻한 물은 북유럽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흐르다가 차가운 북극해와 만나면 차갑고 밀도가 높아져 바다 밑으로 내려간다. 그 후 심해로 가라앉은 물은 북미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흘러 계속 전 세계를 순환한다. 이는 ‘대서양 대규모 해양순환(Atlantic Meridional Overturning Circulation, AMOC)’이라고 부른다. 1300년대 후반에 태양 활동이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이러한 태양 활동은 그린란드에서 고기압을 유발했다. 또한 화산 폭발이 덜 일어나고 대기 중에 화산재가 적어지면서 깨끗한 대기는 지구가 태양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았다. 이로 인하여 대서양 대규모 해양순환이 강화되어 따뜻한 물이 훨씬 더 많이 북쪽으로 이동하여 북극 얼음이 급속히 없어졌다. 1300년대 후반과 1400년대에 걸쳐 수십 년 동안 엄청난 양의 얼음이 북대서양으로 밀려들어오면서 바다를 냉각시키고 염도가 낮아지면서 대서양 대규모 해양순환이 붕괴됐다. 결국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약 400년 동안은 소빙하기가 찾아와 지구상 평균기온이 2도 떨어졌다. 북대서양 지역에서 한파가 찾아와 유럽 전역에서 기근과 전염병을 초래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bi8230


이러한 소빙하기는 인간역사를 바꾸어놓았다. 명나라는 몽골족이 세웠던 원나라를 쓰러뜨리고 한족이 세운 통일왕조로 1368년부터 1644년 멸망할 때까지 3백년 가깝게 중국 대륙을 지배했다. 명나라는 만주족이 세웠던 후금(이후 청나라가 됨)의 압박과 민란으로 멸망하였다. 명나라가 무너진 표면적인 이유는 농민반란이지만 농민 반란의 뒤에는 ‘대기근’이 있다. 중국인구사에 따르면 명나라가 멸망한 1644년의 총 인구는 약 1억5천 만 명으로 1630년 1억 9천만에 비해 4천 만 명이나 줄었다. 14년 사이에 인구의 약 21%가 준 것이다. 명나라에서 기근이 발생할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인구가 감소했다. 이 시기는 900년~1300년에 나타났던 중세 온난시기(medieval warm period)가 끝나고 등장한 소 빙기(little ice age)이다. 소 빙기를 맞은 명나라의 여름은 짧고 습하며, 겨울은 길고 추웠다. 중부와 북부의 여러 성에 걸쳐 가뭄과 질병, 메뚜기 떼가 극성을 부렸고 황허 강의 수위도 낮아졌다. 명 왕조 말기 지구 기온은 중세 온난시기보다 1도 이상 떨어졌다. 평균 기온이 1도 정도 변하면 농작물 생산량은 10% 이상 감소된다. 당시 북반구 지역의 겨울 평균 기온은 20세기 후반과 비교해 약 2도 정도 낮았고, 이는 급격한 식량 생산 감소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적인 기온 급강하로 빙하가 확장되어 해수면이 낮아졌다. 극심한 기근으로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굶주린 농민들은 수도 북경으로 진군하는 이자성의 군대에 합류하였고, 몇 년간 지속된 흉년으로 군사 체계가 무너진 명나라 군대의 저항은 미미했다. 결국 1644년 북경에 당도한 이자성의 황제 선언으로 명 왕조는 몰락하였고, 이후 등장한 청나라가 중화 대륙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1788년에는 프랑스 등 유럽은 흉작과 혹독한 겨울로 고통은 심각했다. 루이 16세는 국인의 불만을 해소하려고 재정 개혁을 추진하여 특권 계층도 세금을 부담하는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성직자와 귀족은 이를 거부하며 1789년 삼부회를 소집하였고, 귀족 188명, 성직자 247명, 평민 500명이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여기에서 개혁안이 제안되었지만 표결방식을 둘러싸고 귀족, 성직자 대표와 평민 대표 간에 갈등이 생겼다. 삼부회의에서 상위 2%인 성직자와 귀족은 세금을 한 푼도 안 내고 차 상위 8%를 차지하는 신흥 부자인 부르주아에게만 세금을 더 내라는 것이 수용될 리도 없었고, 투표권 비율부터 이견을 보인 것이다. 그리하여 평민 대표들은 별도로 국민의회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국민의회의 회의가 루이 16세의 방해로 열리지 못하자 ‘헌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절대 해산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했다. 그 후 국민의회는 ‘제헌의회’를 선포하였고 루이 16세는 파리에 수만 명의 군 병력을 동원했고, 세제 개혁을 추진하던 네케르를 해임하여 시민들은 분노했다. 시민들은 교회, 학교, 무기고 등을 습격했고,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고 이것이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인간과 그 문명이란 자연에 종속되어 있다. 태양과 화산활동의 변화로 인간역사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문명의 교체도 인간해방을 가져온 프랑스혁명도 인간이 독자적으로만 이룬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의 영향을 받으면 자연과 공존한다. 물론 우리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며 문명을 이루었지만 강력한 자연재앙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앞으로 어떤 재앙이 닥칠지는 예측하기는 어렵다. 어디서 어떤 대형 화산이 폭발할지, 대지진이 발생할지 분명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소행성 충돌도 복병이다. 긴 시간으로 보면 우리 인간은 또는 우리 인간 종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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