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지질학과 대학원생이던 월터 앨버레즈는 이탈리아에서 특이한 진흙층을 발견했다. 얇은 진흙층을 경계로 위·아래 지층에서 나오는 유공 층의 크기가 확연하게 달랐다. 10여 년 후 미국 대학 교수가 된 그는 아버지인 루이스 앨버레즈에게 당시 수집한 진흙층 샘플의 분석을 부탁했다. 루이스 앨버레즈는 소립자 연구로 196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물리학자다. 샘플 분석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진흙층은 다른 지층보다 이리듐 농도가 수십 배 이상 높았다. 이리듐은 가장 흔한 종류의 운석인 콘드라이트에 풍부하다. 이후 앨버레즈 부자는 공룡이 멸종한 것은 직경이 6~14㎞에 이르는 소행성의 충돌 때문이었다는 연구 결과를 1980년 6월 <사이언스>지에 미국의 물리학자 루이스 앨버레즈와 지질학자 월터 앨버레즈 부자(父子)는 논문을 발표했다. “65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한 것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지질학자들의 비웃음만 샀다. 당시엔 큰 덩치를 지닌 공룡이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망했다는 가설이 주목받고 있던 때였다. 또한, 그때까지 발견된 대형 분화구 중에는 공룡 멸종 시기와 일치하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10년쯤 지나 멕시코 유카탄반도 북쪽에 있는 거대한 구덩이(멕시코 칙술루브 충돌구. Chicxulub crater)가 외계 물체와 부딪혀 생긴 충돌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6500만 년 전 지름 2.6~2.8㎞짜리 소행성이 충돌한 증거이다. 1991년 인공위성에 의해 소행성이 떨어진 위치가 밝혀졌다. 유카탄 반도의 북쪽 해안에 있는 지름 180㎞, 깊이 30㎞에 이르는 칙술루브 크레이터가 바로 그것이다. 이후 전 세계 각지의 지층 정밀 연구 결과를 비롯해 칙술루브 크레이터 안에서 소행성 먼지와 일치하는 화학적 지문 발견 등으로 공룡 멸종의 범인은 소행성 충돌이라는 사실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이정도 규모의 소행성이 지구로 떨어지면 온도가 태양 표면의 10배 정도인 6만도까지 치솟고 연쇄지진, 화산폭발, 해일, 화재로 하루 만에 십억 명 이상이 죽을 수 있다.
칙술루브 크레이터의 암석을 분석한 결과 그곳을 강타한 물체는 탄소질 콘드라이트 부류이다. 탄소질 콘드라이트는 탄소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태양계 역사 초기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는 원시 운석이다. 따라서 충돌 물체는 화성과 목성 사이에 위치한 소행성대의 안쪽 부분에서 왔거나 태양계의 가장 바깥 오르트 구름에서 온 것으로 추정돼 왔다. 하지만 어디서 왔는지는 불명확하였다. 2021년 이 충돌체가 화성과 목성 사이에 위치한 주요 소행성대의 바깥 부분에서 왔다는 연구가 나왔다.
6600만여년 전 지구에서는 대멸종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공룡 뼈와 이빨 화석들이 발굴됐지만, 6600만 년 전 이후로 추정되는 화석은 단 한 점도 없다. 새의 조상으로 불리는 두 발로 걷는 수각류 공룡 화석을 제외하고 육상 공룡 화석 중에서는 6600만 년 전보다 젊은 화석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공룡이 완전히 멸종한 시점이 6600만 년 전이라는 해석에 대해 고생물학자들은 이견이 없다.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인도 델칸 고원의 화산 폭발과 멕시코 유카탄반도를 강타한 소행성 등이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화산폭발에 의한 지구온난화가 실제 대멸종 시기보다 훨씬 전에 일어났으며 공룡이 사라지게 한 원인은 대충돌이라는 주장이 2020년에 나왔다. 유카탄반도의 칙술루브 분화구는 중생대 백악기 말기인 6604만 년 전에 소행성이나 혜성과 충돌해 생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칙술루브 대충돌이 일어난 뒤 두 번째 소행성과 충돌해 기후변화가 가속화했다는 연구가 2021년 나왔다. 첫 번째 대충돌로 인한 기후변화가 채 회복되기 전에 발생해, 지구 기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충돌의 흔적은 우크라이나 중부의 볼티시 분화구에서 발견된다. 지름 24㎞의 잘 알려지지 않은 볼티시 분화구는 대멸종이 일어난 지 65만년 뒤인 6539만 년 전에 생성됐음을 알아냈다.
이 소행성은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 벨트에서 온 것이라는 가설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다른 가설도 있다. 2021년 태양계 끝에 있는 오르트 구름에서 온 혜성이 태양에 가까워지면서 쪼개진 파편이 충돌한 것이라는 가설이다. 지구에서 발견된 ‘칙술루브’ 정도의 충돌구들이 탄소화합물을 많이 포함한 탄소질 콘드라이트(C-콘드라이트) 충돌체가 충돌했을 때의 성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소행성보다는 혜성 파편 충돌 가설을 뒷받침한다. 장주기 혜성은 대부분 탄소질 콘드라이트 성분을 갖고 있는 반면 소행성 벨트의 소행성은 약 10분의 1만 이런 성분을 갖고 있다. 오르트 구름은 태양계 끝을 둘러싸고 있다. 태양을 공전하는데 200년 이상이 걸리는 장주기 혜성은 여기서 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혜성은 목성의 중력으로 태양 쪽으로 밀려와서 태양을 스쳐 지나간다. 이 때 혜성이 태양에 가까운 부분과 먼 곳의 중력이 차이가 나서 파편으로 나누어진다. 태양으로 끌려오는 혜성의 약 20%가 이러한 일을 겪는다. 이렇게 파편화하면서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10배가량 더 높아진다. 이러한 논문을 발표한 아미르 시라즈(Amir Siraj)는 뉴잉글랜드음악원 피아노 석사 과정과 하버드대학 천체물리학 학사 및 석사과정을 동시에 밟고 있는 특이한 사람이다. 박사과정도 아닌 석사과정 학생이다. 우주의 혜성이나 소행성은 결코 우리와 관계없는 저 먼 곳이 아니다. 우리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과학이 하는 일이다.
2015년 발견된 그린란드의 북서부 히아와타 빙하(Hiawatha Glacier) 밑에 숨겨진 거대한 충돌구가 발견되었다. 이 크레이터는 폭이 31㎞로, 빙하 약 1㎞ 아래에 있다. 당초 최대 300만 년 전부터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시점이던 1만 2000년 전 사이의 것으로 추정했었다. 그러나 약 5800만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5800만 년 전 그린란드는 온대 우림지역이었다. 당시 약 1.5㎞ 크기의 천체가 충돌하면서 그린란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됐을 것이다.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bm2434
이렇게 엄청난 충돌이 발생하여 공룡이 멸종하고 조류와 포유류가 약진하였다. 과거 과학자들은 공룡이 중생대 말에 모두 멸종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깃털 공룡이 발견되고 수각 류 공룡과 조류의 연결 고리가 밝혀지면서 비 조류 공룡(non-avian dinosaur)만 멸종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여러 학술지에는 공룡이 멸종하고 1천만~1천500만년 동안 조류의 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빅뱅’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조류 48종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조류도 소행성 충돌에서 단 몇 계통만 살아남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1만종이 넘는 지구상 조류의 95%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집단으로 진화했다. 지구에서 살고 있는 새나 포유류도 6천만 년 전의 대충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