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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Apr 20. 2022

머리 좋은 동물이 살아남은 신생대와 현대

과거 14만 년 전경과 7만 년 전경은 빙하기였다. 빙하기에는 북극해의 대부분이 바다에 떠 있는 얼음덩어리(빙붕, ice shelf)으로 덮여 있었다고 생각된다. 북극해와 인접한 북유럽해가 대부분 민물이었고 두껍고 거대한 얼음으로 덮여 있었던 증거가 2021년 발견되었다. 바닷물이 있으면 발견되는 방사성 원소가 북극해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방사성 원소 토륨(thorium) 230은 바닷물에서 우라늄이 붕괴될 때 만들어지는 원소이다. 토륨 230은 해양 퇴적물에 축적된다. 그렇지만 토륨-230은 북극해와 북유럽해서 발견되지 않는다. 바닷물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수마트라 섬 화산폭발로 시작된 7만~6만2000년 전 빙하기와 그 이전 15만~13만1000년 전경의 빙하기에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이 북극해와 북유럽 해를 둘러쌓아 막아 이곳에 담수로 채운 것으로 보인다. 담수가 존재했을 때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북유럽 해까지 확장되어 대서양의 바닷물이가 유입되는 것을 막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두 번의 빙하기 동안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생기면서 바닷물이 아닌 민물이 채워졌었다는 증거를 찾은 것이다. 빙붕의 증거는 북극 해양 퇴적물 중심부에서 찾을 수 있는데 퇴적물 중심부의 샘플을 확보하고 특성을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그동안 증거를 찾지 못했었다.


대형 포유류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진 약 11만 년 전 신생대 말 대멸종은 기후변화로 인한 빙하기와 인류의 확산이 원인으로 꼽힌다. 마지막 빙하기가 지구 상당 부분을 얼음으로 덮은 뒤 곧바로 급속한 간빙기가 닥쳐 동물들은 서식지를 서둘러 옮겨야 했다. 인류는 유라시아에서 처음으로 아메리카와 호주 대륙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가 사람을 처음 본 동물을 손쉬운 먹잇감으로 삼았다. 이런 환경변화에 가장 취약한 것은 덩치가 큰 동물이었다. 거대동물은 워낙 개체수가 많지 않은 데다 수명이 길고 출산율이 낮아 애초 멸종 위험이 크다.


매머드를 비롯해 소형버스 크기의 자이언트땅늘보와 승용차 크기의 아르마딜로 등 거대동물이 멸종한 이유의 하나는 뇌가 작아 당시의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멸종 사태가 발생한 11만5000년 전 이후 뇌가 큰 동물일수록 생존 확률이 높았으며 살아남은 포유류의 뇌는 멸종한 동물보다 53%가 크다. 큰 두뇌를 지닌 동물은 변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다. 기원전 2000년 원주민이 호주로 데리고 온 개가 야생화한 딩고가 당시 자리 잡은 포식자였던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와 태즈메이니아데빌을 압도한 것도 큰 두뇌 덕분이었다. 그러나 큰 두뇌가 꼭 동물의 생존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두뇌 유지에 에너지가 많이 들고 두뇌가 크면 임신 기간이 길고 터울이 길며 새끼를 적게 낳아 오히려 멸종하기 쉬워진다. 아르마딜로의 친척인 글립토돈은 큰 두뇌가 진화에 꼭 유리하지 않다는 증거이다. 단단한 장갑과 가시로 무장한 장갑차 같은 무게 2t의 글립토돈은 포식자 걱정 없이 작은 두뇌로 2300만년을 살아왔다. 그러나 1만5000년 전 아메리카 대륙에 사람이 들어오자 곧 멸종의 길로 접어들었다. 덩치 큰 동물은 성숙이 늦고 번식률이 낮지만 두뇌가 크다면 생존율이 높아진다. 큰 두뇌를 보유한 동물만이 사람의 압력에 대처하고 급격한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대형 동물을 설명할 수 있는 건 두뇌 크기이며 몸이 클수록 뇌 크기가 작을수록 멸종 확률은 커진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98-022-07327-9


빙하기에 살아남은 인간은 그 중 가장 머리가 좋은 종이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여 살아가던 기원전 13만5천 년~9만 년경에 아프리카대륙은 빙하기 이후 건조화로 인하여 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화석에서 채취한 DNA를 분석해보면 당시의 인구수에 심각한 병목현상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는데, 학자들은 그 무렵의 인구가 2천 명 내외까지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뭄이 끝난 후 인구는 원래의 수준을 회복했고, 인류는 약 40개 집단을 이루어 아프리카 전역으로 흩어졌다. 또 다른 유전적 증거에 의하면 마지막 빙하기의 시작점인 10만 년 전에는 인간의 숫자가 아마도 1만 명 정도로 위험스럽게 작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천 명이던 1만 명이던 가뭄이 더 심했다면 우리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우리 인간이 지금 이렇게 문명을 이루고 아등바등 살아가게 되는 과정은 험난했고 필연인지는 모르지만 ‘우연’의 연속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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