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2년 3월 출간한 <미래형 인재 자녀교육>을 업데이트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운동할 시간도 잠잘 시간도 친구들과 놀 시간도 부족하다. 학원과 사교육을 중심으로 한 입시 공부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라는 압박을 받는다. 물론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성공은 좋은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교육 방법이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령 입시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입시 공부를 하던 때를 지옥 같았다고 말하는 청소년도 많다.
유엔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CRC)은 청소년의 놀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를 특정해서 만들어진 협약은 아니지만 정말로 우리나라가 관심 가져야 할 협약이다. 그것은 그냥 아이들을 놀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제시된 것이다. 이 협약은 18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의 권리를 담은 국제적인 약속으로 1989년 11월 20일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필자도 이 책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그 협약에는 아동들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가 담겨 있다. 발달의 권리(Right to Development)에는 교육받을 권리뿐만 아니라 여가와 문화생활을 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권리는 인간으로서 성장기에 누려야 할 아주 기본적인 권리이다. 특히 제31조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충분히 쉬고 충분히 놀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2019년 우리나라의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심의에서 “한국의 공교육의 목표는 오직 명문대 입학인 것으로 보인다. 아동의 잠재력을 십분 실현하고 발달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만이 목표인 것 같다. 이는 아동권리협약의 내용과 거리가 멀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실질적으로 정부가 관심을 기울이는지 들은 바도 없다.
2022년은 어린이날 100주년이다. 어린이날은 방정환(1899~1931)이 1922년 5월 1일 ‘어린이날 선언’을 한 것에서 유래했다. 이 선언은 1924년 국제연맹이 채택한 ‘제네바 어린이 권리 선언’보다 앞선다. 선언문에는 아이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고 잠을 충분히 자게하고 운동을 많이 하며 잘 놀게 하라는 당부가 적혀있다. 놀라운 혜안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왔다. 2022년은 100년이 되는 어린이날이다. 2022년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에서 “학원을 조금만 가게 해 주세요.” “어린이의 수면 시간을 지켜 주세요.” “어린이가 휴대전화, 컴퓨터 중독이 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어린이날 100주년이 되었지만 지금은 일 년 365일 중 364일은 어린이날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몇 년 전 어떤 아이가 어린이날을 늘려달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육열이 높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육열이 전혀 없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심의에서 지적받았듯이 한국의 교육 목표는 오직 명문대 입학이지 청소년의 잠재력을 키워 주고 교양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며 경쟁만이 목표이다. 대학간판이 중요하지 대학교육의 질에는 대부분 관심이 없다. 이점은 대학등록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학등록금 인상률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면서 2010년 반값등록금 정책이 도입되고 대학등록금이 동결되었다. 이로 인하여 1인당 국민소득 대비 교육비 수준은 국가 재정위기를 겪었던 그리스 등을 제외하고는 경제협력기구 가입국 중에 ‘꼴찌’에 올랐다. 경제협력기구 국가들의 1인당 국민소득 대비 대학교육비 비율 평균은 49%이다(2017년). 우리나라는 2021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5천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환율이 1180원으로 가정하면 경제협력기구 수준이 되려면 등록금이 2천만 원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4년제 사립대학 등록금 수준은 7백5십만 원으로 1인당 국민소득 대비 18%수준이다. 49%와 18%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수치이다. 지금도 정치권은 반값등록금 운운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대학재정이 악화되면서 강사가 양산되었다. 교수의 급여 또한, 10년 이상 동결되었고, 외국인 학생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 대학에서 강의를 해보면 우리말조차 알아듣지 못 하는 외국인 학생들이 넘 많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질은 이제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질과 양면에서 뛰어난 연구실적을 내는 우리나라 교수들이 언제까지 한국대학에 설지 의문이 든다. 반값등록금은 좋은 제도이다. 하지만 대학교육의 질이 더 중요하다. 교육은 청소년과 우리 자녀의 미래이다.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파격적인 재정지원을 하면서 경제협력기구 수준의 대학교육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권에게 기대할 수가 없다. 당장 표가 날아가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공감이 필요하다. 누가 이일을 하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