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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인간

구석기시대의 유산 등산


하버드대학교 생물학과의 에드워드 윌슨은 현대인에게는 바이오필리아, 다시 말해 ‘녹색갈증’이 있다는 주장을 했다. 오랜 세월 사냥과 채집생활을 한 인간의 유전자에 내재된 광활한 자연에 대한 욕구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최고의 취미는 등산으로 전체 인구의 약 15%가 등산을 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선호도가 증가하여 남녀 모두 40대 이상인 경우 등산을 취미로 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반면, 20대는 2~3%에 불과했다. 과거 구석기시대의 자연이란 포식 동물과 독초가 가득한 위험한 곳이었을 것이니 어린 아이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였을 것이다. 사냥기술과 독초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냥꾼이었을 나이든 사람이 어린 청소년을 이끌고 산과 들을 누비는 것은 오래 전에 있었던 풍경이었을 것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나이 든 기업주나 어른이 젊은이들을 산에 끌고 가는 것은 구석기시대인의 행동의 무의식적인 반복일지 모른다. 산에서 내려와 고기를 구워 먹고 노는 것은 사냥감을 잡아 집에 돌아와 벌이는 원시적 축제가 발현된 것일 수도 있다. 윌슨이 기술한 바이오필리아는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과연 스마트폰과 함께 21세기를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 중년을 넘어서, 게임과 스마트폰을 끊고 산으로 강으로 달려갈지는 의문이 든다.

동물에 공통적인 놀이문화

2022년 곤충 가운데는 벌도 물건을 가지고 노는 것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주 작은 나무 공을 가지고 놀았다. 일부 벌은 다른 벌에 비하여 훨씬 많이 공을 굴리는 놀이를 하였다. 노는 것을 좋아하는 벌도 있는 것을 보면 인간과 마찬가지이다. 벌의 놀이 시간은 어릴수록 또 수컷이 암컷보다 길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같았다. 암컷 벌은 일을 많이 하여 놀 시간이 부족하여 수컷 벌이 더 많이 놀았다. 곤충은 지각과 느낌이 없는 생물이라는 전통적인 사고와는 전혀 맞지 않는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20년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My Octopus Teacher)’은 남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에서 사는 암컷 문어 이야기이다. 2021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영화를 보면 문어가 인간과 친구같이 지내는 모습이 나온다. 장난도 친다. 문어는 지루해지면 주위의 부유물이나 작은 물고기를 가지고 ‘장난’도 친다.


스포츠가 놀이에서 유래한다고 보는 것은 유희 기원설이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는 자신의 책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의 본질은 ‘재미’라고 주장했다. 스포츠(Sport)라는 단어는 ‘즐겁게 놀다.’라는 뜻의 라틴어 ‘Disporter’에 뿌리를 두고 있다. ‘Dis’는 ‘제거’를 의미하고 ‘Porter’는 ‘운반’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놀이는 인간 이전 동물에게도 나타난다. 동물의 놀이가 어떻게, 왜 기원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놀이와는 정반대로 인간 간의 싸움에서 비롯했다는 주장도 있다. 축구경기는 ‘적’과의 싸움에 비유된다. 잔디 경기장은 전쟁터이고, 양측의 지휘부인 감독이 전술을 세워, 사령부인 골문을 농락하고, 적 후방을 뛰어 들어가 승리의 득점을 하는 경기는 전쟁 전투의 축소판이다. 축구용어로 쓰이는 대포알 슛, 태극 ‘전사’, 명장, 전차군단, 무적함대 등은 전쟁 같다.


위험한 스포츠는 뇌가 즐긴다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는 친구가 있다. 대학 때부터 산악부에 활동했는데 에베레스트 동계등반부터 파키스탄 트랑고 타워 암벽등반까지 전 세계 산을 누볐다. 그가 암벽을 타는 모습을 보면 나 같이 겁 많은 사람과 체질도 다르고 몸도 달랐다. 특히 알렉산더 호놀드(Alexander Honnold) 같이 안전장치도 없이 단독으로 암벽을 오르는 사람을 보면 정말 특별하다. 간혹 산악자전거 동영상을 보면 수백 미터 높이의 암벽지대를 자전거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들의 뇌는 달랐다. 2021년 1월 스위스 취리히대학 연구팀 연구에 의하면 위험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뇌의 특정 부위 회색 질 용적이 다른 사람보다 적다. 행복 호르몬 분비를 담당하는 부위(시상하부), 자제력을 담당하는 부위(배외 측 전 전두피질) 등의 회색 질 용적이 적었다. 인간의 하는 행동도 이미 물려받는 뇌 구조에 의하여 상당부분 정해져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나는 암벽등반을 멋지게 하고 싶어도 손발이 떨리고, 근육이 약하여 중간에 떨어져 자일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만다.

운동 후성유전자 변이

운동을 했던 사람은 다시 운동을 하면 근육이 좀 더 쉽게 생긴다. 어렸을 때 운동을 했던 사람은 어른이 돼서도 운동을 잘한다. 운동을 했던 경험이 다시 근육을 생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는 1991년에 나왔다.


그 후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결과 운동 훈련을 사전에 받은 쥐가 다시 운동을 시키면 근육의 양이 더 빠르고 많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운동을 통해 근육을 생성한 쥐의 근육 세포 DNA에 운동을 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DNA에 남겨진 흔적은 후성유전학적 변화로, 태어날 때는 없었지만 이후 생활 습관을 통해 발생한 변화를 의미한다. 대표적인 것이 ‘DNA 메틸화’로 DNA의 특정 부위에 ‘메틸기’라는 화학물질이 붙는 현상이다. 메틸기가 붙는 양이나 부위에 따라 특정 단백질의 발현이 조절된다. 비만이나 대사 질환 등 일부 질환들이 후성유전학적 변화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훈련을 받은 쥐의 근육 세포에서 이런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124개 발견했다. 쉬는 동안 세포 수준에서의 변화도 확인된 것이다.

사냥과 낚시

구석기 시대의 생활양식과 유전자는 사냥과 낚시라는 현대인의 취미로도 남아있다. 인간만 낚시를 하는 것은 아니다.


새가 하는 영리한 행동 중에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인간처럼 낚시를 한다는 점이다. 낚시를 하는 대표적인 새는 일본의 해오라기이다. 일본의 해오라기는 빵이나 과자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는다. 빵이 없으면 작은 곤충을 사용하기도 한다. 똥을 미끼로 사용하는 새도 있다. 굴 파기 올빼미는 말과 개, 고양이 같은 포유류의 똥으로 곤충을 유인하여 잡는다.


스포츠가 사냥에서 기원했다는 이론이 사냥 기원설이다. 영국의 동물생태학자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가 『축구 종족』에서 주장했다. 사냥이 점차 스포츠로 대체됐으며, 축구는 사냥 욕구를 충족해주는 대표적 운동경기라는 것이다. 공을 골문으로 몰고 가는 것은 사냥감 동물을 몰아가는 것과 같으며, 공이 골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냥감을 잡았음을 의미한. 축구단은 사냥하는 집단, 선수는 사냥꾼, 구단 이사진과 감독은 부족 원로에 비유했다.


그러나 지역마다 사람들의 생산양식은 달랐었다. 수렵을 주로 많이 했던 유럽 유목민 서양인은 축구, 럭비 등에 강하다. 밀림지대에 순발력이 뛰어나야 사냥을 잘할 수 있는 세네갈, 나이지리아, 카메룬, 가나 등도 축구에 강하다. 축구는 폭발적 달리기를 반복한다. 아프리카 축구 강호가 밀림 지대에 몰려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는 늘 초라한 성적을 거둔다. 아시아는 오랜 세월 사냥보다는 수작업이 많은 쌀농사를 지어왔다. 그래서 탁구나 배드민턴, 양궁 등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 마라톤 같은 장거리 육상은 케냐,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등 사람이 뛰어나다. 이곳은 초원 지대로 오래전부터 사냥감을 추격하여 잡는다. 이들이 마라톤 강자가 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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