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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인 비만, 운명의 신은 장내미생물이었다


체중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식이요법이다. 하지만 적은 양의 음식을 먹더라도 체중이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는 유전적 차이, 장내 미생물 등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90년대에 인도에서 전염병이 돌아 닭이 폐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원인을 찾아보니 조류바이러스(SMAM-1)로 밝혀졌다. 그런데 죽은 닭을 해부해보니 지방이 아주 많이 축적돼 있었다. 이 바이러스를 닭에게 주입했더니 체중이 늘었다. 비만의 원인이 바이러스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실제로 바이러스가 비만의 원인임이 밝혀졌다. 닭 농장을 하던 사람이 어린 시절에 닭에게 할퀴고 갑자기 비만 체질이 된 사례가 있다. 이 사람은 닭에게 할퀸 이후부터 금방 배고픔을 느끼고 늘 음식 생각이 났다. 이 환자에게서 ‘Ad-36’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 과거에 닭에게 물리면서 조류바이러스(SMAM-1)에 감염되었고, 이 바이러스가 ‘Ad-36’ 바이러스로 돌연변이 한 것이다. 내 몸을 내 몸이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조절한다는 기이한 현상이다. 인간은 분명 공생동물이다.


인간의 장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미생물이 산다. 인간의 세포는 100조 개이고 장내미생물이 1000조 개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다. 약 40조 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호모사피엔스라기보다도 호모 ‘박테리우스’ 사피엔스이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어떤 사람은 살이 찌고 어떤 사람은 날씬하다. 놀라운 것은 살이 찌는 원인이 장내 미생물 차이 때문이라는 점이다. 장내 세균의 분포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러한 차이로 건강이 달라진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쉽게 배탈이 나거나 살이 찌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내 세균과 비만이 관련이 있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비만인 사람은 장내 세균 구성이 정상인과 다르기 때문이다. 장내 미생물은 유익 균과 유해 균으로 나누어진다. 유해 균이 많아지면 비만을 유발할 수 있다. 살이 쪄서 비만인 사람과 잘 먹고도 날씬 한 사람이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유전자로 인한 선천적인 요인도 있지만 뱃속에 있는 미생물의 장난에 의한 것도 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운명의 신은 미생물이었던 것이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장내미생물에 따라 체중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뚱뚱해지면 같은 양을 먹어도 살이 더 찐다. 살이 찌면 장내 미생물이 달라져서 그렇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도 이는 명백하다. 비만인 쥐의 장내미생물을 다른 쥐에게 넣으면 체지방이 금방 증가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살이 찌도록 장내 미생물이 구성된 사람이 전체의 약 40%나 된다. 이들은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낮고 소화관을 통한 음식의 이동 시간이 훨씬 더 빨랐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입에서 식도, 위, 십이지장, 소장, 대장, 직장까지 하루 정도 걸린다. 음식의 이동 시간이 길면 영양분을 많이 섭취할 것 같지만 정반대이다. 이동이 빠르면 에너지 효율이 높아 같은 음식을 먹어도 더 많은 에너지를 흡수하여 살이 찔 확률이 더 높다. 장내 미생물이 다양하지 않은 사람이 같은 음식을 먹어도 살이 찐다. 장내미생물이 문제가 있는 사람은 가공식품, 단 음식 등을 많이 먹는다. 거꾸로 이런 음식을 많이 먹어 장내미생물이 나쁘게 변한다.

https://microbiomejournal.biomedcentral.com/articles/10.1186/s40168-022-01418-5


장내미생물 구성이 나쁜 사람은 실제로 ‘나쁜’ 음식을 많이 찾고 식탐이 많다. ‘오늘은 왠지 얼큰한 찌개가 먹고 싶은데!’ ‘오늘은 냉면이 이상하게 땅기네!’ 누구나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왜 그런지는 자신도 잘 모른다. 그냥 몸에서 필요하여 요구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뱃속에 사는 장내미생물이 우리를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생각 못한다. 인간의 위와 장 속에 사는 미생물이 그들의 생존에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위하여 우리의 식욕을 조정하고 있다. 이들은 신호전달 물질을 분비해서 특정 음식을 선호하도록 만드는 인간에게 자극을 준다. 또는 인간이 먹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기분이 나빠지거나 좋아지게끔 하는 물질을 분비할 수도 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다라 장내미생물이 바뀐다는 점이다. 해조류를 많이 먹으면 해조류를 먹는 미생물이 장에서 살게 된다. 그러면 해조류를 더 많이 먹게 되어 건강해진다. 지방을 많이 먹으면 지방을 좋아하는 미생물이 살게 되고 더 많은 지방을 먹어 살이 더 찌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뚱보 균’과 ‘날씬 균’도 있다. 바로 퍼미큐테스(Firmicutes) 균으로 당분의 발효를 촉진해 지방을 과하게 생성하게 하고 지방산을 생성해 비만을 유도한다. 뚱뚱한 사람의 장에는 이 뚱보 균이 많다. 반대로 날씬한 사람의 장에는 정반대 기능을 하는 ‘박테로이데테스(Bacteroidetes)’가 많다. 뚱뚱한 사람이 탄수화물과 지방을 줄이는 다이어트를 하면 박테로이데테스문 비율이 높아지고 퍼미큐테스문은 낮아진다. 퍼미큐테스는 장내 유해균으로 당분 발효를 촉진해 지방을 과하게 생성하게 하고 지방산을 생성해 비만을 유도한다. 반면에 식욕억제 호르몬인 ‘렙틴’ 활성화는 방해한다. 박테로이데테스는 지방 분해 효소를 활성화하고 체내 지방 연소 및 체중 감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퍼미큐테스와 달리 혈당 감소 호르몬을 활성화해 체내 혈당도 떨어뜨린다. 장 기능을 향상하고 면역력을 높여 살이 잘 찌지 않도록 돕고, 지방 분해가 활발히 이뤄지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12명의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1년 동안 다이어트 식이요법을 진행하면서 장내 세균총의 변화를 조사한 결과가 그것을 말해준다. 다이어트 시작 전에 비만이었던 사람들은 마른 체형의 사람들에 비해 박테로이데테스문이 적고 퍼미큐테스문(firmicutes)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살이 빠지자 마른 체형의 사람들과 유사하게 박테로이데테스문 비율이 높아지고 퍼미큐테스문이 점차 낮아졌다. 이처럼 장내 환경이 다이어트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다이어트 성공 이후에도 감량된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장내 미생물을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내미생물에 따라 운동량도 달라진다. 운동하기 싫은 것도 장내미생물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보면 쥐도 장내미생물 분포에 따라 운동량도 다르다. 특정 장내미생물을 가진 쥐는 운동할 때 쾌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 더 많아 나와 운동을 더 많이 한다. 이렇게 운동을 많이 하는 쥐는 운동을 하며 느끼는 쾌감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더 많이 경험한다. 쥐에게서 이 장내미생물을 없애자 운동 활동이 반으로 줄었다. 장내미생물이 소화기관의 신경을 자극, 신경망을 통해 연결된 뇌의 보상 관련 영역에 영향을 미쳐 운동을 하고 싶게끔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장-뇌 간 동기부여 경로는 쥐의 영양 상태와 장내미생물 분포에 따라 운동을 하게끔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에게도 비슷한 장과 뇌 사이 연결 고리가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운동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장내미생물에 의한 영향일 수 있다. 이러한 장내미생물은 분명 유익한 균이다. 따라서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가공식품 등은 해로운 균을 늘리며 자연식품은 유익한 장내미생물을 늘린다. 운동을 좋아하는 것은 자연식품 위주의 식사를 하여 장내미생물이 좋은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은 정반대일 것이다.


다이어트에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의지의 박약함을 탓한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다이어트에 성공한다. 과연 그것이 의지의 차이 즉 자유의지로 인한 것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은 도저히 치료하기 힘든 고도비만 유전자 등의 선천적인 요인을 가지고 태어난다. 다이어트에 관한한 얼마나 우리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지는 선천적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을 모두 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밝혀지지 않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고도비만 ‘악성’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평생 건강하게 사는 사례도 많다. 그만큼 인간은 다른 생명에 비하여 의지력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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