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가설’로 보는 교육과 남아선호

많은 생명이 번식능력이 없어지면 죽는다. 그러나 인간은 폐경을 한 뒤에도 수십 년을 더 산다. 여성은 약 200만 개의 난모세포를 가지고 태어난다. 매달 월경을 하며 난자를 하나씩 배출한다. 난모세포를 모두 소진하면 폐경에 이른다. 이렇게 폐경을 하는 동물은 인간과 고래가 유일하다. 폐경은 생명의 세계에서 미스터리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남기는 쪽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50세를 전후해 폐경을 하고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없으니 냉혹한 자연과 진화론의 관점에서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자연계에게 번식을 끝낸 늙은 인간은 ‘자연적으로’ 의미는 없다.


인간과 같은 고도로 사회화된 동물의 폐경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이다. 직접 자녀를 낳기보다는 손자들의 양육에 도움을 줘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번성시키는 방향으로 여성의 몸이 진화했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간접적으로 자손 번식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이다. 노인 부모가 손주들을 돌보아 후손의 생존비율을 높여 유전자를 후세에 전할 가능성도 높아지게 한다. 할머니의 손주양육에의 참여는 학업 성취도 향상, 사회성 증가, 신체 건강 등 다양한 지표에서 긍정적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는 많다.


이는 인간 이외에 유일하게 폐경을 경험하는 고래에게도 나타난다. 2023년 어미 범고래도 폐경이 지난 후에 수컷 범고래를 보호한다는 연구가 나왔다. 수컷만 보호하는 것은 암컷들과 번식할 수 있는 수컷이 유전자를 물려주는 데 더 유리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고래에게도 남아선호가 나타난다니 흥미롭다. 할머니 가설은 포유류 때부터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폐경 이후 어미 범고래가 수컷 범고래를 지켜 생존율이 높아진다.

https://www.cell.com/current-biology/pdfExtended/S0960-9822(23)00824-2


실제로 할머니의 역할은 자손의 번성에 도움이 됐다. 역사적으로 아동 사망률이 높은 시기에 할머니의 양육 참여는 사망률을 낮췄다. 할머니와 함께 살면 손주의 생존율이 높아진다고 분석한 과학 연구들도 많다. 더 나아가 유전적 친밀도가 높을수록 손주의 생존율이 더 높아진다는 결과도 있다.


인간은 자녀를 오래 동안 양육하고 교육하면서 문명을 이루었다. 인간의 수명 증가도 문명 탄생에 기폭제가 되었다. ‘나이든’ 성인이 자녀와 손주들을 오래 돌보면서 지식과 경험이 전수되었다. 양육기간이 길어지면서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이 자녀와 손주세대로 전승된 것이다. 수명이 길어져 중년과 노년이 늘어나고 한 사람의 일생동안 축적된 지식이 언어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이를 통해 예술, 과학 등의 발전을 가져오고 문명이 탄생하게 되었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할머니’ 가설이라고 부른다. 물론 집단을 이루고 인간보다 오래 사는 동물들도 있어 수명만으로 인간문명을 설명할 수는 없다. 인간의 지능이 높아졌고 동시에 수명이 늘어났던 것이 문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할머니 가설’로 보는 교육과 남아선호 (ohead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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