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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멈블비 Oct 16. 2024

덜 자란 우리

독일로 가져온 참외 씨앗이 싹트고 신나게 자란 것까지는 좋았는데, 갑작스러운 기온의 하강으로 당최 참외가 익지를 않았다. 몇 주를 파랗게 달려있다가 그곳에 달린 유일한 푸른 것이 되었다. 잎사귀며 줄기가 죄다 노랗게 새어버리고 낙엽이 되어 희망이 없어 보였다. 아보카도처럼 후숙하는 과일도 아니라서 결국 못 먹어보겠다 싶은 아쉬운 마음으로 열매를 따내고 마른 줄기를 정리했다. 계란 크기의 초록빛 참외가 두 알 식탁에 놓였다. 달지도 않겠지, 먹을 수나 있을까 싶었다.

당연히 인터넷으로 찾아본다.

"덜 익은 참외 먹어도 되나요?"

검색 결과는, 오, 덜 익은 참외도 약으로 쓰인단다. 더 자세히 보기위해 블로그를 클릭해 본다.

"선조들은 예로부터 익은 참외는 식용으로, 덜 익은 참외는 최토제로 사용했습니다. 먹어선 안 되는 음식을 먹었거나 위험한 음식을 먹었을 때 덜 익은 참외를 먹어 토해내도록 했습니다"


…음, 그건 그냥 못 먹는다는 말 아닌가? 먹으면 토하는 약으로 썼다니, 우리 선조들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

또 다른 사용법은 김치나 장조림을 담그는 거라 한다. 계란 두 개 크기의 양이라 김치를 담근다는 게 어울리지 않게 거창한 느낌이 들어 덜 익은 참외 두 알을 손안에 쥐어본다. 다 익은 참외처럼 매끈하지 않고 솜털이 까슬까슬하다. 향긋한 참외 특유의 향을 맡으려고 절박하게 콧구멍 근처로 들이밀어 보지만 코가 따끔할 뿐 풋내만 난다. 아, 이건 내 실수다. 덜 익은 참외가 아니라 덜 자란 참외라고 불러야 했던 거구나. 얼른 먹고 싶은 내 욕심에 덜 익었다고 칭했는데, 사실은 덜 자란 거였다. 내 마음이 이렇게 성급했다.

세상이 가끔 우리가 서로에게 친절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그리고 성급하게 탓한다. 왜 이러지 못하냐 저러지 못하냐고. 가령, 왜 좀 더 예쁘게 말하지 못하니, 왜 좀 더 성숙하게 대처하지 못하니, 자네는 그렇게밖에 못하나?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래? 등등. 소화시키지 못할 욕을 먹는다. 우리는 아직도 자라는 중 임을 자꾸 잊는 것 같다. 그래서 잘 자라지 못한다. 학교를 떠나면, 성인이 된다면, 결혼을 하면, 아이를 가지면, 우리는 다 자란 거라고 주입받는다. 이제는 익어가야 할 시간이라서 자랄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이 우리는 누구를 위한 "익음"을 기다리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 익지 못하는 열매도 있는 법이다. 약으로 쓰인다고 하지 않나. 덜 익은 열매도 약으로 포용하는 세상, 살아볼 만할 것 같다.


먹지 못할 참외를 창가에 두고 겨우내 푸른 빛을 즐길 생각이다.  어느 못 먹을 걸 먹은 날에는 푸른 참외를 먹고 뱉어낼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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