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님, <그림책의 책>, 헤르츠나인, 2020
188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너무 많은 서양 서적 번역서가 출간되어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들을 위해 애노 후미오라는 사람은 <역서독법>이라는 일종의 독서 가이드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는 어떤 분야의 무슨 책을 읽을지, 그리고 어떤 책이 있는지 일일이 조사하여 쓴 '역서 목록'이었습니다. 책을 구매할 때, 흔히 이 책이 내가 원하는 그런 책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해보셨을 겁니다. 리뷰가 많은 책이면, 리뷰를 읽고 어느 정도 감이 오지만, 리뷰가 적거나 없으면 선택이 힘들어지죠. 앞에서 말한 번역서가 너무 많아 뭘 읽을지 모르는 사람들처럼 현재 한국도 너무 많은 책이 출판되는 상황에서 나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책을 찾기가 많이 힘듭니다. 사실 책을 분류하는 것마저 너무 시간이 많이 듭니다. 바로 여기서 북큐레이터의 필요성이 생깁니다.
<역서독법>은 저자분의 직업인 북큐레이터와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북큐레이터에 대해 처음 들은 분들이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아직 낯선 개념이라 하는군요. 이 책에서 설명한 바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북큐레이터는 박물관의 전시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큐레이터처럼 "메시지나 콘셉트에 따라 책을 '선별'합니다." 즉, 어떠한 주제에 맞춰 책을 선별하여 사람들에게 그 책을 전시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도서관의 큐레이터라고나 할까요? 따라서 그냥 책만 많이 읽는 사람들이 아니라 "엄청난 양의 책 속에서 정해진 주제에 맞는 책을 선별하고 독자적인 콘셉트에 따라 배치하고 서가 전시를 통해서 메시지를 표현해야 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책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직접 사람들 앞으로 가져다주는 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잘 편집된 책장에서 "책을 발견하는 기쁨"과 "아이들에게 책에 대한 관심 끌기와 흥미 유발"이 북 큐레이터의 가장 큰 목표인 것 같습니다. 무작정 베스트셀러를 읽거나 XX대 추천 도서를 읽는 것보다는 이런 방식의 북큐레이션이 더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이 책은 공공도서관에서 그러한 북큐레이터 경력로서의 경력을 쌓은 저자가 다양한 테마에 맞는 책들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제가 '100개의 주제로 엮은 그림책 북큐레이션 북'인 만큼, 다양한 주제에 걸맞는 그림책과 부모님도 읽을 책을 추천해줍니다. 제가 일전에 리뷰도 썼던 <있으려나 서점>도 이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더군요.
1,300여 권 정도 되는 규모니 거의 3~4문장의 짧은 추천글이지만, 적어도 어떤 책을 찾을 때의 수고는 줄어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자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비록 그림책 위주의 책이지만, 한 권 장만할 만한 책입니다. 특히 아이가 있는 부모님이나 유치원 교사 선생님 관련 분야 직종자들에게는 정말 필요한 책일 것 같네요.
북큐레이터라는 직업, 앞으로 잘 봐둬야 되겠습니다.
인문/역사 분야 북큐레이터는 없는지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