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가주의와 옴진리교
마루야마 마사오, 김석근 옮김,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 『현대 일본의 정치와 사회』, 한길사, 1997, pp. 45~64
무라카미 하루키, 이영미 옮김, 『약속된 장소에서 - 언더그라운드2』, 문학동네, 2014
1.
누미노제(Numinose)란 “전적 타자, 즉 세속 영역을 철저히 초월하는” 존재로, 인간으로 하여금 압도적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공포심은 옆방에 호랑이가 있을 때에 물리적인 공포심과는 달리, 초월적·초자연적 존재에 압도되면서 생긴 경외심에 가깝다. C.S. 루이스에 따르면 이러한 누미노제를 경험하는 것이 “종교의 첫째 요소”이다. 그러나 누미노제 자체는 “도덕적 선과 같은 것이 아니므로, 경외감에 사로잡힌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것을 마치 ‘선악을 넘어선’ 대상처럼 생각하기” 쉽다. 피조물보다 질적으로 더 우위에 있는 존재를 자각하는 것은 종교의 첫 요소이지만, 그것에만 머물면 필연적으로 광신과 사이비로 흐르게 된다. 누미노제 앞에서 개인의 개별성(individuality)과 주체성(subjectivity)은 마비되어 모든 판단 기준이 도덕적 선악이 아니라 누미노제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누미노제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은 C.S.루이스, <고통의 문제>, 홍성사, 서론 참조)
2.
마루야마 마사오는 전전(戰前) 일본 사회를 규정한 ‘초국가주의’에 대해 “국가가 국체에서 진선미의 내용과 가치를 점유하는 곳”이었다고 분석한다. 국가가 진선미의 절대가치를 체현했다면, 그 기반인 국체, 곧 천황은 “진선미의 극치”이며 일본제국은 본질적으로 악을 행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일본제국이나 천황은 다른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선이고,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국가는 개인의 어떠한 “정신영역에도 자유자재로 침투할 수” 있다. 이는 이미 메이지유신 이후 정신적 권위과 정치 권력과 하나가 된 순간부터 그 싹을 보였다. 1870~80년대 자유민권운동이 있었지만, 그것은 “도덕의 내면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로지 개인 내지 국민의 외부적 활동의 범위와 경계를 둘러싼 다툼”일 뿐이었다. 이와 같은 자유민권운동이 민권에서 국권론으로 논의의 중심이 쉽게 옮겨간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따라서 선이나 진리가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외부에 존재하고 개인의 내면을 보호할 어떠한 수단도 없던 일본에서는 구조적으로 종교나 도덕, 양심과 같은 ‘사적’인 가치는 국가에 의해서 인정받을 수도 생겨날 수도 없었고,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받지 않는 권리를 부여받은 근대적 개인이 설 공간도 없었다. 오히려 근대적 개인에게 주어지는 양심과 권리 같은 사적인 것은 절대적 선인 국가·국체에 대한 “악이거나 악에 가까운 것”으로서 부정된다.
초국가주의 사회는 진선미의 현현이라는 “궁극의 윤리적 실체”, 곧 천황을 정점에 둔 일종의 동심원 구조를 이루고 있는 사회다. 이러한 동심원 구조에서, “국가적·사회적 지위의 가치규준은 그 사회적 직능보다도 천황으로부터의 거리”이며, “절대적 가치체”인 천황에 가까울수록 그 사람은 지위에서뿐만 아니라 존재론적으로도 더 우월해지는 것이다. 나보다 지위상 위에 있는 사람은 질적으로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밑에 있는 사람은 윗사람 말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는 지성, 도덕 판단, 가치 판단에 있어서 더 우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사람은 자기보다 윗사람에 종속되고 자기보다 밑인 사람을 종속시키는 “억압의 이양”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여 결국 “끊임없이 한쪽에서 규정되고 있으면서 다른 쪽을 규정한다는 관계”가 사회 전반적으로 완성된다. 한 사람은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누군가(상급자)를 매개해서만 그 가치와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누구도 이를 독재라 여기지 않는다. 독재라는 관념도 자유로운 주체의식이 전제되어야 가능한데, 초국가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의식이랄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 편리한 구조다.
이보다 더 무서운 초국가주의 사회의 특징은, 개인의 도덕성과 주체적 사고 능력을 마비시킴으로써 권위에 혹닉(惑溺)되어 무슨 명령이든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인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초국가주의에는 “자유로운 주체의식”과 그에 따르는 개인의 책임은 불필요하다. 밑에 있는 사람은 자신보다 질적으로 뛰어난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활동적이고 침략적” 행위도 가능해지는 한편, 초국가주의라는 상자 안에서, ‘그 자체로 도덕적 선’인 국가와 천황을 위한 행동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도덕적 정당화 명분까지 얻는다. 다시 봐도 참 편리한 구조다.
3.
지극히 억측이지만, 옴진리교 교단이 작동하는 원리는 마루야마가 고찰한 초국가주의의 구조와 매우 흡사한 것처럼 보인다. 아사하라 쇼코는 카리스마적 지도력과 통찰력으로 신도들을 압도시킨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인터뷰한 옴진리교 (옛)신도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본 듯한 아사하라의 설법에 압도되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아사하라가 “‘현세에서 이런 일을 했지’라거나 ‘당신은 현세에 있을 때 너무 놀아서 공덕을 많이 낭비했어’”라고 한 것에 놀랐다고 한다. 수상쩍은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의 신비적 아우라와 카리스마에 눌려 그의 권위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아사하라 쇼코의 절대적 권위는 그의 직관적 통찰만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랬다면, 옴진리교라는 조직은 일찍이 무너졌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옴진리교에 사람들이 빠진 데는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을 시사한다.
옴진리교에 빠진 사람들의 대부분이 가진 특징 중 하나는, 세상의 문제점과 모순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매사에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현세에 불만을 품은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옴진리교뿐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옴진리교의 교의와 아사하라 쇼코는 해결자였고, 자신들이 품은 “의문을 최종적으로 풀어줄” 수 있는 존재였다. 세상의 복잡한 문제들은 옴진리교라는 닫힌 상자 속으로 들어가면 ‘카르마’와 ‘해탈’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전부 명쾌하게 해명된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설법과 교의로 자신들의 의문을 해결해줌으로써 아사하라 쇼코의 권위는 형성되어 갔다. 그는 존사요, “최종 해탈자”로서 교단 내부에서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 실체이다. 이로써, 아사하라라는 한 종교적 초월자에 의해 개개인은 ‘해탈되어야 하는 자’로 규정되며, 이런 식으로 그가 신도들의 내면 의식에 침투함으로써 그들 개개인의 주체 의식은 희박해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옴진리교 내부에서는 구조적으로 ‘악’이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최종 해탈자’ 아사하라의 판단과 결정은 모두 올바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성도들은 책임 의식 등을 모두 아사하라 한 명에게 떠넘겨버린다. 그들은 절대 잘못될 수 없는 그의 말을 듣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 신도들이 그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합리적인 의문이 아니라 “모두 자기 자신의 더러움”에서 기인한 것이다. 나중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 역시도 결국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뭔가 심오한 의미가 있겠지” 같은 사고 과정을 통해 아사하라의 권위에 대한 더 이상의 의심을 중단시킨다.
아사하라가 선인 데 반해, 바깥 세상은 악, 그들의 표현으로는 “번뇌와 진창”의 세계다. 세상에 악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옴진리교의 경우 문제는 처음부터 자신들은 절대적 선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다는 점이다. 옴진리교 신도들 대다수가 지하철 테러 사건을 옴진리교의 소행으로 여기지 않는(혹은 않았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선악 이원적 세트에서, 아사하라 쇼코와 교의에 의해 그들은 언제나 선이었기에, 그런 악한 일을 저지를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라는 사적인 의식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악한 것이 된다. 옴진리교의 수행이라는 것도 최종적으로 자아를 버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사하라는 ‘자기’와 ‘번뇌’를 동일화한다. 따라서 ‘해탈’이라는 궁극적 지향을 위해서는 번뇌와 함께 ‘자기’, 한 신도의 말을 따르자면 잠재의식 깊은 곳 “개인의 본질적인 왜곡”을 함께 버려야 한다. 이렇게 자기의식을 버린 자리에는 아사하라가 대신한다. 그리하여 아사하라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 좋은 것이며, ‘자기’ 같은 사적인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나쁜 것이 된다. 이 양상은 다시금 초국가주의의 논리를 연상시킨다. 더욱이, 옴진리교 신자들은 현세의 모든 이익(인간관계, 직장, 가족)을 모두 포기하고 출가한 성도들이 대다수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순 없다는 마음”에 그들은 더욱 ‘해탈’이라는 정신적인 이상향을 추구하게 된다. 그나마 그들을 잡아줄 일상적 경험이 끊긴 폐쇄적 상태에서의, 수행과 약물을 통한 “각성된 의식” 체험은 더욱 자아 의식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옴진리교 신자들은 아사하라의 카리스마와 교리에 혹닉(惑溺)되어 ‘자기’를 잃었으며, 그 결과로 아사하라의 어떠한 명령도 거부하지 못하는 수동적 존재가 되었다.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와 인터뷰한 이들은 모두, 인터뷰 당시 옴진리교를 탈퇴하여 교단에 매우 부정적인 이들조차도 자신에게 가스 테러 제안이 오면, 매우 망설였을 것이란 답변을 하였다.
4.
마루야마 마사오는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1946년에 작성)라는 논문을 끝맺으면서, 천황이 절대성을 상실한 1945년 8월 15일 이후야말로 일본 국민은 “비로소 처음으로 자유로운 주체”가 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50년 뒤인 1995년, 초국가주의의 구조를 쏙 빼다 박은 듯한 옴진리교 교단에 의해서 수많은 시민이 끔찍한 피해를 입었다. 첫 번째는 그 폭력성이 일본 외부 식민지로 향했다면, 두 번째는 일본 사회 내부에서 벌어졌다. 물론 이 비교는 매우 불충분하고 고작 책 몇 권 읽은 것으로 뭐라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옴진리교는 완전히 초국가주의와 유사하다고 할 수 없을지라도, '초국가주의적인 것' 또는 '누미노제적인 것'의 재현이라고는 말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러면 전후 약 80년, 도쿄 지하철 테러 사건으로부터도 거의 한 세대가 지난 지금의 일본 사회는 어떨까? 옴진리교적인 것, 초국가주의적인 것, 혹은 누미노제는 과연 사라졌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아직 나는 알지 못하겠다. 더욱 공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