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사과맛이 난다 EP.6_욕망의 항아리를 들여다볼 것.
유희왕 게임을 하다 보면,
‘욕망의 항아리’라는 카드를 무조건 만나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 유희왕 카드 게임은 큰 유행이었다. 내가 유희왕 게임을 많이 하던 당시 ‘욕망의 항아리’ 카드는 금지 카드였지만, 친구들끼리 하는 게임에서는 상관없이 사용되곤 했다. 이 카드를 발동하면 카드 자체는 파괴되지만, 덱에서 두 장의 카드를 꺼낼 수 있었다. 그래서 카드 덱을 만들 때 필수적으로 넣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본적인 카드였다. 하지만 나는 이 카드를 덱에 넣지 않았다. 이유를 묻는다면, 단순히 생긴 것이 더러워서 싫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미지가 불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보다 이 카드는 본인에게만 이득이고 상대방에게는 손해가 될 수 있는 카드였다. 개인의 욕망이 타인에게 피해가 될 수 있었기에, 도의적이지 않은 카드라는 점이 싫었다. 그렇게 보면 당시 나는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는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모태신앙이었던 영향일까, 아니면 공무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영향일까. 신사적인 태도를 지키는 데 집착했고, 욕망을 억눌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이번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채식주의자》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나는 ‘욕망의 항아리’를 다시 발견했다. 영혜의 몽고반점에서 무한한 욕구를 느끼는 형부. 내게 그 사람은 욕망의 항아리 그 자체로 보였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점은, 나는 이 글에서 가부장제의 폭력성, 육식의 폭력성,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와 같은 책의 ‘폭력’과 관련한 주제를 다루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욕망과 예술의 관점에서 이 책을 바라보고 글을 쓰려 한다. 형부의 예술 세계라는 관점에서만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형부가 영혜에게 느꼈던 감정. 폭발하는 색채. 꽃으로 표현되는 식물의 아름다움. 몽고반점을 가진 영혜를 통해 형부는 알 수 없는 성적 매력을 느꼈고, 그 매력을 담아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형부는 자신의 욕망을 무시하지 않고, 이를 실체화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려 했고, 결국 영혜와 성관계를 맺는다. 이 장면을 카메라로 기록하고, 그 기록이 아내에게 들키며 한 단락이 끝난다. 흥미로운 점은 글을 읽는 동안 형부가 느낀 욕망이 나에게도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을 녹여 내 피에 흐르게 하고 싶다는 욕망. 살이 닿으면서 나의 세포와 그 사람의 세포가 섞이는 감각. 안온함과 정열이 함께 느껴지며 오는 희열. 형부가 욕망하고 바랐던 것은 이런 감각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는 이 감각을 표현하고 기록하고자 했던 것이다.
책을 덮고 고민에 빠졌다. 내가 ‘욕망의 항아리’라고 생각했던, 생김새가 더럽다고 여겨 외면했던 그 무언가에게 공감하게 되었다. 동시에 나에게도 ‘욕망의 항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전까지 나는 깨끗하고 욕망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욕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억누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예술을 공부하면서 더 이상 욕망을 억누르지 않게 되었고, 그 다음에 이 책을 읽고 나의 욕망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질문이 생겼다. 욕망의 항아리를 왜 싫어해야 하는가?
욕망하는 것이 과연 죄인가?
책 속에서 형부는 욕망을 느낀 후 작품을 만들었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색감과 표현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를 보여준 것이다. ‘욕망의 항아리’를 바라보며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욕망이 있어야 무언가를 만들 수 있고, 이전과는 다른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욕망을 싫어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욕망이 죄가 될 수도 없다. 물론 욕망이 타인에게 큰 폭력이 된다면, 그 부분의 담론은 고민해야 하지만. 그치만 나의 욕망을 발견하고,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 자체가 예술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내 감각이 내 안에서 조합되고 익어가다가 결국 표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안의 감각들이 ‘욕망의 항아리’ 안에서 익어가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욕망의 항아리라는 카드가 꺼내어져서 발동되면, 그때 표현되는 것이 예술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든 표현은 욕망을 담고있다. 하나일수도, 여러개일수도. 그렇기에 내 욕망의 항아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표현을 하기 위한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예술을 생각하다 보면, 내 마음 속의 ‘욕망의 항아리’를 무조건 만나게 된다.
그때, '욕망의 항아리'를 무시하거나 묻어두지 않고 열어볼 때 비로소 예술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