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사과의 맛이 난다 EP.13_ 더 하지 않는다는 예술
'산들'이라는 이름의 조명을 만들었다. 지극히 한국적인 조명이라는 컨셉으로 워킹 목업을 제작해 보았다. 원래의 의도는 바람이 느껴지는 지극히 한국적인 조명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천을 이용해서 조명을 만들어내려 했다. 그러던 중에 욕심이 생겨서 팔각의 아이덴티티가 추가되고, 한옥이 가지는 결구 방식이 추가되고, 주춧돌의 상징성이 부여되고... 등등 좋아 보이는 것들을 점점 더 때려 박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모습의 조명이 만들어졌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드는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한 조명이다. 그리고 아쉬운 점이 이 모습이었다. 바람이 부는 것에 집중을 하면서도 원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너무 과해진 것이다. 이 작품을 끝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적당하다는 것이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구나' 그래서 나는 적당함이 내 작품 과정에서 항상 들어가는 잣대가 되었다.
‘적당함’이란, 표현에 있어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명확하게 담는 것이 적당한 것이고, 그 말하고자 하는 바 그 자체로서 승부를 보는 것도 적당함이다. 구태여 꾸미거나 손보지 않고, 딱 그 본연 하나만으로 진검승부를 보는 것이 가장 적당한 것이다. 그렇기에 어려운 것 같다. 적당함으로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예술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은 ‘더 하지 않음’인 것 같다. 무언가를 더 채우지 않고, 더 다듬지 않고, 딱 그 순간에 머무는 것. 그것이 ‘적당함의 예술’ 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헷갈리면 안 되는 것은 미완의 허술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완과 적당함의 차이는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주제이긴 하지만, 적당 함이라는 것은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여백 속에서 스스로 완성하게 하는 가장 세련된 배려다. 모두가 박수를 보내는 바로 그때. 더 보여줄 것도, 더 보태줄 것도 없다는 듯이 조용히 물러서는 것. 그것은 미련 없는 이들만이 지닐 수 있는 품격이고, 남겨진 이들로 하여금 긴 여운을 품게 하는 완벽한 퇴장이다. 때로는 덜어내는 용기가, 더하는 노력보다 훨씬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박수칠 때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작품도, 인생도 가장 아름답게 완성된다.
그렇기에 13편의 예술에 대한 고찰을 이제는 막을 내리려 한다. 오늘을 기점으로 나에게 예술은, 사랑은, 그리고 표현은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확립했다. 그렇기에 예술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 예술을 하는 한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여정을 이제 또 시작하려 한다. 적당한 때에, 적당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