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 아들의 성공 밑거름
85.3월 결연한 의지로 야심차게 재수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마을에서 부산 서면에 있는 한샘학원 종합반으로 통학을 했다.
3월 학원 첫시험에서는 우수 인재가 모였다는 장학반에서 학원비 면제를 받을 만큼 성적이 잘 나왔다. 삼수생 형님들을 따라 저녁 자습시간에 생맥주도 마시고, 당구장도 다니면서 제법 중견 재수생이 되어갔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삼수생 형님들의 주옥같은 격려와 조언을 들어가며 날로 성숙한 재수생 면모를 갖추어 갔다.
당시 시골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친구 몇몇이 함께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까지 통학을 했다. 그때는 버스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버스 운전사도 한손으로 운전을 하면서 담배를 피웠고, 어른들은 버스내 앞자리 뒷면에 붙어 있는 재털이에 연신 담뱃재를 떨어가며 신문을 보곤 했다. 옆자리에 학생이 앉아있든지, 어린애가 앉아 있든지에 상관없이 담배를 피워댔다.
그런 시절에 친구들은 버스를 타자마자 사람들이 없는 버스 맨 뒷자리로 가서 앉아 담배를 피웠다. 통학기간이 길어지자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원 수업도 슬슬 질리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별로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도 함께 들기 시작했다.
왕복 4시간 동안 집에서 혼자 공부하면 훨씬 효율적이겠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그래서 삼수생 형님들에게 "통학시간 등을 절약하기 위해 집에서 독학재수 하는 것은 어떤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형님들은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그들중에는 내 생각과 같이 독학재수 결과로 삼수를 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혼자 공부하면,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태해지기도 하고 나중에는 경쟁심도 사라져 본인의 학업수준이 어느정도인지도 잘 모르게 된다"며 극구 뜯어 말렸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누가 뭐래도 내가 생각하고 결정한 일은 반드시 하고야 마는 성격이다.
삼수생 형님들의 뼈저린 체험담을 무시한 채 5월부터는 독학재수생으로 거듭났다.
공부가 잘 될때는 "정말 독학재수가 내 체질에 딱 맞고, 독학재수 결정은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대견해 했었다.
중간중간에 심심해 지고, 공부가 잘 안될 때면 부산의 학원에 다니는 형들과 친구들을 찾아가 놀다가 오기도 했다.
독학재수는 주로 시골의 본가에서 좀 떨어져 있는 별채에서 혼자 지내면서 공부했다. 밤늦게 공부를 하다가 밤하늘의 별도 보고, 풀벌레 소리도 듣고, 한여름 소나기가 양철 지붕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도 듣고, 쏟아지는 소나기와 흙냄새와 개구리 소리도 들으면서 유유자적 신선처럼 공부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신선이 따로 없었다. 신선처럼 공부를 하다보니, 경쟁력은 별로 없었다.
도저히 안돼겠다 싶어서 공부 장소를 바꿨다. 울산 모 여고 앞 독서실로 짐을 옮겼다. 여고 앞 독서실로 옮긴 이유는 당시 여동생이 그 여고에 다니고 있었기에 매일 아침 어머니가 사주시는 도시락 공수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대다수 독서실은 독서실에서 24시간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이불을 갖다 놓고 잠도 잘 수 있었다. 독서실에 나와 같이 숙식하면서 공부하던 재수생 동료들이 있었다. 출신 학교는 달랐지만, 처지가 비슷해 금새 친해졌다.
9월쯤 독서실 숙식 재수생 일동은 당일치기 소풍을 갔다. 장소는 울산 방어진에 있는 울기등대였다. 입구 가게에서 당시 절찬리 판매중이던 캡틴Q와 나폴레옹 양주 각 1병씩 구입했다. 안주로는 마른 오징어와 과자를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울기등대 벤치에 친구들 4명이 나란히 앉아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하며, 40도의 독한 싸구려 양주병을 돌려가며 다 마셨다. 그 결과는 뻔했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모두들 정신차려보니 벤치에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고 떨고 있었다. 취기가 덜 가신 채 버스를 타고 보금자리인 독서실로 복귀했다. 그날은 일찌감치 휴게실 구석에 이불을 펴고 잠들었다. 공부는 사람이 일단 살아나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독한 양주로 인한 숙취는 며칠간 두통과 속쓰림으로 되돌려 주었다.
독서실 재수생활은 공부도 했지만, 삶에 대해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내 아들도 왠만하면 재수를 시키려고 했었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20대 초반의 처절한 인생경험을 위해서.
결국, 내 아들도 재수(반수)를 했다. 그러나 아버지 처럼 똑같은 독학재수의 실패는 반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한 독학재수의 폐해를 아들에게 잘 설명하고, 재수종합반 생활을 수능 전날까지 해냈기 때문이다. 다 내 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