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 끗발 개 끗발
시골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매일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느라 고교 1-2학년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다. 고3이 되자마자 3월 첫 모의고사를 쳤다. 첫 모의고사라 그런지 성적이 제법 잘 나왔다. 담임 선생님이 놀랄 만큼 상위권으로 성적이 올랐다.
그러자 나도 욕심이 생겼다. 조금만 더 하면 SKY를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려운 시골살림이었지만, 아버지께 "공부시간 확보를 위해 학교 부근 하숙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어렵게 말씀드렸는데, 아버지께서 "그간 울산까지 통학하느라 힘들었는데, 이젠 대학입시 준비도 있고하니 학교 부근에 하숙을 하면서 공부에 매진하는 것이 좋겠다"고 흔쾌히 허락하셨다.
얼마 뒤 우리반에서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 몇몇이 하숙하는 집에 빈방이 생겼다. 3월말쯤 하숙집에 이사를 하기로 했다. 당시 우리집에는 자가용이 없어서, 아버지께서 잘 아시는 세탁소집 아저씨 차로 이불보따리와 책, 누나가 사준 삐콤씨 영양제, 옷가지 등을 챙겨 하숙집으로 출발했다. 난생 처음으로 정든 시골집을 떠나 객지인 울산에서 하숙을 시작했다.
집 떠날 때는 결연한 의지가 충만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올해 원하는 대학에 반드시 입학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집을 떠나왔다. 첫달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밤 10시까지 야자를 하고 난 뒤에도 학교 교실에 남아서 12시까지 또 공부를 한 후 하숙집으로 갔고, 또 아침을 먹자마자 등교하여 공부를 했다.
그때의 공부량과 공부 진도를 계산해보면 당해 SKY 합격은 무난할 듯했다. 그러나, 꽃피는 5월이 오고 개00이 축축늘어지는 여름을 지나면서 공부의 동력과 집중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름방학이 끝날때 쯤 한번의 슬럼프가 왔다.
초반에 쉬지않고 너무 달려온 지라 책상에 앉아있어도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멀쩡하던 하숙집 아저씨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일주일 정도는 상을 치르느라 하숙집에서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 후에는 친구 몇명이 하숙집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등으로 내가 있던 하숙집은 공부에 집중하기 좀 어려운 상황으로 변했다.
나 또한 하숙집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런데 하숙집 분위기와 관계없이 한번 빠진 슬럼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시간은 자꾸가는데 참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학력고사를 2개월 앞둔 시점에 다시 시골집에서 통학을 시작했다.
괜히 공부도 안되는데 하숙비만 낭비하는 것 같아 부모님께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의 안정을 위해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당해 입시 준비는 계획과 달리 제대로 마무리 되지 못했다.
결과는 당연히 지원대학을 가지 못했다. 졸업식은 참석했지만, 영 기분이 나지 않았다. 일단 재수를 결심하고, 부산의 입시학원을 알아보았다. 그 당시 국어교사 출신인 서한샘이란 사람이 세운 한샘학원이 한창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한샘학원 장학반에 등록을 하고, 3월까지는 실컷 놀았다. 곧 시작될 '죽음의 행진'을 대비한 나만의 위안책이었다. 3월부터는 내 인생의 방랑기와 암흑기인 입시학원 재수종합반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