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를 읽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줄리언 반스를 만난 호기심이 이 책까지 이어졌다. 그는 이 책에서 주인공과 엘리자베스 핀치를 통해, 몇천년 전 과거의 인물들과 사건들을 뒤집어 성토한다. 그의 지성이 뚫지 못할 곳이 없다는 듯, 그가 거꾸로 해석하는 역사는 스토아철학과 종교적 비판들로 역사 속 가려진 인물들을 드러내며 휘장을 베어낸다. 진실이었을 법만한 가정들로 우리에게 남겨진, 조정된 역사에 반항하지만, 그래서 성공했다는 자조가 섞여서일까. 그의 반항은 거칠지 않고 섬세하다. 벌어진 사실과 그 진리가 거꾸러져 왜곡될 수 있는 그 안타까움을 진지하게 토로하고, 우리를 고뇌하게 하고, 설득시킨다.
“세상의 중요한 종교가 170개가 있고 모두가 자신이 유일한 진리의 보고라고 주장하지요. 그 중 169개는 틀릴 수 밖에 없겠죠. 기독교라는 종교의 성공 비결 한 가지는 늘 최고의 영화제작자를 고용한 것입니다.”라며 한 종교에 대한 유일 정체성의 논리를 반박하고, 로마의 기독교에 대한 율리아누스가 배교자로 남아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이야기를 풀어낸다. 19세기 프랑스의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르네스트 르낭의 ‘나라’로 존재하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한다’는 문구를 인용하며, 작자 자신의 역사관을 교차시킨다. 즉, 우리는 우리가 대변하는 것을 믿기 위해 항상, 매일, 작은 행동과 생각, 또 큰 행동과 생각에서 우리 자신을 속여야해요. 위안을 주는 잠자리 동화를 늘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들에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지는 않아도,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로스의 날개처럼 진리를 갈구하는 그의 날개짓이 느껴진다. 그의 순수한 갈망에 누구나 겪을 수도 있는 왜곡과 거짓 혹은 사라짐에 대한 나의 상실감 또한 깊은 위로를 받는다. 반스는 또한 불친절하다. 실패가 성공보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깨끗한 패배자보다 지고 나서 뒤끝이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하지만, 이런 말들을 주옥같이 그러나 무심히 곳곳에 박아놓고 설명이 없다. 그 해석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반스 또한 부정확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다. 엘리자베스 핀치가 소설 속 주인공을 그저 여러 개의 형용사로 묘사하는 그 못마땅한 이야기들을 혐오하는 발언이 문득 생각났다. 몇가지 형용사로 설명할 수 없는 그 한계를 아는 이라, 아예 설명없이 쓴 것이 아닐까?
과거의 부정확성과 우연 속에 일어난 사건들이 필연으로 만들어져 기록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처럼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다. 주인공 ‘닉’을 통해 엘리자베스 핀치의 얼마되지 않는 기록물들로 그녀에 대한 퍼즐을 끼워맞추려 애쓰는 모습은 본인이 비판했던 역사적 허구와 조정의 모습을 닮았다.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모호함과 우연과 필연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끊임없이 질문하고 영원히 찾을 수 없는 해답으로 고뇌하는 그의 고뇌가 이토록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나 또한 괴롭힌다. 누구나 안다는 것, 심지어 나를 평가하는 것 조차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각인시키고 생각하게 한다. 인생의 부정확함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라는 것을 알게 하는, 지나온 과거조차도 정의하는 그 시점에 조정해 맞출 수 밖에 없다는 것, 과거나 현재 일어난 일들이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그래서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준 소설이랄까.
결론은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알 수도 없다는 것, 모든 것이 부정확하고, 어찌보면 인생이 허망하고 고로 반스의 입을 빌리면 역사도 허망하다. 그러나, 그 허망함이 주는 아름다움, 그 부정확함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늘 호기심으로 채우고, 삶의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살아내게 하는 인생의 진리가 아닐까? 모호한 여러 색채의 글들로 곳곳에 빈 곳을 만들어 쓰는 반스는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자신들만의 가치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부정확함과 불확실함의 가치를 가지고 이 책을 결론지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의 명석함과 지혜로운 통찰에 박수를 보낸다. 그의 철학과 역사관과 종교관에 이르기까지 그의 냉철한 지력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볏단처럼 삭삭 베어버리고 우리 역시 우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을을 분명히 알게해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