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페이위의 '마사지사'를 읽고
근래 중국작가들의 책을 읽다가 위화의 ‘허삼관매혈기’를 만났고, 그 이후 중국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 비페이위의 ‘마사지사’를 지인에게 추천받았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사는 맹인에 대한 이야깃거리에 호기심이 끌렸고, 무엇보다 위화를 잇는 작가라 하니 그 창작의 세계가 무척 궁금하였다.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는 중국의 작가들에게 당분간 빠져있을 듯하다.
비페이위는 중국문학의 차세대 작가군을 대표하는 소설가이고, ‘마사지사’는 2011년 중국의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 중 하나인 마오둔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나는 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려 한 게 아니라 세상이 이들을 보도록 만들고 싶었다.”
비페이위 자신이 이 책을 소개하는 문장이다. 책을 읽다가 비페이위가 맹인이 아닌지, 아니면 가족 중에 맹인이 있는지 확인해 볼 정도로 작가의 이야기는 맹인들이 전하는 세상 그대로인 듯했다. 그들이 처한 환경과 상황, 그들이 겪는 심리적인 갈등들, 그리고 그들만이 가지는 육감이나 통찰력에 대한 상상과 묘사가 압도적이었다. 굳이 위화를 끌여들이자면, 그 두 작가의 공통점이 확실하다. 누가 봐도 허구인데, 허구의 글이 믿기지 않을 만큼,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 묘사되며, 그 이야기의 흐름이 밑도 끝도 없이 전개되는 연결구도가 카오스의 현실 세상을 그대로 구현한다는 점이다.
한 마사지샵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문제와 고민들, 일상과 사랑과 가족, 또는 친구나 동료들과의 관계들이 특별한 사건도 없이 마치 나의 일상처럼 펼쳐진다.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었을 때가 떠오른다. 개미들이 페로몬으로 소통한다는 기발한 발상으로 베르나르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만큼, 비페이위 역시 맹인들의 세상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그려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생경한 소설일 수밖에 없다.
맹인들은 마사지삽에 손님이 처음 왔을 때, 그 목소리만으로 ‘사장님’으로 불러야 할지, ‘지도자님’ 혹은 ‘선생님’으로 불러야 할지 단박에 알아내야 한다는 첫 장면부터 그들의 감각은 예사롭지 않다. 우리 인간이 가진 다섯 가지 감각 중 시각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맹인의 청각은 섬세하고 날카롭고 예리하게 모든 상황을 파악한다. 그렇게 시각의 영역까지 책임져야 하고, 앞으로 일어날 상황에 대한 육감과 통찰까지 더하여지는 것 같았다.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장면 역시 인상적이었다. 두홍이라는 아가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사지샵의 맹인들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별 실력 없는 두홍에게 남자손님이 끊이지 않는다는 게 이상할 뿐이었다. 그러다 이유를 알게 된다. 이유를 몰랐던 게 아니라 그때 인정한 게 아닌가 싶다. 그들은 의심이 많으므로 철저히 검증된 타인을 통한 평가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느 날, 촬영을 끝내고 샵에 들른 유명감독이 이끄는 영화팀들이 두홍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하고, 매니저격인 여인이 두홍의 연락처를 받아도라는 등의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들은 두홍의 아름다움을 판단하게 된다. 유명 영화를 찍을 정도면 이 팀들의 안목이 높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제야 그들이 동료 두홍의 아름다움을 궁금해하는 대목이 짠하다. 사실상 맹인들은 촉각과 후각까지 동원할 수 있는 가까운 관계가 아닌 타인을 평가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견과 평가는 사실상 그들의 것이 아니다. 일반인의 시각을 통해 만들어진 의견이 전달될 때 비로소 그들의 의견이 생길 수 있다. 가장 사랑하는 연인에게조차 그들의 평가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가령, 예쁜 게 무엇인지 모르는 쉬타이라이라는 맹인은 자기가 예쁘냐고 묻는 그의 사랑하는 연인 진옌에게 *홍사오러우보다 예쁘다고 답한다. 홍사오러우는 돼지고기간장볶음요리이다.
세상은 넓고 책은 더할 수 없이 많아서 늘 어떤 책을 읽을지 고심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얻는 다양한 위안을 나열해 본다.
영혼이 맑아지는 책,
지칠 때 힘이 되는 책,
영감을 주는 책,
이야기에 푹 빠지는 책,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는 책,
모험의 세계로 인도하는 책,
다른 세상과 문화권으로 데려다주는 책,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책,
지혜와 지식을 얻는 책
작가와 사귀는 책
별다른 편식 없이 음식을 즐기고, 새로운 음식에 도전을 좋아하는 나의 식성과 책을 고르는 취향에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이번 비페이위의 ‘마사지사’는 단연코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주는 책이다. 이 가을에는 계속 다른 세상과 만나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