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중국의 여인

모옌의 '개구리'를 읽고

by 풍경

관모옌은 1955년 산둥성 가오미 현 둥베이 향에서 태어나 문화혁명을 거쳐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고 30년 넘게 고향에서 창작에 몰두하였으며, 2012년 이 작품으로 중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우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도 모예가 원작이며, 이 개구리란 작품은 모예의 고모란 실존 인물을 내세워 ‘완신’ 고모가 주인공인 듯 하지만, 동시에 이야기를 풀어내는 나 ‘커더우(필명)‘, ‘완쭈’, ’샤오파오’역시 주인공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그의 삶 또한 고모만큼이나 녹록지 않고, 그 주변의 인물들 모두가 주인공 못지않은 사연과 삶을 불꽃처럼 터트리며 살아간다. 각자의 삶과 그 과정과 결말에 희비극이 엇갈리며, 장편소설임에도 읽는 속도감과 흐름이 짜릿하다.


샤오파오는 존경하는 스기타니 요시토 선생님에게 고모에 관한 일생을 편지글로 들려준다. 1937년 고모의 탄생부터 노년까지 이어지는 50여 년의 세월 속에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의 당혹감과 비극에 맞서는 당당한 용기와 투지가 중국 특유의 시원한 날 것의 느낌으로 그려진다. 많은 캐릭터들이 여기저기 툭툭 튀어나오고, 눈이 휘둥그레 해질 만큼 크고 작은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밑 빠진 독처럼 쉴 새 없이 쏟아지고, 그 풍부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모예의 이 소설 ’ 개구리‘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두 극단을 오가며 살아온 그의 삶이 향토색 강한 투박한 사투리, 마술 같은 민속적 상상, 환상적인 현실, 민간의 설화와 미신 등으로 조화롭게 얽혀 있다. 그의 걸쭉한 입담과 생생한 인물들의 기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인물들을 상상하게 하고 연민케 한다. 언젠가 이 소설 속의 가오미 현 둥베이 향을 들려보고 싶을 정도다.


중국은 1966년 이후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마오 주석은 계획생육이라는 정책을 호되게 실시한다. 계획생육이란 한 가구 당 한 명의 자식만 가능하고, 그 아이가 딸인 경우만 8년이 지난 후 한 명을 더 낳을 수 있으며, 그 이후는 남자의 정관수술과 여성의 낙태를 나라에서 책임지고 시행하는 정책이다. 옛 우리나라의 문화처럼 가문의 대를 목숨보다 중히 여겼던 광대한 농촌사회인 둥베이 향사람들은 계획생육에 상상도 할 수 없이 격렬히 저항하고, 그 저항을 또 목숨 걸고 물리쳐내는 산부인과 의사 고모 완신의 투쟁과 전술은 전쟁터의 장수를 방불케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야만적이고도 비인도적인 행위를 자행했던 고모의 깊은 고통과 인생의 회한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고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국 여인들의 무모해 보이는 힘찬 용기와 당당한 기세에 혀를 두른다. 그 무모함은 돈키호테를 연상케 하는 황당함이 배어있고, 버릇없다 생각할 만큼 하고 싶은 말 다하는 그녀들의 행동에 헛웃음이 나오고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그런데, 그 말로는 짠하기 그지없다. 그동안 읽었던 중국문학 속 그 기세 등등 한 모든 여인네들을 한데 다 몰아놓은 듯하다. 한국의 문학작품 속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니 내 짧은 독서 이력 중 중국문학에서만 발견되는 이 특이한 캐릭터들은 그 성격이 과장되어 나오는 코미디나 만화 속에서 만나더라도 그 엉뚱하고 거침없는 언행에 놀랄 만한 것들이다. 문득, 한국문학에서도 이런 주인공을 써보고 싶다는, 현실 속에서는 한 번쯤 보았을 듯하면서도 소설에서는 많이 등장하지 않았던 그런 여성의 캐릭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났다.


한 캐릭터만 소개하자면, 편지를 쓰는 주인공인 커더우의 첫 부인 왕런메이다. 런메이는 고모에 의해 끌려가 둘째 아이를 유산당하다 과다출혈로 죽는 불쌍한 여인 같지만, 돈키호테 같았던 그녀의 언행과 행보에 그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는 인물이다. 그냥, 고모 엿 좀 먹이려고 죽은 척 한번 해봤을 뿐이야 하고 다시 일어나 도망치고도 남을 인물로 보인다. 세상 무서운 게 하나도 없고, 죽어서 천당이든 지옥에 가서도 목 꼿꼿이 세우고 제 할 말 다해서 옥황상제도 쟤 다시 내려보내라 할 만큼 대단한 캐릭터다. 그녀는 샤오상춘의 대학에 붙은 잘난 아들을 걷어차고, 샤오파오, 너랑 결혼해서 세계 제일의 아이를 낳아줄게…라고 결혼을 먼저 요청하고, 샤오파오는 바로 승낙을 한다. 그러나, 결혼 첫날부터 그녀의 거침없는 언행과 행동에, 이런 얼빠진 여자를 데려왔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는 대목이 그녀를 설명한다.


런메이가 루프를 빼내고 성공한 둘째 임신의 계획생육을 피하려 부모집에 숨어있다가 발각되는 대목이 압권이다. 부모 왕진산이 딸을 내놓지 않자 당의 기율과 국법을 훼손하는 왕진산한테 보상받으라며 고모는 옆집인 샤오상춘의 수십 년생 회화나무를 트랙터로 뽑아버린다. 집주인 샤오상춘과 모든 동네사람들에게 계획생육을 거부하는 왕진산을 단박에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고모의 비열하면서도 놀라운 전략이다. 결국 항복하고 나온 란메이지만, 회화나무가 뽑힐 때 혼절했던 샤오상춘이 깨어나 내 나무 물어내라며 통곡하는 대목에서 런메이는 당신 자식이 내 젖통도 만지고 뽀뽀한 내 청춘에 보상이라고 치라며 답하고, 그 와중에 남편에게 손 좀 내밀어보라며 그 속셈모를 말에 내민 남편의 손목을 야무지게 물어뜯는다. 이유는 너 때문에 피 흘릴 거니까 너도 피를 흘려야 한다는… 그렇게 고모에게 잡혀 수술하기 전, 양주임이라는 고위 관리에게 고모와 함께 부부가 초대된다. 계획생육에 동참하는 조카부부가 자랑스럽다느니 시원시원한 성격이 고모를 닮았다느니 하는 양주임의 칭찬을 듣자 런메니는 다 들으라는 듯이 고모에게 수술하는 김에 아예 자궁도 들어내주세요 하고 말한다. 수술대에 오르기 전 그녀는 집에 가면 암탉 고아줄게라는 남편의 말에 두 마리 고아줘야 해라 답하고 생을 마친다.


진짜 숨차게 읽어나간 소설이다. 읽고 보니 모옌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읽을 때와 읽고 난 후가 이토록 갈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거친 시대상을 배경으로 모든 이야기의 전개가 인물들의 관찰과 행동과 말로써 이끌어지기 때문인 것 같다. 현대소설 속에 보이는 친절한 심리변화의 묘사 혹은 섬세한 감정의 설명 같은 것이 일절 없다. 숨 가쁘게 전개되는 비참한 현실과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신화와 걸쭉한 욕지거리를 함께 전한다. 그러한 현실 속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심리를 독자들의 깜량으로 헤아려야 한다. 해석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런 얼빠지고 정신 나간 여자 보았나 했던 그 여인들에 대한 시선들 역시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아차 싶다. 강렬했던 여인들의 저항은 고통 속에 죽어간 수많은 생명들에 대한 설움과 통한을 응축한 것이고, 누구에게라도 그 원통함을 호소할 바 없이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하고 싶은 말 다하고, 하고 싶은 저항 맘껏 하고 죽는 여성을 그린 것이고, 누구도 모를 고통과 비참한 운명에 속을 삭히고 사는 여인들의 억울함을 위해, 온몸으로 현실에 대항하고 싸워 이기는 고모를 그린 것이 아닌가 싶다. 죽음을 불사하고 입다물지 않는 그 여인들의 통쾌함을 이제야 느껴진다. 한참 전에 잃어버렸던 나의 세포를 찾은 감격이다. 생뚱맞을지 몰라도 나는 소설 속 그의 여인들이 한참 지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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