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T(2)

정우의 하루

by ㅇㅅㅇb

과거 침대 매트리스를 만들던 중소기업 L.S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정우는, 회사가 D.C.T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소수 중 하나였다. 연구원도, 기술자도 아닌 그는 단지 침대를 팔던 영업사원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꿈을 파는 영업사원’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부스럭 소리에 눈을 뜬 정우는, 어젯밤 켜둔 TV에서 흘러나오는 D.C.T 광고를 잠시 응시하다가 전원을 껐다. 기지개를 켜며 힘겹게 일어난 그는 늘 그렇듯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회사 근처 역에 내리면, 멀리서도 눈에 띄는 L.S 본사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두운 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도심 속에 우뚝 선 건물은, 아침이나 밤이나 존재감을 뽐내며 L.S가 가진 힘을 말해주고 있었다.

정우는 카드키를 찍고 출근했지만, 기분은 단숨에 가라앉았다. 제발 마주치지 않길 바랐던 부장을 로비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신께 빌자마자 눈이 마주치는 아이러니—.

“정 사원, 아침부터 나를 보다니 기분 좋은 하루가 되겠군.”

정우는 억지로 자본주의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벌써 퇴근하고 싶었다. 평소 오후에야 느릿느릿 나타나 월급 도둑 소리를 듣던 부장이 웬일로 일찍 출근했는지 의문이 남았다.

부장은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오늘 오는데 사람들이 다들 우리 프로젝트 얘기만 하는 거야. 이렇게 중독된 사람이 많다니, 괜히 내가 뿌듯하더라니까.”

정우도 ‘중독’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명목상 1주일에 한 번 무료 체험이지만, 대부분의 고객은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찾아왔다. 회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사용 횟수가 늘어날수록 비용은 배로 불어나고, 결국 돈을 탕진한 사람은 신체포기각서를 쓰고서야 다시 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는 행복한 꿈만 꾸는 것이 아니라, 대가로 악몽을 감당해야 했다. 누군가의 행복한 꿈 뒤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악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잔혹한 구조였지만, 정우는 그 속에서 특별히 문제를 본 적이 없다. ‘행복한 꿈이라도 잠시 꾸고 싶다’는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일이었고, 내부 고발 같은 건 불가능했다. 직원은 D.C.T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었기에, 혹여 문제를 제기해도 “꿈을 꾸지 못해 심술부리는 사람” 정도로 취급받을 뿐이었다. 게다가 직원들의 월급에는 두터운 비밀 유지비가 포함돼 있었다. 정우 역시 알고는 있었지만, 굳이 깊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남의 꿈보다도 자기 삶을 살아내는 것만으로 벅찼기 때문이다.

부장의 일방적인 수다에 시달리며 사무실에 도착한 정우는 자리에 앉았다. 부장은 곧 의자에 몸을 던지고 잠에 빠져들었고, 정우는 혀를 찼다. 좋아하려 해도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상사였다.

정우는 영업부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직원이었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해, 그가 담당하는 고객은 대부분 D.C.T를 선택하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옆자리의 지애가 조용히 속삭였다.

“아침부터 부장이라니, 오늘은 운이 없었네요.”

정우는 찡그린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지애는 입사 동기였다. 사내에서 만약 내부 고발자가 생긴다면 지애일 거라는 말이 돌 정도로, 회사의 방식을 마음 깊이 혐오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가정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떠나지 못하는 처지였다. 정우는 그런 사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신경 쓰기엔, 자신의 하루만으로도 벅찼으니까.

9시 알람이 울리자 사무실은 곧 전화벨 소리로 가득 찼다. 고객들의 질문은 언제나 비슷했다. 부작용은 없는지, 정말 안전한지. 그때마다 정우는 “자기 제어만 잘하면 문제없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10년 동안 그 말을 지켜낸 사람을 그는 본 적이 없었다. 결국 모두가 중독자가 되었고, 종국에는 신체포기각서에 서명하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점심시간, 정우는 교대를 마치고 늘 가던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의 아르바이트생 지윤은 정우가密히 마음에 두고 있는 인물이었다.

“편하신 데 앉으세요. 항상 드시는 메뉴로 가져다 드릴게요.”

정우는 미소를 지으며 구석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지윤이 음식을 내오더니, 뜻밖에도 자리에 앉았다.

“정우 씨, L.S에서 일하시죠?”

“그렇긴 하죠….”

“D.C.T 프로젝트, 솔직히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우는 순간 대답하지 못했다. 지윤이 그 세계에 발을 들이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목구멍이 막히는 듯했다. 늘 그렇듯 ‘괜찮다’고 말하면 됐지만, 이번만큼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윤은 그런 그의 얼굴을 읽은 듯 고개를 저으며 일어섰다.

“아니에요. 그냥 잊어주세요.”

남겨진 정우는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였다. 언젠가 지윤이 고객으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때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정우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간다. 회사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고, 다시 상담 창구로 돌아와 전화를 받고, 귀가해 맥주와 과자를 곁들이며 TV 앞에 드러눕는다.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하루. 정우는 변화를 싫어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싫어했다. 그래서 늘 똑같은 길을 걷고, 똑같은 시간을 살아간다. 그렇게, 매일을 견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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