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다른 하루
이번 주부터 정우는 B파트 근무라 늦게까지 자도 됐지만,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눈을 떴다. 두 시간은 참 애매한 시간이었다. 다시 눕자니 잠이 오지 않을 것 같고, 일어나자니 뭘 할지 막막했다. 결국 그는 일어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지윤에게서 온 메시지를 발견했다. 순간 정우는 자신도 모르게 D.C.T에 들어간 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믿기 힘든 상황이라 눈을 비볐다.
메시지의 내용은 D.C.T 상담을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말투는 정우가 아닌, 단순히 L.S 직원에게 전하는 듯했다. 무엇보다 메시지에는 진지하게 참가 의사가 드러나 있었기에, 정우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중독되어 파멸해 가는 모습을 지켜본 그로서는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노골적으로 반대하면, 마치 자신이 D.C.T를 쓰지 못해 질투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잠시 고민 끝에 정우는 최대한 돌려 말하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곧 돌아온 지윤의 답장은 정우의 가슴을 무겁게 했다.
'좋은 답장 고마워요. 정우 씨가 걱정해 주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아요…. 저는 제 삶을 사랑하려 애썼고, 만족하려 노력했어요. 하지만 언제나 다른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죠. 그걸 이뤄줄 방법이 있는데 외면할 수 있을까요? 설령 제가 망가지더라도, 정우 씨가 저를 말려줄 거라 믿어요. 그러니 저를 믿어주세요. 절대로 중독되진 않을게요….'
‘이미 늦어버린 것 같아요.’
그 문장은 곧, 지윤이 이미 D.C.T에 발을 들였다는 뜻이었다. 정우는 한순간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한 번 들어가면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세계—그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서둘러 회사에 도착한 정우는 방문자 기록부터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는 ‘지윤’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돌아서려는 순간,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정우 씨?”
고개를 돌리니 지윤이 서 있었다. 정우는 놀란 듯 달려가 다급히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그냥 상담만 받은 거예요. D.C.T가 궁금해서요.” 지윤은 태연하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정우 씨는 왜 여기에 있어요? 오늘은 늦게 출근하는 날 아닌가요?”
순간, 정우는 거짓말을 해버렸다.
“아… 그냥 일찍 눈이 떠져서요. 출근이나 일찍 하자 싶어서….”
지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차라도 한잔하려 했는데….”
“아뇨, 할 수 있습니다.” 정우는 지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해 버렸다.
결국 둘은 근처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주문했다. 지윤은 카페라테, 정우는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고르려 했지만, 지윤이 “써서 못 드시지 않아요? 단 걸 좋아하면 캐러멜 마키아토가 괜찮아요.”라고 권했다. 정우는 사실 단 음료를 즐기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마주 앉은 지윤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우 씨는 자기 삶에 만족하세요?”
잠시 생각하던 정우는 대답했다.
“저는… 의외로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으시겠네요.” 지윤은 쓸쓸하게 웃었다. “저는 잘 모르겠거든요. 지금 삶이 싫은 건 확실한데, 내가 원하는 삶이 뭔지는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상담을 받아본 거예요. D.C.T에선 무의식을 분석해서 꿈으로 보여준다잖아요. 혹시 그걸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런데 정우 씨 문자를 보고 겁이 났어요. 그래서 그냥 상담만 하고 나왔어요.”
정우는 그 말을 듣고 살면서 처음으로 ‘일찍 일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련은 남네요. 정말 내가 원하는 걸 알 수 있다면, 그걸 향해 달려갈 텐데….”
정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지윤 씨가 원하는 걸 자기 힘으로 찾았을 때 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계가 보여주는 답이 꼭 진짜일지는 모르니까요.”
지윤은 한동안 말없이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다,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해 주셔서 고마워요. 의외네요—항상 차가운 이미지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따뜻하시네요.”
그 말에 정우는 마음이 놓였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조금 더 가까워졌다. 지윤은 정우에게 농담을 건네기 시작했고, 정우 역시 예전보다 더 자주 웃었다. 점심시간의 짧은 만남은 정우의 하루를 지탱해 주는 작은 행복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