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T(4)

사라진 지윤

by ㅇㅅㅇb

오늘은 평소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지윤을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지윤이 보고 싶어 하던 공연 티켓을 어렵게 구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같이 가자고 말할 수 있을지 밤새 고민했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가게 앞에 다다르고 말았다.

문을 열자 익숙한 소음이 가득했지만, 정우의 귀에는 이상하리만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언제나 환하게 맞아주던 지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게를 두리번거렸지만 어디에도 지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마음이 든 정우는 곧장 사장님을 찾아가 지윤에 대해 물었다. 사장님은 잠시 말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지윤이가 그만두기 전, 자네가 오면 전해 달라더군. 그리고… 미안하다고도 전해 달랬네.”

정우의 손끝이 떨렸다. 편지를 받아 들고는 언제나 지윤과 마주 앉던 자리에 털썩 앉았다. 머릿속에서는 끔찍한 상상이 소용돌이쳤다. 혹시 지윤이 D.C.T에 빠져들어버린 것은 아닐까. 오히려 다른 이유라면 차라리 나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스쳤다. 하지만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정우는 떨리는 손끝으로 봉투를 열었다.

편지

‘정우 씨, 지윤이에요. 제가 갑자기 가게를 그만둔 걸 보고 충격받으셨겠죠…? 아니라고 하면 조금 섭섭할 것 같네요ㅎㅎ;; 사실 정우 씨도 짐작하셨을 거예요. 맞아요, 저는 D.C.T에 중독되어 버렸어요.

저번에 L.S에서 상담만 받고 나왔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체험을 했었어요. 단순한 호기심이었어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꿈을 꾸고 보니 상상 이상으로 행복했어요. 동시에, 이 안에서 평생 살고 싶다는 제 자신을 발견했을 때는 무서웠어요. 그래서 곧바로 나왔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그때 정우 씨를 만났고, 카페에서 나눈 대화는 제게 큰 위로가 되었어요. 정우 씨와 함께하는 순간, 저는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꼈거든요.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불안과 허무가 밀려왔어요. 마치 행복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때 다시 떠오른 것이 D.C.T였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신체포기각서에 서명하고 있더군요.

이 편지는 남은 이성으로 미리 써두고 사장님께 맡긴 거예요. 언제 정우 씨 손에 들어갈지 모르지만, 저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 주세요. 정우 씨와 함께 나눈 순간만큼은 거짓이 아니었으니까요. 정말… 미안해요.’

편지를 다 읽고 난 정우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장님은 휴지를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

“편히 울다가 가게나…”

정우는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을 저며왔다. 혹시 지윤이 여러 번 도움을 청했는데 자신이 모른 척한 것은 아닐까. 더 빨리 마음을 고백했다면 달라졌을까. 후회와 자책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하지만 이제 지윤은 신체포기각서를 작성한 뒤,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었다.

그때 사장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렇게 울기만 할 텐가? 자네가 정말 그 아이를 좋아한다면, 지옥에 끌려가도 구해내야 하지 않겠나?”

정우는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사장님의 눈빛은 단호했다.

“지윤이는 자네를 정말 좋아했네. 손님들 앞에서는 애써 웃던 아이였지만, 자네 앞에서만은 진심으로 웃었어. 자네가 돌아서면 늘 아쉬워하곤 했지. 하지만 불안했을 거다. 자신이 정우 자네 곁에 설 자격이 있는지 확신이 없었겠지. 그래서 자네의 마음을 듣고 싶었던 거야. 자네는 이미 한 번 늦었네. 하지만 두 번은 늦지 말게.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늦는 건, 핑계가 될 수 없으니까.”

그 말에 정우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곧장 회사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오래 근무해 온 그조차도 신체포기각서를 쓴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지 못했다. 혼자서 회사를 뒤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이름, 지애. 그녀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자, 지애는 놀란 듯 잠시 침묵하다가 짧게 답했다.

“내일 오후 두 시, 주소 보내줄게. 그곳으로 와.”

뜻밖의 대답에 정우는 당황했지만, 물러설 이유는 없었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지윤을 구할 수만 있다면, 설령 지옥일지라도 기꺼이 들어가리라.

keyword
이전 03화D.C.T(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