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결성?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평소 같으면 정우에게 토요일은 밀린 예능과 드라마를 보며 집 밖을 나서지 않는 날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지윤을 되찾기 위해, 지애가 알려준 주소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시골의 외딴 창고. 교통이 불편해 애를 먹었지만, 결국 도착할 수 있었다.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지애가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정우 씨. 오는 길은 괜찮으셨나요?”
“쉽진 않았지만, 건물이 몇 개 없다 보니 길을 헤매진 않았습니다.”
지애는 그 말에 안도하듯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지애의 뒤편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이 사람이 네가 말한 그 사람이야? 저 사람, L.S의 ‘사신’이라고 소문난 인물 아니냐?”
곧이어 뒤따라 나온 여자가 말을 보탰다.
“그러니까 내가 불안하다는 거야. 괜히 데려왔다가 우리만 위험해지는 거 아니냐고.”
지애도 잠시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정우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우가 입을 열었다.
“저를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전 D.C.T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 L.S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설령 그게 어렵다면, 지금까지 조사한 정보만이라도 알려주세요. 저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해내겠습니다.”
정우의 목소리에 담긴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에 지애가 잠시 놀란 듯했으나 이내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떡할래요? 정우 씨가 L.S에서 어떤 이름으로 불렸고, 어떤 일을 했는지는 잘 알지만… 만약 그가 우리 편에 선다면, 이보다 든든한 아군은 없을 겁니다.”
남자는 한동안 고민하다 손을 내밀었다.
“좋다. 널 돕겠다. 하지만 만약 배신한다면 네 목숨으로 갚아야 할 거야.”
정우도 그의 손을 힘 있게 맞잡았다.
곁에 있던 여자는 못마땅한 듯 자리에 돌아가 앉았고, 남자는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이해해 줘라. 원래 잘 마음을 열지 않는 녀석이거든. 난 두식이라고 해. 방금 본 애는 세희고.”
“정우입니다.”
지애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우리 네 명이 모였네요. 팀명을 하나 정하는 게 어때요?”
“좋지. ‘으라차차 두식이네’ 어때?” 두식이 장난스럽게 제안하자, 세희가 곧장 고개를 저었다.
“너무 촌스러워요. 차라리 ‘타도 L.S’가 낫겠네요.”
지애가 웃으며 정우를 바라보았다.
“정우 씨는 어떤 게 좋으세요?”
“드림 브레이커는 어떻습니까?”
“드림 브레이커… ‘꿈을 부수는 자’. D.C.T가 사람들을 꿈으로 중독시키니, 그 꿈을 부수는 우리라… 마음에 드네요.”
지애가 손을 번쩍 들자, 두식은 못마땅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으라차차 두식이네보단 낫긴 하네.”
세희도 투덜대며 손을 들었다.
“어차피 다수결로 정해진 거잖아요.”
결국 네 사람은 ‘드림 브레이커’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이후 정우는 주말마다 지애의 차를 얻어 타고 모임 장소로 향했다. 두식과 세희가 조사한 L.S의 내부 지도와 정보들을 공유받으며, 그들의 실체를 조금씩 알아갔다. 장기 매매, 불법 사채, 권력과의 결탁…. 정우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L.S의 세계는 썩어 있었다.
정우가 경찰에 신고하는 건 어떻겠냐 묻자, 두식은 비웃듯 말했다.
“머리 좋다더니 이런 건 모르나 보네? 지금 L.S는 웬만한 국가보다 힘이 세. 언론과 정부도 그들의 눈치를 본다. 정부가 먹혔으니 경찰이나 검찰도 당연히 그들의 편이지. 신고해 봤자 우리만 범죄자가 될걸.”
그 말에 정우는 비로소 자신이 상대해야 할 존재의 크기를 실감했다.
“무섭냐?” 두식이 묻자 정우는 단호히 대답했다.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지윤을 구하지 못하는 게 더 두렵습니다.”
두식은 피식 웃으며 지도를 펼쳤다.
“좋아. 그 용기면 충분해. 여기, 5년 동안 조사해 만든 L.S 내부 지도야. 거의 다 밝혀냈지. 다만 회장실과 지하만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어. 특히 지하는 전용 출입증, 카드키, 지문·안구 인식까지 거쳐야 들어갈 수 있지. 24시간 무장 경비도 서 있고.”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어렵군요.”
“엘리베이터로는 불가능하지. 하지만 환풍구가 있거든.”
두식은 환풍구 지도를 내밀었다. 그러나 세희가 설명을 덧붙였다.
“환풍구 안은 상상을 초월하는 강풍이 불어. 몇 천 명을 수용한 지하에 공기를 공급하려면 당연하지. 사람이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야. 게다가 지하의 정확한 구조는 알 수 없어.”
정우는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증거만 확보하면 되잖아요? 아무 방이나 들어가도 충분한 거 아닙니까?”
세희가 차갑게 웃었다.
“하지만 넌 구해야 할 사람이 있지 않나? 네 목적도 이뤄야 해.”
그때 세희는 정우가 찾는 사람이 어느 요일, 어느 순번의 방에 배치되었을지 설명해 주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L.S의 임원 비서였다. 정우는 그제야 자신이 어떤 팀과 함께하고 있는지 실감했다.
그러나 가장 큰 난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환풍기를 제어해야만 침입이 가능했는데, 그것은 곧 지하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그건 제가 해보겠습니다.” 조심스레 지애가 손을 들었다.
“제가 해킹을 조금 할 줄 알거든요. 환풍기 제어 정도는 보안이 허술해서 어렵지 않을 거예요.”
세희가 비웃었지만, 지애는 곧장 세희의 휴대폰을 제어해 보였다. 모두가 놀랐다. 아무도 지애가 그런 능력을 갖췄으리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날 모임은 그렇게 끝이 났다. 돌아오는 길, 차 안은 침묵에 잠겼다. 그 침묵을 깨뜨린 건 지애였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제가 왜 해킹을 할 줄 아는지, 왜 영업사원 일을 하고 있는지.”
정우는 잠시 고개를 저었다.
“사정이 있으시겠죠.”
사실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정우의 머릿속은 오직 지윤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에도 지애는 스스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의 과거, 부모님이 사채에 휘말려 무너져 간 사연, 그리고 자신이 L.S에 들어가게 된 이유. 정우는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마지막에 정우가 물었다.
“만약 이번에 성공해서 자유로워진다면, 어떻게 살고 싶으십니까?”
지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글쎄요. 지금껏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이제는… 한 번쯤 꿈꿔봐야겠네요. 이렇게 가능성이 보인 건 처음이니까요. 역시 정우 씨를 데려오길 잘한 것 같아요.”
차 안에는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불편하지 않은, 묘하게 따뜻한 침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