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하지만 사랑해(3)

내일은 더 나은 나 자신이 될 수 있었으면

by ㅇㅅㅇb

사진을 뽑으러 가기 위해 준비하던 중 '나'에 대해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현지의 아빠라는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나’는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오늘 아침에 본 일기에는 그런 정보가 적혀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추가적인 정보를 얻고 싶다면 과거의 일기를 확인하기 바란다.’라는 문구가 떠올라 내 방으로 가 노트북을 켜 문서함을 열어보았다. 문서함에는 ‘새 폴더’라는 폴더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폴더 이름을 짓지도 않고 그냥 만들었구먼...이라 생각하며 폴더를 클릭하니 2013, 2014년도로 정리된 폴더 2개와 ★가 있는 메모장이 있었다. 그리고 2013년에는 8월부터 12월까지 있고 2014년 폴더에는 1월부터 3월까지의 폴더가 있었다. 3월 폴더를 들어가 보니 빈 폴더였다. ‘어제의 나’가 ‘오늘의 나’를 위해 만들어둔 폴더겠지. 나는 일단 ‘나’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2013년 8월의 일기를 확인해 보았다.


2013년 8월 23일

사랑하는 아내가 쓰던 일기를 오늘부터 내가 적게 된다. 아내가 써온 일기를 읽어 상황판단을 정확히 하고 싶었지만 아내가 일기를 모두 불태우고 사라져 버린 이유로 현재 내가 이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만 적어보려 한다. 먼저 내 이름은... 모르겠다. 매일 아내에게 ‘현지 아빠’리고 불리어서 내 이름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고 나는 기억상실이다. 과거 나는 택배사에서 일하던 직원이었지만 어느 날 택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한 것 같다. 그게 무슨 사고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1달 동안 의식을 잃었고 내가 깼을 땐 사고의 기억만을 잃어버렸던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최근의 기억을 잃어버리다가 최근에 이르러서는 내가 누군지, 아내와 딸의 존재까지 잊어버리게 된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의 딸은 너무 어렸고 아내는 나에게 딸 앞에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대해달라고 했다. 자신이 매일 나의 삶을 보며 일기를 적을 테니 그 장면을 보며 딸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대해 달라했다.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인 딸에게 기억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존재는 매우 힘들 테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내가 적어준 일기에 맞추어 딸에게 대했다. 처음에는 누군지 모를 저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현지와 함께 살아오며 사랑이라는 것은 익숙한 것이 아니라 본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현지가 내 딸인 것을 알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현지를 사랑하는 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렇게 잘 지내왔던 것처럼 보였지만 오늘 돌연 아내가 나에게 화를 냈다. 매일 잘 대해주던 아내가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손으로 내 어깨를 때리며 화를 냈다. 몇 분 동안 자기 혼자 화를 내고 방 안에 틀어박혔다. 30분쯤 지났을까 캐리어 한 개를 끌고 나오며 나에게 말했다. “나... 진짜 많이 노력했거든..? 근데.... 나를 기억해주지 못하는 사람이랑은 더 이상 살지 못하겠어...”나는 막지 못했다. 아무리 현지가 있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하고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남편이어야 하는데 남편이 기억상실이니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생각하며 보내주려 하는데 아내가 있던 방에서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해 급하게 달려가 방 문을 열어보니 타고 있는 종이들이 보였다. 바로 아내가 써오던 나에 대한 일기였다. 나는 급하게 아내를 쳐다봤지만 아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이제 필요 없을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나는 서둘러 바가지에 물을 받아와 불이 난 곳에 뿌렸다, 불은 쉽게 꺼졌지만 일기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고 바닥은 새까맣게 그을려져 있었다. 나는 주저앉아 잠시동안 멍하니 있었다. 오늘은 현지가 수학여행을 가있는 날이다. 오늘은 현지가 오지 않을 테니 다행이야... 현지에게 할 말을 아직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내일 되면 이 사건은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내가 기억상실이라 다행이다. ‘내일의 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일 테니까.... 바닥은 축축하게 젖어있고 여전히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2013년 8월 24일

오늘은 현지가 돌아왔다. 생각보다 아내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이미 아내에게 연락을 받은 것일까? 현지는 돌아와 방으로 들어갔다. 많이 피곤한 상태인 것으로 보였다. 밥 먹으라고 부르러 갔을 때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아직 나는 아내가 집을 떠난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니 나에게 아내와 딸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 아내는 있었던 거였군...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 상태에서도 솔직히 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 입장에서는 현지를 오늘 처음 보는 거다 보니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모르겠다. 솔직히 오늘 현지가 일찍 잠들어주어서 다행이다. 제발...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더 나은 아빠였으면 좋겠다.


2013년 8월 27일

오늘은 과거의 일기를 보아하니 현지와 가장 대화를 많이 나눈 순간인 것 같다. 내가 본 현지는 활기차지만 눈치를 많이 살피는 성격인 것 같다. 억지로 텐션을 올리는 타입이랄까? 내가 기억상실인 것을 눈치챈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지가 자러 가기 전 ‘잘 자요 아빠’라는 말을 하자 왠지 모를 안심감을 느꼈다. 아 그리고 현지는 오므라이스를 좋아한다. ‘내일의 나’가 ‘오늘의 나’보다 더 나은 아빠가 되기 위해 일기 바깥쪽에 ★의 메모장에 현지의 정보들을 적어놓겠다. 참고하길 바란다.


나는 읽던 일기의 창을 내리고 ★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알아낸 현지의 정보가 적혀있었다. 현지가 좋아하는 음식은 오므라이스 싫어하는 음식은 피망(단 오므라이스에 작게 넣어봤을 때 참고 먹음), 현지가 뭔가 자랑하고 싶을 때는 손을 등뒤로 숨긴다. 가지고 싶은 게 있을 때는 눈을 떼지 못하다가 몇 번씩 내 얼굴을 바라봄 등등 현지의 정보가 여러 가지 적혀있었다. 물론 이것들은 ‘나’라는 존재가 적었겠지만 수많은 ‘나’가 현지를 관찰하여 적은 것이라 생각하였다. 오늘의 자신보다 내일의 자신은 현지에게 더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일기를 몇 가지 더 보았지만 필요한 정보는 더 이상 적혀있지 않았다. 모두 현지에 대한 사랑으로 적혀있고 후회와 바람을 적고 있었다. 나도 오늘 현지가 돌아오면 현지의 행동을 지켜보고 일기를 적어야겠다. 내일의 나에게 현지에 대해 더 알려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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