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하나로 돌아가기 전의 상태

02. 하나는 왜 셋으로 나뉘는가

by LumiTo

천부경을 읽기 전에,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



우리는 보통

'하나가 셋이 된다'는 말을

구조로 이해하려 한다.


하나가 하늘이 되고,

땅이 되고,

사람이 되는 과정.

혹은 하늘·사람·만물의 질서.


설명은 많다.

도식도 많다.

하지만 그 설명들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점점 더 멀어졌다.


왜 하나는 셋으로 나뉘었는가.

이 질문은

우주의 탄생을 묻는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늘

지금의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

나를 하나로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까.


생각과 행동이 어긋나고,

원하는 것과 선택하는 것이 달라지고,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걸어가면서도

계속 불편해지는 순간들.


그때마다

나는 설명을 더 찾았다.

이해하면 정리될거라 믿었다.


하지만 천부경의 문장들은

그 방식에 좀처럼 응답하지 않았다.


'하나가 셋이 된다'는 말은

분열의 선언이라기보다

이미 분리된 감각을 가진 존재에게

그 사실을 조용히 인정하게 하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이미

하나로 살고 있지 않다.


머리는 알고 있지만

몸은 따르지 않고,

마음은 움직이지만

삶은 그대로 멈춰 있는 상태.


셋으로 나뉘었다는 건

우주가 복잡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동시에 다루게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하늘처럼 생각하고,

사람처럼 느끼고,

삶 속에서 선택해야 하는 존재.


문제는

셋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셋이

서로를 모른척하고 살아간다는데 있다.


그래서 이 문장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지금 너는

어디에 서 있는가.

생각인가, 감정인가,

아니면 선택의 자리인가.


하나로 돌아가라는 말은

셋을 없애라는 말이 아니다.

셋을 억지로 정렬하라는 말도 아니다.


먼저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말라는 말에 가깝다.


이 연재에서

'하나'는 목표가 아니다.

도착점도 아니다.


다만

셋으로 흩어진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출발점일 뿐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 셋─

하늘, 사람, 삶─이

어떤 거리로 떨어져 있는지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려 한다.


아마 그 거리는

우주보다

우리 일상에 더 가까울 것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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