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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Oct 21. 2023

"마흔에 결혼도 안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래?"

“마흔인데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래?” 

“뭔가 준비를 해놔야 하지 않겠어?” 

“결혼도 안 하고 혼자 괜찮겠어?” 


난 그저 열심히 내 일을 하며 살고 있는데, 왜 다들 내일 당장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걸까.    

  

그들의 시선에서 생각해 봤다. 사회 통념적으로 지금의 나를 한 줄 정리하면 ‘직장을 다니고 있는 4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이다.      


여기서 ‘직장을 다니고 있음’은 회사에 고용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고용된 사람은 고용주에 의해 계속 직장을 다닐 수도, 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 나의 경제활동이 회사와 고용인이라는 불완전한 관계에 놓여있는 것이다.     

‘40대 초반’. 애매한 나이다. 어리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회사에서 40대는 보통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한다. ‘요즘 아이’들과 ‘꼰대 상사’ 사이에 끼어 시소 타기를 하며 발란스 게임을 해야 하는 위치다. 최근 주요 기업들이 ‘최연소 임원’이라는 타이틀로 3040대 젊은 임원들을 내세우면서 40대 직원들은 더 애매해졌다. 직장인이 됐으면 임원은 해봐야 한다는 한 임원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임원은 ‘직장인의 꽃’으로 불린다. 하지만 임원은 전 직원의 불과 2~5% 내외다. 그 안에 여자 임원은 정말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꽃길이라고 해서 모두가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꽃길이라고 해도, 그 자리를 가기 위해 정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치열하게 희생해야 하는 험난한 과정을 밟고 싶은 마음도 없다. 임원은 계약을 통해 임기가 만료되거나 연장된다. 1년 만에 임기가 만료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느 한 기업에서 신입사원과 대표의 만남 자리가 있었는데 대표가 한 신입사원을 보고 “임원감”이라며 인사말을 건네자, “저는 이 회사에 그렇게 오래 다닐 생각이 없는데요”라고 말한 일화는 회사를 대하는 요즘 직장인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미혼’.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결혼하지 않은 걸 아직 해야 하는 숙제를 못 한 사람처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가정을 꾸려서 사는 것이 마치 안정적인 삶인 것처럼. 뭐 요즘엔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부부들도 많으니, 아이까지는 아니어도 혼자보다는 둘이 함께해야 이 험난 세상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지 않겠냐는 거다.     


이렇게 지금 나의 상태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아주 이유가 없진 않았다. ‘직장에 다니는 40대 미혼 여성’은 남들 눈에는 불완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상황이 불안한가? 불안하지 않은가?


사실 불안감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도 주위에서 걱정해 주는 통에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건 너를 위해 썼어”라고 책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이끌려 ‘김미경의 마흔 수업’이란 책을 손에 쥐었다. 

엇? 뭐지? 진짜 나를 위해 나온 책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까지 들었다.      

가장 인상 깊은 말은, 마흔은 너무 좋은 시기라는 것이다. 애매하고, 심지어 불안하기도 한 마흔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라는 이야기에는 꽤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은 내 마음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로 했다.      


예전의 마흔은 인생의 절반은 살아온 나이다. 그래서 마흔이 됐을 때는 불안하지 않고 모든 게 안정적으로 갖춰져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마흔의 불안은 이 고정관념에서 시작된 거다. 예전과 달리 100세 시대인 요즘의 마흔은 앞으로 살날이 너무 많이 남았다. 내가 원해서가 아닌, 예전과 다른 인생 시계를 쥐게 된 것이다. ‘마흔 수업’에서 100세 시대의 마흔은, 인생을 24시간으로 놓고 봤을 때 아직 오전 10시와 12시 사이에 있는 나이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인생을 펼칠 나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흔히 60대 이후를 뭉뚱그려서 노후라고 이름 붙이고 제대로 설계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언급했다. 태어나면서부터 20대까지를 유년기라고 하고, 20대부터 40대까지가 퍼스트라이프, 50대부터 70대까지가 세컨드라이프, 그리고 그 이후를 노년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은 인생이 길어진 만큼,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하는 것. 2막을 준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가 마흔이라는 것이다. 퍼스트라이프의 마지막 10년을 잘 다지고 준비해야, 멋진 세컨드라이프를 살 수 있는 거다.   

   

세컨드라이프를 준비하기 위한 나의 상황은 어떤가. 

‘직장을 다니고 있는 40대 미혼 여성’은 내가 번 돈으로 나를 위한 투자를 하는 데 눈치 볼 사람이 없다. 남편이나 자식을 챙기느라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게 어렵지도 않다. 그럼 뭘 걱정하고, 망설이지?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 그만이다.     


20대 때 회사에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시간이 있어 작성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버킷리스트들이 다 기억나지 않지만, 가족 유럽 여행, 파리에서 크리스마스 보내기, 책 쓰기가 떠오른다. 이외에 더 많은 것들을 리스트에 적었던 것 같지만, 지금 간신히 떠오르는 저 세 가지도 나는 아직 다 이루지 못했다. 아마도 나는 현재에 급급해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제쳐두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나는 버킷리스트를 다시 쓰기로 했다. 내 안의 진짜 소리를 들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시작하기에 너무 좋은 마흔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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