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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Oct 21. 2023

나의 결혼 데드라인은 사라졌다

비혼은 아니다. 그렇다고 결혼이 급한 것도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마흔이 넘었고, 어쩌다 보니 미혼인 거다. 사람들에게 “결혼 안 해?”라는 질문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궁금할 수 있으니깐. 그 소리를 20대에도 들었고, 30대에도 들었다. 나는 한 회사를 오래 다녔기 때문에 오랜 기간 봐 온 동료, 선배, 리더들이 많다. 오랜만에 보거나, 새해 같은 특별한 날에 만날 때면 어김없이 “결혼 안 할 거야?”를 인사말로 들었다. 나중에는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저 5년 안에 결혼하려고요! 그러니 결혼 왜 안 하냐고 더 물어보지 마세요! 하하!”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결혼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그때 당시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는 걸 알고 있으니 진짜 왜 결혼을 안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봤을 수도 있고, 그냥 친근함을 표현하는 인사라고 생각해서 물어봤을 수도 있다. 

결혼 안 한 사람에게 결혼 질문을 하는 게 실례라고들 하는데, 나는 크게 의미 두지 않았다. 그동안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 없어서 개의치 않았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성에 관련된 야한 이야기를 하면 논란이 되지만, 같은 이야기를 신동엽이 하면 야한데 웃긴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사실 ‘누가’ 물어봤느냐가 중요하다. 친밀감이 없는 사람이 무례하게 묻는다면 그건 상대방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요즘엔 회사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당할 수 있다. 당사자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결혼 질문은 하지 않는 게 현명한 처사다.     


마흔이 되니 이제는 오히려 결혼 질문을 덜 받는다. 어린 나이가 아니다 보니 결혼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엔 마흔을 넘긴 미혼들이 많고, 돌싱이거나, 동거하거나, 비혼이거나,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다 최근 오랜만에 저녁 자리에서 결혼 질문을 받았다. 한때는 한 조직에 있었지만, 지금은 각기 다른 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17년을 봐 온 내가 좋아하는 회사 동료, 선배, 리더들이 모인 자리였다. 7명이 자리한 그곳에서 나와 한 선배를 빼고는 모두 기혼이었다. 종종 볼 때마다 나의 연애와 결혼에 관심을 보이는 L 리더분이 그날도 어김없이 연애하고 있는지 물으셨다. 연애 안 하고 있다고 하니, 왜 안 하냐며, 결혼 안 할 거냐며 본인 일처럼(?) 아쉬워하셨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결혼하면 좋을 것 같으니 연애하라고 하시는 거죠?”라고. 그러면서 나는 그날 함께 한 저녁 멤버 중 결혼 생활을 가장 오래 한 리더 3명에게 결혼을 추천하냐고 물었다. L 리더는 강력하게 추천한다고 하셨다. L 리더는 첫사랑과 결혼했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게 안정감을 줘서 자신에게는 잘 맞는 데, 가족들과 오래 함께 살고 있는 나에게도 잘 맞을 것 같다고 하셨다. 또 다른 리더는, 자기는 결혼해서 사는 것도 괜찮은데, 결혼을 안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고 하셨다. 또 다른 리더는 결혼은 너무 주관적인 거라서 자기의 경험보다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최고라고 하셨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소개팅 주제로 넘어갔다. 남자를 만날 때 “이건 절대 싫다” 한 가지를 꼽는다면 뭐냐고 물으셨다. 나는 최근 들어 누가 이상형을 물을 때 한 가지만 선택하라고 하면 “내가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사실 키도 크면 좋고, 유머도 있으면 좋겠고, 자기 분야에서 열심인 사람이거나... 주저리주저리 더 이야기할 수 있지만.. 아무튼, 내가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것들이 부족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다. “이건 절대 싫다”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예의 없는 사람”이었다. 예의 없는 사람을 존중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사람의 인성은 쉽게 바뀌기 어려우니까.     


오랜만에 저녁 모임에서 결혼과 이상형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 스스로 생각해 보게 됐다. 나는 지난 20년간 쉼 없이 연애했다. 항상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내가 가장 빨리 결혼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친한 친구 중에 나만 미혼이다. 물론 이혼한 친구들도 있긴 하다.      


20대에 만나 10여 년을 연애한 남자친구와는 결혼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그때 나는 결혼에 자신이 없었다. 아이를 좋아했던 나는 30대 초에는 결혼해야 평범하게 아이를 낳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에 정말 많이 고민했다. 출산을 생각하면 그때 결혼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혼한다고 해서 무조건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 없이도 행복하게 사는 부부들이 많았다. 이런 생각들이 밀려들면서 나는 출산만으로 결혼 시점을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치 탈출구를 찾은 기분이었다. 출산에 타이밍을 맞춰 결혼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으니 결혼에 대한 마음이 편해졌다. 그와 결혼하기 싫었던 것인지, 그냥 결혼 자체가 싫었던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당시 나에게는 그게 최선이었다. 그렇게 나의 결혼 데드라인은 사라졌다.      


그 이후에도 나는 연애에는 적극적이었지만, 결혼에는 자신이 없었다. 나는 왜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풀기 싫은 문제처럼 미뤄냈을까? 어렸을 때 쌍가마라서 결혼을 두 번 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두 번 결혼하기 싫어서였을까?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습관이 있는 사람 중에 그 일을 정말 잘하고 싶어서 미루는 요인도 있다고 하던데, 나는 결혼을 잘 해내고 싶어서 미루고 있는 걸까? 지난 20년간 연애하면서 연애 총량을 다 채워 결혼 생각이 없는 걸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간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내가 그들 중 누군가와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는 지금보다 덜 행복했을 것 같다. 20대와 30대의 나는 받는 사랑에 익숙했고, 항상 곁에 있어 주길 원했다. 연애 시절에는 남자친구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맞춰줬지만, 결혼 이후에는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실망을 하고, 그러면서 갈등이 일어났을 것이다.      


요즘, 결혼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반대급부로 결혼에 대한 담론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미디어는 시대상을 담는다. 지옥 같은 결혼 생활, 육아 전쟁,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 등 각종 미디어에 결혼과 육아에 대한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는 이유다.     


모든 관계에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인데, 우리는 어떻게 결혼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어디에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연애의 감정으로, 환상을 갖고,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 결혼했다가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서로 많은 걸 기대했다가, 서로 많은 부분에서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결혼은 연애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합리적인 사랑이 되어야 한다. 내 삶을 유지하면서 상대방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혼자 행복하고 자율적인 인간이 되어서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결혼에 대해서 별말씀 없으셨던 엄마가 마흔이 넘으니 이제는 조금 걱정이 되셨는지, “딸아, 진짜 결혼 안 할 거야?”라며 물으셨다. 결혼을 꼭 했으면 좋겠다는 게 엄마 생각이셨다. 나는 결혼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언젠가 자신이 먼저 하늘나라로 갈 텐데 내 옆에 짝꿍이 있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형제자매도 있고 친구들도 있으니 괜찮다고 했고, 엄마는 형제자매와 친구들도 좋지만, 그들도 그들의 가정이 있기에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의견 충돌이 거의 없는 엄마와 나지만 결혼에 대해서만큼은 결론이 잘 나지 않았다.      


최근에 엄마랑 일본 여행을 갔는데, 그날 밤 유독 보름달이 예쁘게 떴다. 우리는 보름달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캔씩 마시고 자기로 했다. 그렇게 둘이 맥주를 기울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달을 바라보며 여느 때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다 엄마가 “꼭 결혼해야만 하는 건 아닐 수도 있겠어. 연예인 중에 결혼하지 않고 연애만 하기로 한 커플을 최근에 봤어. 각자의 삶이 있지만, 둘의 삶도 있는 것. 그렇게 사랑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라며 말씀하셨다. 나는 엄마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고개를 끄덕이며, 형식이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며 빠르게 동의의 대답을 했다.      


하지만 역시나 그다음 날 저녁 엄마는 아무리 그래도 결혼은 하긴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을 바꾸셨다. 그러면서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마음이 자꾸 바뀐다는 귀여운 고백을 하셨다. 그날 밤 보름달의 아름다움에 취한 건지, 맥주에 취한 건지, 여행 중이라서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엄마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 처음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흔의 내가 괜찮아 보이기에, 그래서 엄마도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엄마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하고 응원할 것이다.      


인생엔 정답이 없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는 상태라면 혼자여도, 연애해도, 결혼해도 괜찮을 것이다. 

어떤 길이든 내가 행복한 길을 찾으면 된다.

선택엔 분명 이유가 있다. 그렇기에 지금 나의 선택을 눈치 볼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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