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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Oct 21. 2023

나를 위한 셀프 복지

회사 게시판에 복리후생 개편안이 떴다. 우리 회사는 식당, 베이커리, 쇼핑몰 등 다양한 업종의 계열사에서 직원 할인이 가능하고, 해외여행 시 해외 호텔 숙박료도 일부 지원이 된다. 나도 회사 복지를 매우 잘 활용하는 사람 중 한 명인데, 개편안이 떴다니 얼마나 좋아졌을지 기대가 들었다. 게시판에 들어가 확인했다. 난 10초 만에 게시판 창을 닫았다. 나에게 적용되는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1년 더 사용할 수 있는 복지, 배우자가 해외 근무나 파견, 유학 등을 갈 때 동반 휴직을 할 수 있는 복지, 결혼 휴가 확대 등 기혼자에게만 적용되는 복리 개편안이었다. 결혼 안 한 여자 후배는 자기에게는 반려견이 자식이나 마찬가지인데, 반려견 돌봄 휴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씁쓸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미혼들은 각종 사회 제도와 정책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미혼 복지를 조금씩 늘리는 추세다.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아예 비혼을 선언하는 직원들이 많아지면서 기혼자 중심 복지 체계를 고쳐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기업에서는 직원들을 위한 복지를 전략적으로 외부에 알리고 있다. 좋은 기업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일환인 셈이다. 하지만 미혼들을 위한 복지 확대는 대놓고 홍보하기를 망설인다. 싱글 복지를 대폭 늘렸다간 사회적으로 ‘비혼을 부추긴다’는 논란을 일으킬 수 있어 조심하는 것이다.      


LG유플러스가 비혼을 선언한 직원들에게 ‘비혼 축하금’ 400만 원을 지급하는 복지 제도를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신설했는데, 이 소식에 미혼인 동지들은 환호했었다. 당장 비혼을 선언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를 위한 복지가 하나씩 생겨나고 있다는 점에서였다. 하지만 이 소식이 사회적 이슈화되면서 다른 대기업에서 생겨나는 미혼을 위한 복지는 눈치를 보며 조용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 상황 자체가 참으로 씁쓸할 따름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기혼 직원들에게만 줬던 결혼기념일 복지 포인트를 생일선물로 바꿔 전 사원에게 준다고 한다. LG전자 역시 1월부터 만 35세 이상 미혼 직원들의 부모 중 1인의 종합 건강검진 비용을 연 1회 지원해 주기로 했다. 이전에는 기혼자들의 배우자나 부모에게만 적용하던 복지 적용 범위를 싱글로 넓힌 것이다.   

  

조금이라도 변화하고 있는 모습은 반갑다. 지금은 쉬쉬거리며 하나씩 늘어나고 있지만, 이 또한 과도기라 생각된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사회 제도와 복지를 기혼과 미혼으로 구분해야만 하는 것인가다. 선진국의 경우 한국 기업처럼 결혼할 때 축의금을 주는 문화가 없다고 한다. 결혼을 늦추든, 독신으로 살든 따로 제공하는 복지도 없다. 결혼이 아닌 임신과 육아에 집중되어 있는데, 구글은 난자 동결을 위한 난임 시술을 지원하고, 입양하면 최고 2만 5000달러를 지원해주기도 한다. 독신이어도 필요에 따라 받을 수 있는 혜택인 셈이다. <‘결혼 안 했죠? 월세 줄게요’ 대기업들 주면서도 쉬쉬한다는 ‘싱글 복지’>(조선일보, 2023년 5월 29일) 기사에서 이군희 서강대 경영대 교수는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기혼·미혼 같은 기준이 낡은 구분이 되고 있다”면서 “지금처럼 동일 한 조건을 제공해 제외되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생기게 만들 게 아니라, 큰 복지 서비스 풀을 만들고 이 안에서 ‘개인 맞춤형’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전도연, 정경호 주연의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전도연은 언니의 딸을 자신의 친딸처럼 키운다. 딸 역시 이모인 전도연을 엄마라고 부른다. 새로운 모녀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 1인 가구, 비혼 동거,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모습으로 가족이 재정의되고 있다. 가족의 형태를 혈연으로만 정의하지 않고, 시대에 걸맞게 이해하고, 지혜롭게 변화하기를 바란다.      


사화 복지에 대한 뭔가 허탈한 마음이 들다가 문득 셀프 복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는 해줄 수 없지만 나는 얼마든지 나를 위한 복지를 해줄 수 있다. 마흔을 넘기느라 수고했을 내 몸에게, 내 마음에게 말이다. 그리고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매일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먹는 것이다. 나는 원래도 식사 후에 커피 대신 과일, 채소 주스를 마신다. 그런데 식사 후 먹는 과일은 영양분 흡수가 잘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공복에 먹는 게 좋은데, 요즘에는 매일 아침 당근과 사과를 먹고, 식간 사이에 과일 주스를 마시는 쪽으로 바꿨다.     

그리고 또 하나는 명상이다. 명상에 늘 관심은 많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가 동생이 소개해준 김주환 교수님의 유튜브 강의를 보게 됐는데 빠져들었다. 김주환 교수님은 현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데, 주로 내면 소통, 명상, 마음 근력, 소통 능력, 회복탄력성, 설득과 리더십 등을 가르치며 뇌과학과 뇌영상 분석 기법을 이용해 내면 소통과 명상의 효과를 연구하신다. 교수님의 유튜브 채널에 따라 하기 쉽게 올려놓은 호흡을 통한 수면 유도 명상을 꾸준히 하고 있다.      


명상하지 않았을 때 나의 잠들기 전 패턴을 보면 자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으로 네이버 기사나 유튜브, 인스타를 뒤적이다 이제 자야지 하며 눈을 감으면 ‘내일 회사 일정들이 문제없이 지내갈지’, ‘내일은 뭘 입고 갈지’ 같은 당장 닥친 걱정들부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같은 잠자기 직전에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마구 머릿속을 파고든다.      


뇌는 좀처럼 쉴 시간이 없다. 자는 순간을 제외하고 우리는 계속 생각한다. 심지어 자는 순간에도 뇌는 쉬지 않는다. 그래서 잠들기 전 뇌가 편안해질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게 중요하다. 걱정 속에서 잠이 들면 그 상태로 뇌가 굳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생각 했던 머리를 쉬게끔 호흡에 집중해 잠이 들면 그다음 날 훨씬 좋은 컨디션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그게 명상의 효과다.     


큰 비용이 들거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 내 몸과 마음을 위한 소소하지만 작은 복지 하나씩 늘려주면 된다. 나를 위한 복지가 쌓이면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 건강한 삶은 행복과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내 몸과 마음을 더 사랑하고 위해주기 위한 셀프 복지는 그래서 필요하다.      


시대는 변하고 그에 맞는 사회 제도와 문화도 장착될 것이다. 그 속도가 더딜 뿐이다. 

기혼자들을 위한 사회 복지에 서운해하지 말고, 나만을 위한 셀프 복지를 늘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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