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 1일, 박경순. 주민등록증이 증명하는 그녀의 탄생일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녀의 진짜 생일은 만우절이 아니라 한겨울이었다. 왜 하필 만우절인 4월 1일에 출생신고를 했을까? 늘 의아했지만, 무심한 딸이라 다시 한번 묻지 못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연은 웃기고 슬펐다.
전라북도 완주군, 한 시골의 농가 집에서 그녀가 태어났다. 농사일로 바빴던 외할아버지는 출생신고를 챙길 겨를이 없어 농협에 다니는 옆집 아저씨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저씨는 매번 잊어버렸고, 두 해가 흐른 뒤 자기 딸이 태어나자 그제야 그녀를 떠올려 딸과 같은 날, 4월 1일로 출생 신고해 버렸다고 한다. 덕분에 그녀는 호적상 두 살 어리게 되었고, 태어난 날은 만우절이 되었다.
전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던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그녀는 막내딸로 태어나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오빠들을 뒤따라 학교를 기웃거리며 어깨너머로 글자를 익히고, 공부의 재미를 알 만큼 야무졌고, 무엇이든 최고여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다. 가을이면 해가 뜨기 전 어두컴컴한 산에 올라 밤새 떨어진 밤을 누구보다 일찍 주워 담았다.
- 아이고, 독한 계집애야. 또 다 쓸어갔네.
동네 아줌마들이 혀를 찼지만, 외할머니는 그녀가 주워 온 밤을 팔아 새 옷을 사다 주었다고 한다. 시골에서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독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닭이 울기도 전에 산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고. 작고 여렸지만, 어른들도 결코 얕볼 수 없는 야무진 소녀였다.
그런 기개로 공부에 악착같이 매달렸다. 그녀의 꿈은 여상에 합격해 도시 공장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마을에서 유일한 합격자가 되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곱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농가 집의 재산은 손바닥만 한 논이 전부였다. 그러니 자식들이 얼른 커서 집안을 돕는 것이 곧 효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를 가겠다는 막내딸을 이해해 준 건 외할머니뿐이었다. 외할머니가 어렵게 친정에서 등록금을 마련해 왔지만, 곧바로 큰외삼촌의 사업이 기울자, 그 돈까지 빼냈다고 했다.
- 공부는 미룰 수 있지만, 사업은 한 번만 고꾸라지면 끝인 법이다.
외할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막내딸의 꿈은 꺾였다. 만약 그때 그녀가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빠를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녀의 인생이 이렇게 꼬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미 기회는 속절없이 떠나버린 버스였고, 그 희생으로 연명한 큰외삼촌의 사업은 이후에도 몇 번 큰돈이 찾다가 결국 사업을 접었다고 했다. 그렇게 그녀는 열여섯에 세상의 쓴맛을 알게 되고, 가슴 깊이 한 문장을 새겼다.
- 큰 아이가 잘돼야 집안이 산다.
그 믿음은 지독한 대물림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아빠가 쓰러졌을 때, 장녀인 나에게 끝없는 기대와 무게를 실었다. 그녀가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엇나갔다. 첫째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양보해야 한다, 동생들을 잘 돌봐야 한다. 그런 말들이 싫었다. 오죽했으면 장녀 자리가 지긋지긋해, 동생에게 과자를 쥐여 주며 팔아버렸을까.
- 과자 다 줄 테니 네가 내 언니 해라
사랑도 실속도 없는 자리, 아무에게나 팔고 싶었다. 그러나 태어난 순서는 뒤엎을 수 없는 운명이었고, 결국 나는 K-장녀로 자랐다.
이제 와 생각해 본다. 내가 장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만큼 그녀도 가난에서 벗어나 마음껏 공부하고 싶었을 것이다. 큰외삼촌을 원망한 적은 없었을까? 가짜 주민등록증을 보며 웃던 그녀의 얼굴엔 원망도 억울함도 없었다. 어떻게 그 많은 불합리를 웃음으로 덮을 수 있었을까. 나는 아직도 사소한 불만조차 놓지 못하는데, 그녀는 금 간 유리처럼 조각난 시간을 묵묵히 붙들고 건너왔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